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25일 새벽 ‘방광현상’이 일어났을 때 도선사측이 찍은 비디오 화면. 불상의 배 부분 등에서 초록빛이 명멸 했다. | ||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종교는 인류가 태동하면서부터 탄생했다. 종교학자들은 종교의 탄생 배경을 ‘나약한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예로부터 종교는 신비스런 조화를 낳기도 한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현실 가능한 것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종교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교는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신비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적인 신비 현상으로 인류가 흥분했던 사건은 수도 없이 많다. 성모마리아상의 눈에서 피가 흘러내린 사건도 있었고, 대웅전에 모신 부처상에 땀이 배어나는 일도 있었다. 천년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가 부처상에서 피어나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최근 북한산에 위치한 고사찰인 도선사 대웅전에 모신 삼존불상과 탱화에서 ‘방광(放光)’현상이 나타나 또다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방광현상은 외부에서 빛이 투사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발광체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빛을 뿜어내는 현상.
이 부처상의 재질은 은행나무로 만들어진 부처 원형 위에 금으로 덧칠한 것. 때문에 과학적으로 볼 때 이 부처상이 방광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 까닭에 세인들은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며 이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방광현상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가 이 사찰을 찾은 것은 지난 10월8일이었다. 도선사의 주소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 산 264번지. 우이동 북한산 입구에서 4k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선사 입구에 들어서자 길 양편에는 최근 나타난 방광현상을 알리는 홍보 현수막들이 여기저기에 나부끼고 있었다.
경내에는 신도들로 붐볐다. 우연히 마주친 한 신도의 말에 의하면 방광현상이 나타난 지난 9월 말 이후 이곳을 찾는 신도의 수가 서너 배 늘었다고 한다. 방광에 대한 소문을 듣고 지방에서 이 사찰을 찾아온 신도들도 수백 명에 이른다고 사찰 관계자는 전했다.
▲ 사천왕상의 비파에서는 방광현상이 다른 어느 곳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 ||
특히 후불탱화의 아미타불 법의 중간 부분과 사천왕상의 비파, 보검 등에서는 방광현상이 어느 곳보다 뚜렷하게 나타나 보는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삼존불상과 탱화에서 나타난 방광현상이 처음 목격된 것은 지난 9월26일 새벽 5시경. 당시 대웅전에는 1백여 명의 신도들이 새벽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1시간 동안 계속된 방광현상을 본 신도들은 흥분과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사찰측은 방광현상을 기록하기 위해 즉시 비디오카메라로 이 장면을 촬영했다.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은 “새벽에 신도님들의 얘기를 듣고 대웅전으로 달려갔을 때 방광현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40년 수도생활에 이 같은 현상은 처음이었다”며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혜자 스님은 “방광현상이 계속된 40분간을 모두 비디오에 담아 두었다. 아직 비디오 내용은 일반에게 공개하진 않고 있지만 신도들에겐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 과연 방광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
도선사측이나 신도들은 나름대로 이 신기한 현상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지만, 공통점은 ‘과학적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서로운, 성스런 빛’으로 이해하고, 이를 국태민안의 정서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 사찰 관계자들의 바람이다.
주지인 혜자 스님의 말.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 있을 징조다. 최근 태풍 매미 등으로 국민들이 모두 어려운 형편인데, 이 같은 어려움이 모두 해소될 수 있는 길을 부처님이 제시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혜자 스님은 또다른 해석도 덧붙였다. 도선사에서 방광현상이 나타난 것은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한민족의 뜻이 하나로 뭉쳐진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신라 경덕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는 조계종으로, 호국불교를 주창해온 대표적인 국내 사찰 중 하나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그리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올해 작고한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영정도 이곳에 있다. 얼마 전 정몽헌 회장의 49재도 이곳에서 열렸다. 혜자 스님은 이를 염두에 둔 듯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분들의 염원이 한데 뭉쳐 나타난 현상”이라고 이번 방광현상을 해석했다.
▲ ‘방광현상’이 일어났던 도선사 대웅전 전경. 지난 8일 취재팀이 도선사를 방문했을 때 많은 신도들로 붐볐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50년 동안 부처님을 믿고 따랐지만 이 같은 현상은 처음이다. 나는 개인적인 소원성취를 위해 33일 동안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정성에 대한 부처님의 화답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감격적이다. 또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모든 일들이 잘 풀리는 징조라고 본다.”
이 같은 사찰측과 신도들의 해석에 대해 과학적인 풀이는 좀 다르다. 전문가들은 “외부 광원(光源)에 의한 빛의 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인 것이다. 한 과학자(화학과 교수)는 “이례적인 일이다. 자세한 분석을 해보지 않아 빛의 반사, 굴절, 투영 등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굳이 과학적 해석을 내린다면 외부 빛에 의해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특히 이 과학자는 “혹 사찰측에서 불상이나 탱화를 청소하는 과정에 형광물질이 포함된 클리너(세제) 등을 사용함에 따라 이 잔류물로 인해 발광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해석도 과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일 뿐”이라고 전제하고 “세제사용에 따른 발광물질 잔류는 가능성이 매우 낮고, 더욱이나 빛이 별로 없었던 새벽시간에 그 같은 현상이 나타난 부분은 쉽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방광현상이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명멸현상을 보인 것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규명이 어려운 부분이다. 발광이 이뤄지면 대부분 반짝이는 현상이 없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든가, 한번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일정 시간 동안 반짝거리며 빛을 발했다는 점은 설명이 어렵다”며 신비현상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었다.
한편 SBS측이 조명전문가를 동원해 현장에서 이 현상을 분석한 결과도 ‘신비한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분석에 참여했던 조명전문가 A씨는 “대웅전 안에는 천정에 샹들리에 3개가 걸려 있었지만 모두 삼존불과는 거리가 있었다. 반사가 된다하더라도 삼존불 등의 몸쪽에서 푸른색으로 반짝거리는 현상이 일어날 수는 없다”며 신비스러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