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을 아들 품에… ‘왕좌’ 길 터준다
정의선 부회장
정 부회장이 현대제철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린 것은 지난 2012년부터다. 이제 2년 만에 아버지를 대신해 현대제철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 셈이다. 그런데 타이밍이 절묘하다. 고로 건설이 마무리됐고, 현대하이스코와의 냉연부문 사업구조조정을 마쳤다. 정주영 창업회장 때부터 숙원이었던 일관제철소 경영을 정 부회장이 맡게 된 셈이다. 투자부담, 계열사와의 복잡한 사업조정 부담 없이 일관제철소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다. 지난해 현대제철은 오랜 투자에 따른 부담과 철광 시황 부진 등이 겹치며 매출과 이익 모두 역성장을 했다. 뒤집어 보면 정 부회장이 그만큼 실적개선을 할 여지가 커진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은 아직 실질적인 그룹 경영권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현대제철을 멋지게 되살린다면 정 부회장은 지분율을 떠나 그룹 총수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룹 지배구조에서 현대제철이 갖는 위치도 의미심장하다. 표면적으로 철강부문의 대표 회사다. 정 부회장이 자동차부문에 이어 그동안 정 회장이 직접 챙겼던 철강부문에서도 본격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분구조를 살피면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먼저 현대제철의 최대주주가 정 부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는 기아차(19.78%)다. 그리고 현대제철은 현대모비스의 2대 주주(5.66%)다. 현대제철(11.84%)과 현대모비스(6.96%)는 정 회장의 개인지분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이때 지분율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현대제철이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이다. 즉 기아차가 가진 현대제철 지분과 현대제철이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을 맞바꾸는 방법이다. 두 지분의 가치는 1조 7000억여 원으로 비슷해 거래는 딱 떨어진다. 그러면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율, 즉 정 부회장이 확보할 현대모비스 지분율을 22.54%까지 늘릴 수 있다. 여기에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6.96%까지 상속·증여를 받으면 지분율은 29.5%까지 높아진다.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또 자동차부문에 딸려 있던 그룹의 철강부문이 따로 떨어져 정 회장 일가가 직접 지배하는 구조가 된다. 현대제철이 일관제철소가 된 만큼 기존의 자동차용 강판 공급 역할을 벗어나 스스로 하나의 사업모델을 가진 소그룹이 될 수 있다. 현대제철과 기아차 간 주식 맞교환이 성사된다면 현대제철 최대주주는 정 회장이 되고, 현대제철은 19.88%에 달하는 자사주를 확보할 수 있다.
익명의 한 증권사 연구원은 “정 부회장이 순환출자구조를 깨고 현대모비스 최대주주가 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다.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위해서라도 각 계열사가 사업 특성에 따라 수평적으로 배열되는 지주사 체제로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정주영 창업회장 때부터 숙원이었던 일관제철소 경영을 정의선 부회장이 맡게 됐다. 사진제공=청와대
관건은 정 부회장이 과연 기아차가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과 맞바꿀 만한 자산을 가지고 있느냐다. 최근 가치로 따지면 현대글로비스 지분 31.88%가 2조 7000억 원, 이노션 지분 40%가 4000억여 원이다. 4월 현대엔지니어링과 합병이 예정된 현대엠코 지분 25%의 현재가치는 약 2500억 원이다. 기아차 지분 1.74%까지 합하면 현재가치만 최소 4조 원 이상이다.
하지만 앞으로 그 가치는 높아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은 양사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결합으로 평가받고 있다. 합병법인의 주요 주주가 될 정 부회장의 지분가치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 현대엠코 지분 25%를 가진 현대글로비스도 비슷한 상황이다. 또 이노션 역시 매년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데다, 상장 가능성이 있다. 종합하면 현재보다 10~20% 보유자산 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 승계를 완료하기 위해 필요한 자산은 약 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족한 부분은 부친인 정 회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대차 지분 5.2%(2조 6700억 원), 현대모비스 지분 6.96%(2조 1200억 원), 현대제철 지분 11.84%(1조 900억 원) 등 5조 9000억여 원어치를 제외하고도 정 회장은 주요 계열사 지분(현대글로비스 11.51%, 현대엠코 10%, 현대하이스코 10%)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시가로 1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이밖에 정 회장 부자는 올해에만 800억 원 가까운 배당을 받는다. 그동안 누적 배당금 수익만으로도 상당한 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준비는 사실상 거의 다 된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