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장렬하게 전사라도…”
김부겸 전 의원은 대구시장 후보로 나간다면 장렬하게 전사하겠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7개월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워싱턴)에서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공부했다. 역시 영어가 문제더라. 왜 언어는 어린 나이에 배워야 하는지 알겠더라(웃음). 그래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논문 부담은 없는 대신 세미나에서 많은 인재들과 토론을 나눴다. 정말 세상은 넓고 뛰어난 친구들은 많더라. 한국에선 그저 틀에 박힌 정쟁과 논쟁에 대한 얘기만 오가지만, 그곳에선 단순한 사회적 문제를 넘어 세계와 인류, 문명을 얘기하더라. 한국도 논쟁과 정쟁의 질 면에서 좀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우리 정치권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고.”
―1월 귀국에 앞서, 이미 지난 연말부터 대구시장 출마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미국 체류 시기에도 권유가 있었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지난해 12월 중순쯤, 국내의 한 통신사가 나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 단신으로 보도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 전까진 그런 얘기조차 없었다.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달밖에 안됐다. 난 지난해 미국 출국 이전에 이미 당에 ‘쉽지 않은 선거지만 외연 확대 측면에서 지식인 중 대구시장 후보감을 물색하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안 나타난 것이다. 결국 정치하는 사람이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해온 홍의락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이 있지만, 현역이기에 부담을 줄 순 없었다. 결국 그 부담을 내가 지는 꼴이 된 것이다.”
김부겸 전 의원은 지난해 3월 <일요신문>(1088호)과의 인터뷰에서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그는 당시 “대구시장 출마는 어려운 문제”라며 “총선 출마는 내 정치적 결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방선거 출마 문제는 우리 민주당뿐 아니라 대구·경북 시민사회는 물론 안철수 세력과도 논의해 결정할 부분”이라고 답했다. 김 전 의원은 이때부터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과 관련해, 현재 난제로 다가오고 있는 신당과의 연대 문제를 염두에 뒀던 셈이다.
―출마에 대해선 이제 마음을 완전히 굳힌 것인가.
“굳이 표현 한다면 나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우선순위가 나의 출마가 아니라 야권의 회생이고 노력이 먼저라는 것이다. 나의 대구 출마는 그 과정이다. 만약 나간다면 장렬하게 전사하겠다는 각오로 임하겠다.”
―야권의 위기라 했는데, 민주당 김한길 지도부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다.
“김한길 지도부가 고군분투했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장외 투쟁도 그렇고. 야당을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특한 리더십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민주당도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위기를 극복했어야 했다. 그 방법을 뚜렷하게 찾지 못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금 민주당 의원들은 현재의 지리멸렬하고 파편화된 야권의 상황을 두고 전혀 고민이 없다.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총선은 멀었지만, 지방선거에서 무너지면 다음 총선으로 연결된다. 민주당, 절박해야 한다.”
―안철수 신당이 곧 창당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신당 영입설이 제기돼 왔다. 신당 입당 가능성은 전혀 없나.
“없다. 난 민주당 사람이다. 내가 신당 가봤자 민주당 사람이 배만 옮겨 탄 것과 다름없다. 다만 신당이 잘 되길 바란다. 민주당만으로는 이제 더 이상 국민의 마음을 끌 수 없다. 굳이 따지자면, 민주당은 이미 시장에서 브랜드로서 생명을 다한 상품이다. 하지만 신당은 신상품이다. 신상품조차 안 들어오면 야권이라고 하는 시장 전체가 무너진다. 그 시장에 가봐야 쓸 만한 물건도 없다고 소문 나봐라. 야권 다 망한다. 여러 상품 가져다 놓고 팔아야지. 신당이 등장해서 브랜드 가치 올리는 것에 대해 우리 민주당이 뭐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잘 되길 바라야 한다.”
―야권 단일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신당이 정당성을 갖고 창당하는 것에 대해선 우리 민주당도 일체 얘기할 수 없다. 그건 그들의 고유권한이니까. 하지만 선거는 다르다. 선거의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신당과 민주당, 양 진영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분명하게 하고 경쟁하는 것은 가능해도 선거에선 전술적 제휴를 해야 한다. 오히려 ‘승패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자세는 무책임하고 성숙되지 않은 정치다. 신당도 민주당도 단일화에 대해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 가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일이다.”
―신당 측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단일화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나.
“그들은 지금 창당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이야 뭐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든 시비 걸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 대해선 고민해야 한다. 이건 국민의 일이지 남의 일이 아니다.”
