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10년 주기로 대대적인 조폭 소탕작전을 벌여왔다. 사진은 영화 <투캅스>의 한 장면. | ||
서울지검 강력부와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는 ‘조직폭력사범 전담 서울지역 합동수사부’를 설치했다. 역대 정권에서 사회기강 확립 차원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나온 철퇴는 어김없이 ‘깡패 때려잡기’였다.
지난 61년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군사 정권은 ‘자유당 정치깡패’ 소탕작전을 펼쳤다. 이후 묘하게도 10년 단위로 조폭과의 전쟁은 거듭되고 있다. 장기 집권을 위해 72년 유신 선포를 단행한 박정희 정권은 곧바로 조폭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지난 80년 전두환 소장의 신군부 세력 역시 삼청교육대가 넘쳐날 정도로 조폭들을 단속했다. 90년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당시 김태촌 이강환 김옥태씨 등 거물급 조폭들이 속속 철창 신세를 졌다. 10년을 주기로 권력과 조폭은 밀월과 전쟁의 관계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일요신문>은 최근 검찰과 경찰에서 파악하고 있는 조폭 관련 자료를 입수, 조폭의 현주소와 변천과정을 다시 한 번 집중적으로 재조명한다.
김대중 정권 말기이던 지난해 5월. 한 사정기관에서 조사한 것으로 알려진 조폭에 대한 이색적인 자료가 돌았다. 국내 조직폭력배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막후 실세’들에 대한 조사자료가 그것. 으레 ‘양은이파’의 조양은, ‘서방파’의 김태촌, ‘OB파’의 이동재 등을 조폭 실세로 거론해 왔던 기존의 자료와는 확연히 달랐다.
2001년 말 정국을 강타한 과거 호남 주먹 출신 사업가와 정치권력과의 결탁 혐의는 사정기관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시선 또한 ‘조폭 보스’에서 ‘배후 세력’으로 옮겨 놓았다. 조폭의 문화가 다시 한 번 변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배후 세력은 4명이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이 모두 각 지역을 대표하는 ‘대부’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연령 또한 50~60대로 노장에 속한다. 또한 이들은 과거 주먹 출신이었을 망정, 현재는 엄연히 주먹 세계를 떠난 사업가로 불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조폭’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다. 한때 광주 국제PJ파 보스로 알려졌던 여운환씨는 사업가인 자신을 언론에서 조폭인 것으로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하기도 했다.
사실상 중앙의 밤무대를 석권하고 있는 호남 조폭은 광주파와 목포파의 경쟁구도가 첨예한데, 호남의 양 대부로 불리는 두 사람 또한 목포 출신 정아무개씨와 광주 출신의 정아무개씨로 나뉘고 있다.
목포 출신 정씨는 지난 DJ정권 실세들과 가깝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다. 반면 광주 출신 정씨는 전혀 외부에 그 모습이 드러내지 않은 그야말로 철저히 숨은 손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이 두 정씨의 정보를 캐기 위해 혈안이 되었으나 광주 출신 정씨에 대해서는 끝내 만족할 만한 정보를 찾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80년대 전국을 장악했던 ‘3대 패밀리’와도 가깝고, 광주 국제PJ파의 막후 인물이라는 소문이 있는 정도이다.
호남에 맞서는 영남 지역 조폭의 대부로는 이아무개씨가 여전히 손꼽히고 있다. 현재 수감중인 이씨 역시 30년 이상 부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 조직의 실세로 군림하면서 현지의 검사 및 정치인 등과 폭넓은 인맥관계를 형성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부산 경남뿐만 아니라 호남 수도권의 주먹 세계에까지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충청권의 대부는 지난 2001년 갑작스런 죽음을 당한
김아무개씨로 꼽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되었으나, 아직도 지역에서의 그 영향력은 살아 있다는 평. 충청 지역의 주먹 세계는 토착세력과 호남세력이 맞서는 양상을 보여 왔다. 김씨 또한 전남 목포 출신으로 호남 주먹세를 배후로 대전서 자리잡은 케이스.
