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는 ‘꿀’이지만 원나잇은 ‘앙돼요’
올림픽에는 혈기왕성한 젊은 남녀들이 모이는 만큼 ‘데이트’에 열을 올리는 선수들도 많다. 개막식과 ‘콘돔 오륜기’ 합성.
뉴질랜드의 스노보더 선수인 레베카 토르가 올림픽 개막 며칠 전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틴더’란 일정 범위 내에 있는 이성의 사진을 보고 데이트를 신청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특히 이번 소치 올림픽 선수촌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슬로프스타일에 출전했던 토르는 경기가 있기 하루 전날인 지난 8일에도 공개적으로 “틴더에서 자메이카 봅슬레이팀 선수들을 만나고 싶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으로 ‘틴더’를 사용했었다. 그래서일까. 다음 날 벌어진 준결승 경기에서 토르는 10위에 그치고 말았으며, 결국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반면 미국의 대표선수인 제니퍼 앤더슨은 달랐다. 슬로프스타일 여자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앤더슨은 “틴더에는 귀여운 남자 선수들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올림픽에 집중하기 위해서 앱을 삭제했다”고 털어놓았다.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던 두 선수가 상반된 경기 결과를 내자 곧 ‘틴더’와 올림픽 성적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요컨대 ‘섹스는 정말 올림픽 선수들에게 해가 될까?’란 질문이 그것이었다.
사실 이런 논쟁은 올림픽이 벌어질 때마다 늘 불거지곤 했다. 이미 몇몇 선수들이 밝혔듯 올림픽은 오직 세계 기록과 메달을 위해 모인 곳만은 아니다. 어떤 선수들에게는 세계 각국의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데이트의 장이 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니 선수촌 안에서 매일 불타는 밤을 보내는 선수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던 미국의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였던 호프 솔로는 “야외에서 섹스를 하는 선수들을 여럿 봤다. 잔디 위나 건물 사이에 드러누워서 추잡한 행동들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올림픽 기간 동안 선수들이 소비하는 콘돔 개수도 어마어마하다. 이번 소치 올림픽에 배포된 콘돔 개수는 10만 개를 훌쩍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15만 개의 콘돔이 배포됐던 런던 올림픽과 맞먹는 수였다.
그렇다면 섹스는 경기를 앞둔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앤더슨은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정말 섹스를 멀리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누구는 ‘중요한 시합을 앞둔 선수일수록 섹스를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누구는 ‘섹스와 경기력은 별개의 문제다’라고 주장한다.
먼저 ‘금욕하는 것이 좋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경기 전에 섹스를 하면 경기력이 저하된다’는 믿음은 사실 과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굳게 믿고 있는 선수들과 감독들은 많다.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 생기는 욕구 불만을 경기로 풀거나, 남성 호르몬과 아드레날린을 체내에 최대한 보존한 채 경기에 임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가령 미 프로미식축구팀인 ‘버펄로 빌스’를 네 번의 슈퍼볼에 올려놓았던 마브 레이비 감독은 슈퍼볼 경기 때마다 선수 전원에게 섹스 금지령을 내렸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네 번 모두 슈퍼볼에서 패했다). 또한 무하마드 알리는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는 6주 전부터 섹스를 하지 않았으며, 뉴욕 자이언츠의 전설인 로렌스 테일러는 경기 전날 밤 상대팀 핵심 선수의 호텔방에 콜걸을 보내 힘을 빼도록 한 적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소치올림픽에서 데이트신청 앱 ‘틴더’를 애용한 레베카 토르(왼쪽)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틴더’를 삭제한 제니퍼 엔더슨은 금메달을 땄다. 위는 선수촌 숙소.
