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종횡무진… ‘늦게 핀 꽃’이 아름답다
어릴 적에 귀여운 용모와 탁월한 기재로 주위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입단 후 6~7년 동안은 그저 그런 정도의 성적에 머물러 있었고, 사람들도 기대를 접기 시작했는데, 2006년부터 슬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사람마다 달라지지만, 누구나 입단 후 1~2년은 반짝하는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었다. 김혜민은 그 해 중국 윈난(雲南)성 다리(大里)시가 신설한 제1회 대리배(대회 이름은 한자의 우리 발음으로 표기한다) 세계 여자바둑대회에서 박지은 9단과 함께 결승3번기에 올라가 첫 판은 이겼으나 둘째 판을 지고, 마지막 판을 반집으로 분패하며 준우승했다. 타이틀은 놓쳤으나 그게 전환점이었다. 2007년 한여름이었다.
이후 김혜민은 상승일로였다. 2008년 제1회 세계 마인드스포츠 대회 단체전 은메달, 2009년 제8회 정관장배 한국 대표를 거쳐 2010년에는 제2회 BC카드배 본선64강에 진출, 남자 강호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기량을 보여 주었고, 2012년에는 제1회 화정차업배 세계 여자 단체전에 박지은 조혜연과 팀을 이루어 출전해 3전 전승으로 우승을 일구었으며 지난해 마침내 제18기 여류국수전 결승에서 박지은을 2 대 1로 물리치고 우승하면서 7단에 승단했다. 27세는 ‘늦은 나이 개인 첫 타이틀’ 부문에서 기록이다. 그래서 승부의 세계, 바둑계에서는 보기 드문 ‘대기만성’으로 치하 받고 있는 것. 국내 여자 기사들의 타이틀 획득 기록은? 박지은 2000년 17세, 제1기 여류명인전 우승. 조혜연 2003년 18세, 제9기 여류국수전 우승. 김윤영 3단(1989년생, 2007년 입단) 2010년 21세, 제4기 여류기성전 우승. 박지은(1991년생, 2006년 입단) 3단 2012년 제17기 여류국수전 우승. 최정(1996년생, 2010년 입단) 4단 2012년 제13기 여류명인전 우승이다.
그리고 올해, 여류국수 김혜민은 2월 16~22일 중국 장쑤(江蘇)성 장예(姜堰)시 친후리조트에서 열린 제4회 황룡사 쌍등배 한-중-일 여자 단체전 1차전에서 3연승을 올림으로써 흐름을 우리 쪽으로 돌려놓았다. 7국이 진행된 1차전의 전반부는 중국의 쑹룽후이 5단(22, 재중동포)이 1~3국을 제압하면서 분위기를 장악했는데, 4국에서 이번 대회 최연소 참가자, 후지사와슈코 9단의 손녀인 일본의 후지사와 리나 2단(16)이 브레이크를 걸어 주었고, 김혜민이 바통을 넘겨받은 것. 김혜민은 4월 6일 같은 곳에서 시작되는 2차전을 준비하고 있다. 대기만성 김혜민이 국내외에서 어디까지 달릴지 주목된다. 오래, 멀리, 롱런하면서 일찍 피는 꽃보다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새삼스럽게 한번 환기시켜 주기를 기대한다.
이광구 객원기자
황룡사쌍등배 흑 - 김혜민 7단, 백 - 루자 2단 ‘거북이’의 필살 역전타 소개하는 바둑은 김혜민이 2연승을 올린 바둑. 상대는 중국의 루자(26) 2단. 흑을 든 김혜민이 초반엔 앞서 나갔으나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양곤마 비슷한 걸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김혜민은 대기만성형답게 두텁고 침착한 기풍. 멋진 수읽기로 상대를 일거에 궤멸시키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김혜민은 말투도 느리고 차분하다. 오죽하면 별명이 ‘거북이’ 아닌가…^^ <1도>는 흑이 상변 대마를 수습하는 과정. 흑1로 치받고 백2로 눈모양을 없애러 오자 흑3으로 두 점을 살린 후 5로 끊었다. <2도> 백1에서 3으로 흑 두 점을 제압했는데, 백3이 후환을 남겼다. 물론 아직은 몰랐다. 백3, 5, 7로 일단은 흑 대마가 살 길이 잘 안 보이니까. 그런데 <3도> 흑1 몰고 3으로,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밖에서 가만히 막은 수가 백의 의표를 찌른, 거북이의, 회심의 일타였다. <4도> 백1은 수상전의 맥점인데, 이건 또 착각이었고, 흑2로 또 한 번 가만히 바깥을 막은 수가 필살의 역전타. 백1은 부분적으로는 맥점이었으나 자멸로 가는 패착이었다. 백3으로 흑 석 점을 잡으면 산다고 본 것인지 모르지만, 흑4로 찝어 죄고 6으로 파호하자 거꾸로 백 대마가 잡혀 버린 것. 얼른 보면 백 대마는 빅으로 산 것 같다. 그러나 흑A로 키워 버리면 ‘죽음의 삿갓 궁도’다. <5도>는 덫에 걸린 백 대마의 몸부림. 백1, 3에서 5로 패 모양을 만들었으나 백5 자체가 흑6과 교환되어 손해가 크고, 패는 패지만 서너 수 늘어진 패. 패가 아니었던 것. 백13으로 패를 따내자 흑은 14, 16으로 수를 늘려 놓고 18로 자리에 한 번 되따낸 후, 백19 팻감 쓰고 21로 다시 패를 따내자 흑22로 이쪽 대마에 가일수하는 것으로 깃발을 꽂았다. ‘늘어진패’지만, 이쪽 흑 대마에게 덤비는 수가 무수한 팻감, 그걸로 물고 늘어질 수도 있으므로. <2도> 백3으로는 <6도> 백1로 코붙이는 수가 정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흑도 흑2, 4로 활용하는 수가 있다. 이건 백5 다음 흑A를 선수하고 흑B로 집을 내면 흑도 그냥 산다. 백은 이게 싫었던 것. <4도> 백1로도 <7도> 백1쪽을 젖히는 것이 나았다고 한다. 단, 흑2 때 백3으로 이으면 흑4로 넘어가 실전과 같아지고, <8도> 백1쪽에서 단수쳐도 흑2에서 4-6으로 오른쪽 백이 잡히는데, <9도> 백1쪽을 끊는 수로 있어 흑6까지 패. 여기서 패가 나면 흑 대마도 살겠지만, 단패이므로 백은 이번에는 정말 아래쪽 흑 대마를 잡자는 팻감이 부지기수다. 그랬으면 승부는 몰랐다는 것. 또 하나… <4도> 흑2 때 <10도> 백1쪽을 막으면? 흑2로 계속 내려서는 수가 있다. 다음 백3이면 흑4로 잇는다. 왼쪽은 빅이 되면서 오른쪽 백이 자동사한다. 백3으로 흑4 자리에 따내면 흑A! [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