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란색과 검정색 줄무늬가 들어가 있는 이 바리케이드가 ‘로드블로커’로, 차량을 막는 데 쓰인다. 온통 철로 이루 어져 있어서 부딪칠 경우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예전보다 조금은 더 친숙하게 다가온 청와대. 그러나 청와대 안을 지날 때에는 일반 도로를 통행할 때보다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언제 어디서 ‘바리케이드’가 불쑥 솟아오를지 모르기 때문.
최근 청와대 앞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 5월30일 청와대 분수대 옆 도로에서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 이아무개 국장(1급) 등 세 명이 타고 있던 통일부 관용차가 갑자기 땅 속에서 솟아오른 바리케이드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해 차량에 타고 있던 김아무개 연락부장(3급)이 전치 9주의 왼팔 복합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옮겨졌으며, 이 국장 역시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당시 사고 지점의 경비를 맡고 있던 101경비단원이 때마침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던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작동하며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다.
청와대 101경비단 관계자에 따르면 원래 청와대 안에서 사용하던 바리케이드는 사람이 열고 닫는 수동식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 ON/OFF 버튼 하나로 작동하는 유압식 바리케이드로 교체했다는 것.
청와대에 설치된 바리케이드 가운데 현재까지 알려진 것들은 평소에는 땅 속에 있다가 유사시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돌출형이 대부분이다.
먼저 ‘쇠기둥형’. 이는 직경 30cm 가량의 원형 쇠기둥들이 땅 속에서 수직으로 불쑥 솟아오르는 형태다.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방심하기 쉽지만 막상 설치되면 트럭이 돌진한다고 해도 통과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는 강철 바늘이 빽빽하게 돋아난 철판이 45도 각도로 번쩍 들리는 ‘쇠바늘형’이 있다. 이는 돌진하는 차량을 충격으로 억제하는 쇠기둥형 바리케이드와 달리 고속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차량의 타이어에 펑크를 유도해 더 이상의 전진을 막는 형태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사고를 낸 ‘철판형’ 바리케이드는 두꺼운 철판의 한쪽이 고정된 채 차량이 진입하는 쪽이 90cm까지 불쑥 들리는 것. 진입하는 쪽의 철판이 들리면서 생기는 공간 역시 철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웬만한 무게의 차량이 돌진해도 끄떡없다.
당시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탱크가 돌진한다 해도 저런 철덩어리를 뚫고 지나가지는 못할 것”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번에 사고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 역시 “이건 숫제 땅이 불쑥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며 “땅 속에서 그런 것이 솟아오르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몸서리쳤다.
▲ 청와대 정문 아랫부분에 불룩 튀어나온 듯이 보이는 것도 역시 진 입자를 막는 바리케이드의 한 종류이다. | ||
업무보고를 위해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을 출발해 청와대로 향하던 통일부 관용차가 분수대 앞을 지나고 있었다.
이 승용차가 분수대 전방에 놓인 신호등에서 잠시 멈춘 뒤 다시 출발할려는 찰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평소에도 청와대에서 자주 시위를 벌이던 평택 에바다농아원 관계자들의 차량이 분수대 앞에서 갑작스럽게 멈춰 차량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내는 듯한 행동을 취한 것.
후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던 통일부 승용차는 아무 일 없는 듯 여느때와 다름없이 분수대 왼쪽 경비실을 통해 청와대쪽으로 진입할 무렵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쾅’하는 굉음이 울려퍼지면서 차량 앞부분이 번쩍 들렸다 떨어졌다.
땅 속에 있던 차량 저지용 바리케이드가 솟아오르며 차량 앞범퍼 밑부분을 강타한 것. 당시 차량은 시속 20km 안팎의 저속으로 진행중이었지만 바리케이트의 무게와 올라오는 속도가 워낙 엄청났기 때문에 차량은 내부 에어백이 모두 터질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
또 이 충격으로 인해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타고 있던 김 부장이 왼팔 복합골절상(전치 9주)을 당해 수술을 받고 입원해야 했다. 함께 타고 있던 이 국장 역시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관할 종로경찰서에서는 곧바로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서는 사고차량 운전자와 바리케이드를 작동한 101경비단 관계자,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당시 청와대 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직원은 “평택 에바다농아원 시위대가 진입하려는 움직임이 보여 다가오던 사고차량에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며 바리케이드를 작동했다”고 경찰에서 밝혔다. 즉 사고차량이 신호를 무시하고 바리케이드에 돌진했기 때문에 사고는 승용차 운전자의 과실이라는 주장.
반면 사고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은 “정지 지시는 전혀 없었다”며 “규정속도를 준수하면서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리케이드가 눈 앞에서 불쑥 솟아올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바리케이드가 올라오는 속도가 워낙 빨라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당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사고 조사를 맡은 종로경찰서측에서는 사고 당일 현장에서 일반 차량이 청와대 규정속도인 시속 30km 이하로 진행했을 경우 경비실 근무자의 정지신호를 보고 멈출 수 있는지 여부와, 바리케이드가 작동을 시작해 완전히 올라오는 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를 놓고 현장검증을 실시했지만 어느쪽에 과실이 있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
종로경찰서 교통사고처리반 관계자는 지난 20일 “아직까지 양측의 주장이 워낙 팽팽히 맞서고 있어 조만간 운전자와 경비단 근무자의 대질심문을 통해 사고 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에 대해 청와대 경호실의 관계자는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결코 큰 사고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공교롭게도 중상자가 발생했다”며 “청와대 경비단 직원 입장에서는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시위대의 진입 차단이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