▲ 정학모 전 LG스포츠 사장 | ||
이번에는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과 ‘월드컵 휘장사업권 로비 의혹 사건’ 등 현재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두 개의 초대형 사건에 그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정씨가 나라종금측에서 받은 돈을 측근인 김홍일 의원에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그를 상대로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검찰은 최초의 월드컵 휘장사업권자인 CPP코리아 김철우 대표(구속)와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정씨가 김대중 정부 실세들에게 휘장사업권과 관련해 로비를 펼쳤는지에 대해서도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정씨는 어떤 인물인가. 그동안 정씨와 관련해 정·재계에서는 많은 추측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지난 70년대 주먹세계를 평정했던 ‘양은이파’ 보스 출신인 조양은씨(53)는 기자와 만나 “정학모씨는 지난 75년 사보이호텔 사건에 연루돼 징역 10년형을 구형받았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또 조씨는 “정씨는 부산의 조직폭력 칠성파 핵심인사의 소개로 진로그룹 계열사 부사장으로 들어갔다”는 충격적인 비화까지 밝혔다.
다음은 조씨가 털어놓은 정학모씨와 관련된 얘기들. 먼저 조씨가 설명하는 70년대 서울 의 주먹 세계로 들어가보자.
“지난 70년대 조폭들의 주무대였던 명동 일대는 북창동쪽으로 송아무개(일명 ‘송깡’)와 박아무개(일명 ‘박번개’), 무교동쪽으로 김아무개, 서울역 앞 다방에는 정학모, 종로쪽 음악다방에는 광주 출신의 일명 ‘행여나’와 추아무개, 사보이호텔 주변으로 ‘신상사’가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 무렵 서울의 호남 선배들은 술이나 마시면서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건달 생활을 했다. 전라북도 출신들은 유흥업소에 자리를 틀고 있었지만 학모형과 같은 전라남도 출신들은 대부분이 끼리끼리 모여 살았다”고 회고했다.
조씨는 당시 이들 사이에는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전남 출신 주먹들의 유대감이 매우 강했다는 조폭세계의 상황에 대해서도 전했다.
조씨는 “나는 학모형, 박번개 선배 등과 친했다”라며 “학모형이 번개 선배보다는 잘나가지 못했다”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러면서 정씨를 ‘머리가 좋았던 선배’로 기억하고 있었다.
▲ ‘양은이파’ 보스 출신인 조양은씨 | ||
“당시 번개 선배가 경상도 애들한테 맞아서 다쳤다는 얘기를 듣고 광주에서 제일 야물다던 친구와 함께 올라왔다”며 “서울에 올라와 북창동에 가니 송깡 선배를 비롯해서 쟁쟁한 선배들이 모여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때 조씨는 정학모씨를 처음 만났다는 것.
여기서 김두한, 이정재 등을 잇는 2세대 ‘전국구 주먹’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었던 C씨의 말을 들어보자. C씨는 “정학모씨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인물은 당시 전국에 10여 명이 넘었다”고 설명했다.
C씨는 “정씨의 활동은 청년이던 70년대까지였다. 한때 주먹세계와 인연을 맺고 있었을 때도 모나지 않고 두루 원만하게 지냈다”라고 회고했다. 이에 대해서는 조씨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당시 그렇게 두드러진 ‘선배’는 아니었다”는 게 조씨의 설명.
그런데 조씨는 지난 75년 1월2일 터진 이른바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에 정씨가 개입돼 있었다고 폭로했다.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은 ‘호남파’였던 조씨 주도로 당시 서울을 휘어잡고 있던 거대 폭력 조직인 ‘신상사파’와 혈전을 벌였던 사건.
국내 조직 폭력배를 단속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수사본부까지 설치되는 계기를 제공했던 이 사건을 기화로 ‘양은이파’는 주먹계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조씨는 지난 1996년 출간한 자서전 <어둠 속에 솟구치는 불빛>을 통해서도 ‘사보이호텔 사건’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 바 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신상사파는 사보이호텔 사건을 꼬투리 삼아 호남파를 쓸어버리겠다는 속셈으로 설쳐댔다. 신상사파쪽의 청탁을 받은 경찰까지 조직 폭력배를 소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호남파를 무차별로 공격했다.
그 와중에 ‘정준모’ 선배를 비롯한 호남파 조직원들이 대거 검거됐다. 그때 붙들려 들어간 사람들은 제대로 수사되지도 않는 조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협박을 받거나, 누명을 뒤집어쓰고 재판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정준모’가 바로 정학모씨라는 게 조씨의 증언이다. 조씨는 “학모형은 사보이 사건으로 수개월 동안 도망다니다 결국에는 경찰에 체포됐다”며 “검찰로부터 사보이호텔 사건 교사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구형받았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털어놨다.
조씨의 표현에 따르면 “(정씨는) 사보이 사건 때문에 벼락을 맞았다”고. 정보기관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정씨는 75년 당시 범죄단체 조직 혐의로 구속됐다가 그해 10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사건의 주동자였던 조씨는 이후 3년 동안 도망자 생활을 하면서도 ‘양은이파’ 세력을 확장시켰다. 그러다가 결국 광주에서 체포돼 1978년 6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영등포구치소에서 풀려났다.
그렇다면 정학모씨는 사보이호텔 사건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돼 있었을까. 이에 대해 조씨는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다.
그러면서 조씨는 정씨와 관련된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털어놨다. 정씨가 진로그룹 계열사의 부사장으로 가게 된 비화였다. 조씨에 따르면, 정씨는 부산 칠성파 핵심인사와 절친했다. 이 인사가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에게 정씨를 소개해 진로건설 부사장으로 가게됐다는 게 조씨의 주장이다.
이후 정씨는 진로스포츠사업단 사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97년 진로그룹이 부도난 뒤 현직에서 물러났다가 2년 만인 99년에 LG스포츠 사장으로 옮겼다가 ‘나라종금 사건’이 터지면서 퇴임하게 된 것.
여기서도 조씨는 LG스포츠 사장으로 간 것에 대해 “김홍일 의원이 LG에 학모형을 소개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만큼 김홍일 의원과 정학모씨가 절친한 사이였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조씨는 “학모형은 주먹세계를 떠난 후 (조폭) 후배들과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고 말했다. 조씨 또한 70년대 이후에는 정씨와 만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학모씨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학생시절에 주먹 좀 쓰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라며 “그런데 그걸 가지고 조폭 대부 운운하는 데 황당하기 그지없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