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 보지 말랬잖아!” 분노의 ‘연탄불 형벌’
강 아무개 씨와 정 아무개 씨(52)가 동거를 시작한 것은 10년 전. 광주 동구에 자리 잡은 강 씨는 집안일을 돌보며 동거남 정 씨가 벌어오는 월급으로 생활했다. 교구제작 업체에 다니는 정 씨의 월급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강 씨와 정 씨는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나갔다. 두 사람은 여느 부부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동거남 정 씨가 인터넷 음란물에 빠져들면서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정 씨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강 씨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 일쑤였다. 평소 음란 동영상을 내려 받아 즐겨보던 정 씨에게 강 씨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야동 좀 그만 보라”고 사정하는 것밖에 없었다.
한번 음란물을 접한 정 씨의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정 씨는 성인 동영상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영상을 보며 자위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강 씨가 보고 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강 씨는 정 씨에게 수차례 성인 동영상을 끊고,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정 씨가 이마저도 거부하면서 강 씨와 정 씨의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인터넷 음란물에 빠져든 정 씨는 8개월 전부터 강 씨와의 잠자리도 거부하기 시작했다. 부부와 다름없다고 생각한 강 씨는 이 모든 것이 정 씨의 음란물 중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자신과의 잠자리를 거부했던 정 씨가 밖에서는 인터넷으로 알게 된 다른 여성을 만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강 씨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사건 발생 당일인 지난 16일도 강 씨와 정 씨는 음란 동영상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 그날은 강 씨가 밤 11시가 되어서야 정 씨의 식사를 챙겼다. 그러나 이미 둘 사이는 파국으로 치달은 후였다. 결국 강 씨는 정 씨가 먹는 추어탕에 수면제를 탔다. 수면제가 섞인 추어탕과 막걸리를 마신 정 씨는 잠에 빠져들었다. 정 씨가 잠든 것을 확인한 강 씨는 방안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연탄불을 피웠다. 그리고 잠시 후 강 씨는 사건 현장을 빠져나와 근처 남동생 집으로 향했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17일 광주 동부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가 사람을 죽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받은 경찰은 강 씨의 남동생 집으로 출동해 강 씨를 체포했다.
경찰에 체포된 강 씨는 경찰조사에서 “연탄불을 피워 정 씨와 함께 죽으려다 무서워서 혼자 빠져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체포 당시 지나치게 예민했던 강 씨의 모습에 경찰은 강 씨가 단순히 동반자살을 하려다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광주 동부경찰서 형사1팀 관계자는 “강 씨가 체포 당시 남동생에게 ‘왜 신고를 했느냐’며 울면서 소리치던 모습이 동반 자살을 시도했던 모습치고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며 “같이 죽으려 했다면서 곧바로 집을 빠져나온 것도 정황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의 추궁 끝에 강 씨는 정 씨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8개월 전부터 정 씨가 성인 동영상만 보면서 잠자리도 거부하고 밖으로만 돌자 갈등이 쌓인 것 같다. 강 씨가 범행 자백 후 ‘따라죽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며 “좀 더 정확한 경위를 조사한 다음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