―야권 단일화에 대한 여권의 야합 공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대통령 공약까지 버젓이 깨는 여당이다. 여당한테 욕 좀 먹으면 어떠냐. 그거 두려워서 못할까.”
―민주당이 신당에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화학작용이 이뤄지려면, 응당 다리 역할이 필요하다. 본인이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가.
“당연히 양 진영 사이에서 쓸 데 없는 오해를 증폭하거나 긴장을 유발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내가 신당 측 인사와는 인간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김성식 전 의원과는 학생운동 시절부터 4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하루 이틀 본 사이가 아니다. 서로에 대해 믿음이 있다. 윤여준 전 장관도 그렇고. 지난 대선 때도 내가 그 역할을 했듯 이번 선거 때도 당연히 가능하다. 나의 대구시장 출마도 결국 양쪽의 통합을 위한 하나의 역할이자 노력의 일환으로 봐줬으면 한다.”
2012년 1월 15일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대회에서 김부겸 후보가 후보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물론이다. 다 열어 놓겠다.”
―중재자 역할이라면 무소속 출마도 가능하지 않나. 실제 야권 내부에선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무소속 출마가 유리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럼 내가 대구에 왜 내려갔나. 물론 대구 유권자들 입장에서 민주당은 부담스럽고 부정적이다. 단기간 승부에선 실제 무소속이 유리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악조건을 딛고서 유권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지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 발전도 안 된다. 내가 무소속으로 나가봤자, 선거를 위해 형식상 옷만 벗는 꼴만 된다. 여권에 공격의 빌미만 줄 뿐이다.”
―지난 지방선거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무소속 당선사례도 있다.
“난 김두관 전 지사와는 다르다. 나의 커리어는 정당이다. 정당에서 성장했고,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반면 김 전 지사는 정당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에서부터 올라온 사람이다. 김 전 지사는 오히려 정당이 부자연스럽고 무소속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난 아니다. 난 지금도 정치의 주체는 국민이지만, 정치 게임의 주체는 정당이라고 본다. 내 입장에서 이걸 부인하면 안 된다.”
―결국 대구시장에 출마하더라도 신당이나 무소속으로 나서진 않겠다는 것인가.
“(확고한 어조로) 그렇다.”
―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대구의 현 문제점은 뭐라고 보는가.
“외부에선 대구를 여권의 심장이라 부른다. 그런데 심장이라고 뭐 달라진 게 있느냐. 문제는 고립이다. 다양한 정치색이 없기 때문에 내부 자극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선 건강한 에너지가 나올 수 없다. 경쟁이 있는 대구가 만들어져야지 미래가 있다. 이는 시민들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난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단일 세력 독점구조의 폐해는 결국 시민들이 받고 있는 것이다.”
―만약 대구시장이 된다면.
“가장 큰 문제는 대구의 정체된 산업구조다. 과거 섬유산업이 번창했지만, 지금은 자동차, 1차 기계공업과 관련한 몇몇 업체만 버티고 있는 수준이다. 확실한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만족시킬 만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10년 새 대구 젊은이들 20만여 명이 빠져나갔다. 도시가 활력을 잃고 있다. 역대 시장들은 일자리 창출한다고 무작정 대기업 유치만 내세웠다. 그런데 그게 되겠나. 대구는 내륙도시이기 때문에 물류비가 많이 든다. 어렵다.”
―방법이 있나.
“대구에는 대학이 17개나 있다. 결국 이러한 인적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고민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솔직히 다른 지역이나 단체장들처럼 대규모 토목사업 같은 것을 내세우고 싶진 않다. 선거 치르는 후보자들 대부분은 그렇게 눈에 띄고 섹시한 것들만 던지는데, 그런 것만 쫓으면 안 된다. 대규모 토목사업을 진행해봤자 일자리 몇 개 못 만든다. 발전할 수 없다.”
―대구에 김부겸 바람이 불고 있다고 보는가.
“내가 지난 총선에서 큰 성과를 냈다고 해도 대구의 정치지형이 바뀌진 않았다. 여권 입장에선 (대구가 고향인)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됐지만, 야권 입장에선 대구 전체 지형을 바꿀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대구에서는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해도 여전히 대구의 사회적 경제적 처지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고 그 근본 원인에 대해 묻고 있는 중이다. 분명 변화의 요구는 들끓고 있다. 다만 그것이 이번 지방선거, 민주당, 더 나아가 야권 후보에게 연결될 수 있는지는 두고 볼 문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