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안필드’ 있다면 성남엔 ‘탄필드’ 있다
K리그 축구장 명칭도 유럽처럼 팀의 개성을 살린다면, 팬들이 축구에 더욱 애착을 느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상암벌’로 불리는 서울 월드컵경기장. 사진제공=FC서울
올드 트래퍼드(Old Trafford),안필드(Anfield), 캄프 누(Camp Nou),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 등은 유럽 명문 축구팀들의 홈구장 이름이다. 축구장의 명칭은 그 경기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팀의 개성과 역사를 나타낸다.
반면 한국 축구장들의 공식 명칭은 대부분이 ‘OO월드컵경기장’, ‘XX종합운동장’ 등으로 지자체명을 붙여 단순하게 불린다. 현행법상으로 경기장의 소유는 구단이 아닌 지자체에 있어, 구장명칭사용권도 지자체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지역명이 들어간 경기장 이름을 굳이 특정 기업이나 구단의 특성에 맞게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일부 구단들과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정식 명칭이 아닌 구단들의 홈 경기장을 부르는 애칭이 따로 있다. FC서울의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애칭은 ‘상암벌’이다. 통상 상암구장으로 불리던 것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상암벌이라는 애칭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말도 나오고 있다. 상암벌의 행정구역상 주소는 상암동이 아닌 성산동이라는 것이다.
전북현대도 지역 명칭을 따서 홈경기장의 애칭을 지었다. 전북의 홈은 전주월드컵경기장이다. 그래서 축구 팬들은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전주성’으로 부른다. 수원삼성블루윙즈의 홈 경기장 수원월드컵경기장은 팬들 사이에서 ‘빅버드’로 통칭된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지붕 모양이 위에서 바라봤을 때 거대한 새가 두 날개를 활짝 펼친 형상이라는 것에서 유래됐다. ‘푸른날개(블루윙즈)’라는 수원 구단의 명칭도 홈구장의 애칭에 영향을 줬다.
울산현대의 홈경기장인 울산 문수 월드컵경기장의 애칭도 축구장 외형과 지역 특성에서 따왔다. 울산 홈의 애칭은 ‘빅 크라운’이다. 경기장 상단을 둘러싼 지지대구조물이 하늘로 향해 있는데, 야간 조명에 비친 그 모습이 신라시대 왕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지어진 애칭이다. 문수 월드컵경기장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1년에 문수 월드컵경기장 개장을 즈음해 애칭 공모를 했다. 그때 울산의 한 중학생이 제안한 ‘빅 크라운’이 당선됐고,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울산 문수 월드컵경기장의 또 다른 애칭은 ‘호랑이굴’이다. 울산현대호랑이축구단이라는 명칭에서 나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남드래곤즈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하는 전남은 홈인 광양 축구전용구장을 ‘드래곤 던전’이라고 부른다.
유럽 축구단의 홈경기장 명칭을 이용해 애칭을 지은 구단들도 있다. 올 시즌 시민구단으로 재창단한 성남FC의 홈구장은 탄천 종합운동장이다. 축구 팬들은 탄천의 앞 글자 ‘탄’을 따서 ‘탄필드’라고 부른다. 잉글랜드 리버풀의 홈경기장 ‘안필드’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난해 강등돼 올 시즌 K리그챌린지(2부 리그)에서 경기를 치르는 강원FC는 강릉 종합운동장을 메인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강릉 종합운동장을 ‘감자 누’라고 부른다. 스페인 명문구단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 명칭인 캄프 누를 강원도의 특산물 감자로 바꾼 애칭이다.
또한 팀을 상징하는 색의 특성을 살린 경기장 애칭도 있다. K리그챌린지의 대구FC 홈구장 대구 월드컵경기장의 애칭 ‘블루 아크’와, 대전시티즌 홈구장 대전 월드컵경기장이 ‘퍼플 아레나’로 불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식명칭과 팬들의 애칭이 같은 경기장도 있다. 포항스틸러스의 홈구장 ‘포항 스틸야드’로, 포항의 모기업 포스코를 상징하는 ‘Steel(철)’과 ‘yard’의 합성어다. 스틸야드는 1990년 11월 1일이 준공된 한국 최초의 축구 전용구장으로 처음부터 스틸야드라는 명칭을 사용해왔다.
이처럼 축구장마다 팀의 개성이 담긴 애칭이 있지만, 앞서 말했듯 경기장을 지자체의 관리재단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명칭을 쉽게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구단 측에서도 홈구장 명칭 변경에 대해서는 “구단이 아닌 경기장 관리재단에 달린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한 축구경기장관리재단의 관계자는 “경기장의 명칭은 지자체 법 조례에 명시돼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바꾸기 위해선 조례를 수정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도로 표시판, 행정 기록 등도 다른 부분에서도 고쳐야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축구장의 명칭을 유럽의 경기장처럼 특색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문제는 몇 번 제기됐었다. 따라서 경기장 명칭으로 바꾸는 문제가 앞으로 의논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K리그클래식 한 구단의 서포터스로 활동하는 홍 아무개 씨는 “축구단은 구단과 선수뿐만 아니라 구단이 위치한 지역과 팬 등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축구장은 구단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곳”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경기장이 정식 명칭과 팬들이 부르는 애칭 두 가지로 쓰이면서 K리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팀의 개성을 살린 경기장 애칭이 정식 명칭이 된다면 팬들이 팀에 더욱 애착을 갖고, K리그를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인데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