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황혼이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98년부터. 그 후 황혼이혼 소송은 매년 크게 증가, 지난해 말 현재 소송건은 지난 96년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대법원도 지난 2000년 9월 사실상 처음으로 황혼이혼을 용인하는 판결을 했다. 가부장적 가족관계의 전통 가족관이 새롭게 정립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지난 98년 아흔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해 ‘황혼이혼’을 사회적 관심사로 만들었던 이아무개씨(72)가 결국 대법원에서 승소판결과 함께 위자료 5천만원, 현금 3억원과 남편 소유 부동산의 1/3을 재산분할 받았던 것.
당시 대법원 민사1부(주심 유지담 대법관)는 이씨의 남편 오아무개씨(92)가 제기한 상고를 기각하며 “40년간 부부로 생활해 오다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소송을 제기한 원고에게도 책임이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평생을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으로 가정을 이끌며 한 차례 이혼 소동이 있었음에도 계속 억압적으로 자신의 생활 방식을 강요하는 한편 부인을 집밖으로 내보낸 뒤 생활비도 주지 않을 뿐더러 부인과의 상의 없이 재산을 일방적으로 장학기금으로 기부한 남편에게 있다”고 밝혔다.
당시 대법원 관계자는 “굳이 황혼기라는 이유로 이혼을 불허하거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며 “파탄의 정도와 주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서 이혼 판결을 내린다”고 밝혀 법원의 판결원칙인 ‘케이스 바이 케이스’를 재확인했다.
대법원이 매년 발간하고 있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97년 조사된 이혼 사건 가운데 만 60세 이상의 이혼 소송 당사자수는 2백65명이었으나, 2001년에는 6백6명, 지난해에는 8백70명으로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또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혼인·이혼 통계 결과’에 따르면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함께한 부부의 이혼건수가 10년 전인 지난 92년에 비해 무려 7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이혼 연령도 남자의 경우 40.6세, 여자 37.1세로 10년 전인 92년에 비해 남녀가 각각 3.2세, 3.7세가량 높아졌다. 특히 20년 이상 동거한 황혼부부의 이혼 건수는 92년 3천3백건이던 것이 지난해 2만2천8백건으로 7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실정이라면 ‘살 만큼 살았는데 문제 없겠지’라고 생각한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을 ‘간 크게’ 대했다간 불시에 황혼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계획적인 ‘황혼이혼’이 90년대 이후 급격히 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황혼이혼을 원하는 여성들이 남편의 정년퇴직 때까지 꾹꾹 참고 기다렸다가 퇴직금을 받으면 이혼소송을 내는 ‘치밀한 계획 이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후생성 통계를 보더라도 20년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부부들의 이혼율이 최근 16.9%에 달해 50년 전에 비해선 5배, 80년대 중반에 비해서도 2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추세에 따라 ‘낙엽족’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는데 비 오는 날 달라붙으면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낙엽에 비유해 정년퇴직 후 경제력이 없는 남편들이 아내에 이혼당하지 않고 의존하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일본의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혼 추세를 볼 때 ‘정년·퇴직이혼’은 ‘남의 나라 얘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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