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기름띠 제거 막바지 단계지만 2차 피해 심각 주민들 ‘울상’
흉물스럽게 손된 송유관은 당시 사고 상황을 그대로 나타낸다. 한병관 기자
지난 1월 31일, 여수 낙포동 GS칼텍스 원유2부두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벌써 보름이 지나고 있다.
싱가포르 국적의 우이산호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리하게 접근하다 부두가 송유관이 터져 발생한 이 사고의 기름 유출량은 164톤에 이른다. 아직까지 사건의 정확한 경위와 정황, GS칼텍스의 사고 범위 축소 여부 등은 조사 단계지만, 여수 지역 사회의 피해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해수면 방제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있지만 그 후폭풍과 경제적 피해는 천문학적인 규모로 예상된다.
<일요신문>은 지난 17일, 사고가 발생한 여수를 찾았다. 기자는 취재 하루 전, GS칼텍스 여수 공장 관계자에게 취재를 요청했지만 해경 조사를 의식해서인지 관계자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날 기자는 사고 현장인 원유2부두를 방문했다. 수문을 무려 세 곳을 거쳐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경비가 삼엄했다. 기자가 찾았을 때 방재작업은 모두 마무리 된 상황이었지만 충돌로 산산조각 난 송유관의 흉물스러운 모습은 여전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신덕마을. 한병관 기자
현지에서 만난 한 부두 관리자는 “이 곳에서 오랜 기간 일했지만 정말 미스터리하다”며 “언론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선주가 비상식적인 속도로 접안한 것도 문제지만 현장 콘트롤타워에서 사전에 아무런 인지도 못하고 충돌했다는 것은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단순한 안전불감사고는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사고 현장 인근에 위치한 여수 신덕마을로 향했다. 신덕마을은 사고가 발생한 낙포동 부두와 지척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26세대 657명의 주민 중 90%가 어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어촌으로 이번 사고로 인해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기자가 마을을 찾았을 때는 우천 관계로 금일 방재작업을 내일로 미룬 상태였다. 마을 곳곳에는 방재 대책위 천막과 이곳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민주당 대책위 천막이 눈에 띄었다. 2주간 해상 방재작업으로 마을의 해수면의 기름띠는 어느 정도 제거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보인 모습일 뿐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조형근 신덕마을 이장은 “해상의 기름띠는 어느 정도 제거됐지만 정작 주민들의 생활터인 갯벌의 방재작업은 손도 못대고 있다”며 “갯벌을 발로 밟으면 지금도 기름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조금만 뻘을 드러내고 가스가 분출된다. 신덕마을의 주생산품인 바지락(양식), 개불, 해삼, 멍게는 물론 우럭 양식까지 피해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이장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수 년간 이어진다는 것이다. 회복이 관건인데, 태안의 사례를 보면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라며 “미역, 톳, 다시마 등 해조류들은 다년생 식물이다. 앞으로 이러한 해조류를 생산하더라도 당연히 좋은 상품은 생산할 수 없게 됐다. 앞으로 생계가 더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덕마을 방재대책위 천막. 한병관 기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측과 마을 주민들 간의 보상 협상이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측은 다행히 사고와 관련한 보험에 가입된 상황이며 보험비 수령과 관계없이 주민들에 선보상을 약속한 상황이라고 한다. 다만 마을주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피해액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앞서의 조 이장은 “상당수 주민들이 장터 직거래를 통해 상품을 내다팔고 있기 때문에 일부 증빙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신덕마을은 이번 사고에 지격탄을 맞은 1차 피해자지만 보상 대상자라는 점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 사태가 여수 경제 전체로 번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취재를 통해 목격할 수 있었다.
신덕마을 옆에 위치한 소치마을의 한 횟집 운영자는 “이번 사고는 지극히 국한적이다. 기름띠의 범위는 크지 않다. 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여수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우리 역시 횟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태 이후 손님이 뚝 끊겼다. 가게를 열어 놓고 횟감과 음식을 준비해 놓고 있지만 신선도가 떨어진 상품들은 그대로 폐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우리로서는 정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고 혀 끝을 찼다.
한산하기 그지없는 여수 중앙동 어시장. 한병관 기자
기자는 늦은 오후 여수 중앙동 어시장을 찾았지만 사람들로 붐벼야 할 이곳은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어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보시다시피 한산하다. 오늘 비가 와서 손님이 적은 것도 이겠지만 사고 이후 여파가 예상 외로 크다”라며 “현재 지역 사회에서 지역 생산품 소비장려를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솔직히 이번 사고로 인한 매스컴 노출이 우리에겐 직격탄”이라고 설명했다.
전남 여수=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