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는 과거 어느 복권보다 1등 당첨금이 많다. 1등에 당첨될 경우 당첨자는 그야말로 벼락갑부 대열에 낀다. 그러나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로또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법정 소송도 속출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사기 사건과 재산분배를 둘러싼 소송, 여기에 신기루 같은 ‘대박’을 좇다 결국 ‘쪽박’만 찬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맑은 날 벼락 맞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로또 복권 당첨. 그 꿈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패가망신의 길에 이르는 갖가지 군상들의 모습은 요즘의 힘든 사회상황을 반영한 부분이 크다.
주 1회 추첨하는 로또복권이 40회차에 이르면서 이를 둘러싼 갖가지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만발하고 있다. 지난 8월, 자신이 로또복권에 당첨됐다고 속여 수천만원을 가로챈 김아무개씨(35)가 유가증권 위조 및 사기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윤아무개씨(39)에게 “로또복권에 당첨됐는데 변호사 수임료와 경호비용 등이 필요하다”며 일곱 차례에 걸쳐 현금과 차량 1대 등 5천3백여만원의 금품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
김씨는 당첨자 번호가 발표된 즉시 그 번호로 로또복권을 구매해서 위의 날짜와 횟수를 지난주로 위조하는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속여왔던 것. 경찰 관계자 역시 “우리 경찰이 봐도 진짜 당첨된 복권으로 착각할 정도로 감쪽같이 위조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지난 6월에는 34억원의 1등 로또복권 당첨금 분배를 놓고 울산에 사는 김아무개씨(38)와 그의 동거녀 안아무개씨(33)가 주먹다짐을 벌여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김씨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당첨금 가운데 5억원을 달라”, “내가 당첨된 돈을 너한테 왜 줘야 하느냐”며 말다툼을 벌이다 급기야는 주먹질까지 주고받았다.
1등에 당첨된 로또복권이 자신이 분실한 것이라며 이를 습득한 사람을 경찰에 고소한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기도 의왕시에 사는 김형인씨(가명·여·34)는 어느날 변호사 사무장 아무개씨와 함께 허겁지겁 경찰을 찾아와 “10회차 1등(당첨금 64억원)에 당첨된 사람인데, 복권을 잃어버렸고 이것을 습득한 사람이 은행에서 당첨금을 찾아갔다”며 습득자를 점유·이탈물 횡령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했던 것.
하지만 조사 결과, 누구인지도 모르는 복권 습득자를 고소한 김씨의 주장은 거짓인 것으로 드러나 거꾸로 ‘괘씸죄’로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경찰은 “김씨 주장처럼 뒷면에 이름과 출생연도가 적힌 1등 복권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라고 전하며 혀를 찼다.
‘대박’을 꿈꾸다 ‘쪽박’을 찬 사람들의 얘기도 심심찮다. 도박중독자들이 만든 인터넷 사이트 ‘단도박(www.dandobak.co.kr)’에 올라온 사연.
자신을 월급 1백30만원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한 ‘로또 중독자’는 “한번에 무려 3천만원어치 로또를 샀다. 아내 몰래 은행과 카드사에서 대출받고, 갖고 있던 현금으로 모은 돈이었다. 일주일 내내 로또 3천 장에 서로 다른 숫자를 만들어내느라 고생했다. 그러나 1등은 고사하고 겨우 2백60만원만 건졌다. 그것도 세금을 떼니까 2백50만원도 안됐다”며 빚진 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사연은 수두룩하다.
30대 직장인이라는 한 네티즌은 “2백만원을 대출받아 복권을 샀지만 겨우 4등 1개, 5등 9개 당첨됐다”라며 막막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생전 처음 복권을 샀다는 가정주부도 “평소에 단돈 10원까지도 가계부에 일일이 적던 내가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 남편 몰래 10만원을 투자했지만 간신히 1만원만 건졌다”며 씁쓸해 했다.
로또복권이 ‘부부싸움’의 주범이 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매주 1만원씩 로또에 투자했던 회사원 전수일씨(가명·35)도 며칠 전 아내와 크게 싸웠다. 복권을 사기 전날 꿈에 전씨는 셀 수 없을 정도 많은 말들이 자신의 집으로 달려 들어오더라는 것.
‘길몽’으로 여긴 전씨는 다음날 과감히 30만원어치의 로또를 구입했다. 하지만 당첨금 1만원인 5등만 3개 건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이 꼬일려고 그래선지 전씨의 복권 30장을 아내가 우연찮게 발견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복권’과 같은 요행수를 극도로 불신했던 아내였다. 그날 이후 며칠동안 ‘냉전’을 치러야 했다며 전씨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처럼 로또복권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급부상하자 ‘안티로또’를 표방하는 단체와 네티즌 모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3월엔 불교와 기독교 등 종교단체에서 “로또복권이 사행심을 부추기고 건전한 근로의식을 저하시키고 있다”며 로또복권 발행 및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로또복권이 한탕주의를 확산시키는 등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나 받아들이기 어렵고, 설사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가처분 신청이라는 민사상 권리 구제수단을 통해 해결할 문제인지 의문”이라며 기각했다.
하지만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만 ‘로또 죽이기’ ‘안티로또’ 등 3일 현재 13개 모임이 ‘로또 불매 운동’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네티즌은 “내 돈 1백만원, 황금 같은 내 돈, 힘들게 고생한 건데, 이제 다시는 로또 쳐다보지도 않을 겁니다”라며 안티 로또 모임에 가입한 동기를 밝혔다.
‘여중생 사망사건’ 당시 주한미군을 노골적으로 비난한 노래를 불렀던 노래패 ‘우리나라’도 “열나게 살아봐도 안되더라/ 조또 인생역전”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발표, 안티 모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