하지만 이와 달리 섹스가 경기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800m 달리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미국의 육상스타인 데이비드 워틀과 캐나다의 금메달리스트 스키 선수인 카린 리 가드너는 이구동성으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건 ‘경기 전 준비’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전설의 뉴욕 양키스 감독인 케이시 스텡겔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망치는 것은 섹스 자체가 아니다. 섹스를 하느라 밤을 꼬박 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멕시코 몬테레이 공과대학의 스포츠과학부 학장인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는 “사실 섹스는 운동선수들에게 약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그는 “섹스를 하면 긴장이 풀리고 성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경기를 앞둔 선수들의 경우에는 불안감이 해소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출전했던 네덜란드 대표팀의 예를 들었다. 네덜란드 선수들 가운데 일부는 월드컵에 아내를 데리고 왔고, 그해 네덜란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대해 메디나는 “섹스가 결정적인 작용은 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분명 도움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좋은 예로는 칠레 축구대표팀 선수인 엘리아스 피게로아가 있다. 피게로아의 말에 따르면 칠레 대표팀 감독은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선수들에게 당일 낮에 섹스를 할 것을 권했고, 피게로아는 경기 전은 물론이요, 경기가 끝난 후에도 섹스를 하곤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피게로아는 “섹스를 하면 긴장이 풀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메디나에 따르면 이처럼 섹스는 경기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고, 육체적 피로보다 어쩌면 더 위험할 수 있는 정신적 피로를 없애는 데 도움을 준다. 메디나는 “펠레조차도 ‘경기 때문에 아내와 잠자리를 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고 지적하면서 “다시 말해 섹스가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 섹스가 선수들의 경기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로드리게즈 스포츠의학과장은 “경기 전 섹스가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은 감독들의 훈련 방법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섹스를 할 때 소비되는 산소량과 칼로리량은 극히 적은 양이다. 로드리게즈는 “섹스를 할 때 소비되는 열량은 200~300칼로리에 불과하다. 마라톤이나 일반적으로 선수들이 훈련을 할 때 소비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양이다. 섹스를 해서 소비되는 열량은 초콜렛바나 탄산음료 한 캔이면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섹스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섹스와 함께 음주나 흡연을 하거나 또는 수면 부족이 동반될 경우다. 이럴 경우에는 분명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에 로드리게즈는 “절제가 답”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선수들은 프로이건 아마추어이건 일찍 잠자리에만 든다면 섹스를 해도 상관없다. 또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술이나 담배를 멀리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운동선수들에게 섹스를 금지해선 안 된다. 섹스가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구엘은 “섹스가 선수들의 경기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더구나 일정한 상대와 잠자리를 가질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면서도 “원 나이트 스탠드를 할 경우에는 다르다. 이럴 경우에는 경기력에 영향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육체적보다는 감정적으로 더 소모가 많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걸까. 이에 대해 지난 2000년 이안 쉬리어 박사와 사만다 맥글론은 <경기 전날 밤 섹스를 하면 경기력이 저하될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와 관련된 의학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기 전날 섹스를 한다고 해서 운동 능력이 저하될 정도로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섹스로 소비되는 칼로리 소비량(2층 계단을 올라갈 때 소비하는 정도의 양)은 세계 정상급 경기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쉬리어 박사가 예를 든 ‘섹스와 운동 성적 간의 관계’를 다룬 의학 연구 결과는 세 가지였다. 전직 운동선수였던 열네 명의 유부남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첫 번째 조사에서는 섹스를 한 다음 날 아침의 악력과 6일 동안 금욕한 후의 악력을 비교했다. 결과는 별 차이가 없었다. 이 연구의 후속으로 콜로라도 주립대학은 열 명의 건장한 유부남(18~45세)을 대상으로 비슷한 조사를 실시했다. 섹스를 한 다음 날과 6일 동안 금욕을 한 후에 악력, 균형감각, 수평 운동, 반응 속도, 스텝 운동, VO2max(최대산소섭취량) 등을 측정했다. 역시 결과는 비슷했다. 세 번째 연구는 섹스를 하고 열두 시간이 지났을 때와 섹스를 하지 않았을 때의 맥박과 심근산소소비량을 측정해 보았다. 두 경우 역시 수치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위의 세 가지 연구 결과를 토대로 ‘경기 전날 하는 섹스는 경기력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부부들은 한 번 섹스를 할 때 20~50칼로리만 소모한다. 결국 녹초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뜻이다.
하지만 위의 연구는 생리학적 측면에만 집중된 것이다. 이보다 섹스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사실 선수들의 의욕, 긴장감, 경기에 임하는 태도 등과 같은 변수들 때문이다. 섹스로 인해 이 변수들이 어떤 영향을 받느냐가 경기 성적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한 스포츠 심리학 가설에 따르면 경기 직전에는 보통 긴장감과 불안감이 최적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 만일 불안감이 너무 높거나 지나치게 긴장할 경우에는 경기 성적이 나쁘게 된다. 때문에 경기 전날 너무 불안에 떤 나머지 잠을 설칠 경우에는 오히려 섹스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섹스를 통해 긴장감이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충분히 느긋한 상태이거나 시합 전에도 성욕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그저 숙면만 취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결론은 어떤 식이 됐든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일상에 커다란 변화를 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관성이 중요한 열쇠’인 것이다. 또한 섹스 파트너가 누구인가에 따라서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가령 10년 동안 함께 산 아내와 할 때와 새 연인과 할 때 혹은 원 나이트 스탠드를 할 때의 심박수와 맥박은 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론은,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쉬리어와 맥글론은 섹스와 운동 성적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다 세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