그래서 이 지역 뒷골목에서는 “DJP 정치 연합보다 주먹 연합이 먼저였다”는 말도 나돈다. 지역에서 언론사와 건설사 등을 경영하며 영향력을 넓혀온 그가 사망하자, 당시 충청권 표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주요 대권주자들이 조문을 했을 만큼 그도 정관계 실세들과 가까웠던 것으로 통한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최소한 조폭의 숨은 손이 집중 조명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각각 이용호 게이트와 정현준 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사업가 여운환, 오기준씨 등의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경제 비리가 드러난 후에야 과거 주먹 출신이었다는 점이 집중 부각되기 시작했다.
▲ 이용호게이트에 연루된 여운환씨는 자신이 언론 에 조폭으로 묘사된 것에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 ||
행동대장은 흔히 현장의 장교로 불린다. 각자 행동대원들을 거느리고 보스 또는 중간보스의 명령을 현장에서 직접 수행한다. 따라서 그 조직의 행동대장이 누구이고 몇 명인가에 따라서 그 조직의 힘이 결정된다. 흔히 수사기관에서 파악하고 있는 조직원 수는 이 행동대장까지를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직의 하부 구성원인 행동대원들은 각 행동대장들이 자신의 ‘똘마니’식으로 별도 관리하면서 어떤 임무수행 때에만 차출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부장검사 시절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조폭수사를 담당했던 박기준 부산지검 형사1부장은 “통상적으로 조직폭력배라 함은 폭력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 범죄 조직의 구성원이거나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자, 또는 직접적 관련이 없더라도 조직에 자금을 제공하고 있거나 혹은 그 조직을 이용하고 있는 자들을 총칭하여 일컫는 용어”라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일선 수사 관계자들은 기존의 4단계에 ‘고문’이라는 하나의 계급을 더 얹은 5단계로 파악하고 있다. 고문 혹은 막후 실세는 일단 조직과는 한 다리 건너의 등거리 관계를 유지한다. 이들은 현역에서 은퇴한 전직 주먹 출신이 대부분이고, 간혹 주먹 출신이 아닌 정치인 또는 사업가들도 있다. 이들은 조직과 직접적 연관성은 없지만 후원자 역할을 해주고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서울지방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최근 추세는 사실상 조직의 보스인 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부두목급을 보스로 내세우고 자신은 뒤에서 사업가인 양 행세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현황을 파악하는 보고서 작성시에도 이런 자들을 조직의 보스로 볼 것인지 그냥 배후 인물로 따로 구분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조폭 관련 사건들에 항상 정치인 등의 권력 실세가 등장하는 것 또한 이런 추세와 무관치 않다. 서울지검 특수2부에서 현재 수사중인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은 벌써부터 일부 정치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서울 영등포의 한 쇼핑몰 신축 과정에서도 한 기업의 정계 로비 혐의가 드러나고 있어 현재 검찰과 경찰이 합동으로 수사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영등포 최대 조폭인 J파가 관여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조직의 두목 이아무개씨는 구속됐다.
이밖에도 호텔사업을 하며 전·현 권력 실세와 가까운 것으로 소문난 문병욱씨의 수사선상 주변에도 끊임없이 조폭 세력들이 등장하고 있고, 현대 비자금 1백50억원의 열쇠를 쥔 김영완씨의 집에 침입한 강도단 역시 호남 조폭 출신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드컵 휘장사업 로비에도 조폭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 내 ‘조폭통’으로 알려진 조승식 대전지검 천안지청장은 지난 3월 월간 <신동아>에 쓴 기고문 ‘한국 조폭은 정치인이 키웠다’라는 글에서 “(수사는) 보이지 않는 얼굴을 찾아야 한다. 이는 바로 거물급 조폭, 즉 2선에 숨어 있으면서 휘하의 조폭을 교묘히 조종하고 사업가로 위장해 힘 있는 자들과 유착해 검은 돈을 만지고 부정부패까지 조장하는 그러한 자들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