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미국 모든 생방송 ‘5초’ 지연중계
흑인 여성인 재닛 잭슨과 백인 남성인 저스틴 팀버레이크에 대한 불공정 대접도 저널의 이슈가 됐다.
다음 날이 되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방송 주관사인 CBS엔 항의 전화가 쏟아졌고, 미국의 모든 방송에 대한 윤리성을 감시하는 연방방송통신위원회(FCC)는 마치 좋은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듯 벌금 조치 및 비난을 퍼부었다. 당시 CBS는 거대한 미디어 그룹인 ‘비아컴’의 일원이었는데, 비아컴은 CBS는 물론 그 자회사인 MTV(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기획한 곳), 클리어 채널, 인피니티 브로드캐스팅 등 자사의 미디어 채널에 재닛 잭슨의 모든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틀지 않겠다는 초강수를 두며 여론을 무마하려 했다. 미국 팝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초유의 블랙리스트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여기엔 잭슨이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다는 의혹과 음모론이 작용했다. ‘의상 불량’(wardrobe malfunction)이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었다.
리허설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잭슨의 편을 들었다. 하프타임 쇼의 가슴 노출은 절대로 의도된 것이 아닌, 우발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리허설 땐 그 어떤 비슷한 상황도 연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CBS와 MTV 쪽은 강경했다. 그들은 재닛 잭슨에게 사과 동영상을 찍기를 강요했다. “의상을 찢는 것은 리허설 때는 없었고 계획된 것도 아니며, 완전히 비의도적인 것이며 우리가 퍼포먼스에 그런 부분을 포함시키려 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 우리는 그런 방송 사고가 일어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불쾌함을 느꼈을 시청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잭슨에게, 리허설 후 잭슨 자신이 그런 쪽으로 퍼포먼스를 변경했다는 내용을 전달하라고 요구했다. 잭슨은 끝까지 사고였다는 점을 강조했고, 결국 사과 방송엔 방송사의 입장이 자막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잭슨은 그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그 일’에 대해 사과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당시 쇼가 지녔던 투표 독려의 메시지가 희석된 것이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의외의 현상도 있었다. ‘재닛 잭슨(Janet Jackson)’은 인터넷 역사상 가장 많이 검색된 이름이 되었고 급기야 기네스북에 올랐다. 생방송에서 이 장면을 놓친 사람들이 뒤늦게 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티보’(TiVo) 사이트엔 하루에 3만 5000명의 신규 가입자가 생길 정도였다. 가장 대표적인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의 창립자 조드 카림은, 재닛 잭슨의 슈퍼볼 사건이 유튜브를 만들게 된 계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흑인 여성’인 재닛 잭슨과 ‘백인 남성’인 저스틴 팀버레이크에 대한 불공정한 대접도 저널의 이슈가 되었다. 잭슨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한동안 은둔하는 동안, 팀버레이크는 별 문제 없이 활동했다. 물론 그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날의 일은 사고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손해도 입지 않았다. 궁극적인 위너는 어쩌면 부시의 공화당 정부였다. 중동 지역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주장했던 그들은, 실제로는 그런 무기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이때 잭슨의 일이 터졌고, 그들은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마치 9·11 테러 당시처럼 들끓었고, 이후 쇼의 생중계 때는 5초 정도의 시간 지연을 두어 사전에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졌다.
이후 재닛 잭슨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과 기근의 시대에 사람들이 1초도 안 되는 가슴 노출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다는 건 정말 믿기 힘들다.” 올해 1월, 당시 연방통신위원회의 의장이었던 마이클 파웰은 재닛 잭슨에 대한 위원회의 조치와 사회적 입장과 각종 논쟁은 지나치게 부풀려진 그 무엇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니플게이트’는 테러 이후 미국인들의 집단적 불안감이 어떤 계기를 통해 증폭된 광풍이었고, 잭슨은 필요 이상으로 고통받았던 인물이었다. 아무튼 그 일을 계기로 미국 문화의 윤리적 검열과 내용 심의는 강화되었으며, 그 영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