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쪼개서라도…’ 궁여지책 통할까
우리금융그룹 본사. 박은숙 기자
지난 2일 우리금융지주는 창립 13주년을 조용히 보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를 창립기념일이었지만 최근 분위기를 감안해 별다른 행사를 치르지는 않았다.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과 우리금융 계열사 대표들이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오찬을 함께한 것이 다였다.
이순우 회장은 오찬 자리에서 함께한 계열사 대표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달라”며 “적정 매각가격을 두고 논란의 소지는 있겠지만 현재로선 정해진 길인 만큼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2001년 설립돼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사’라는 타이틀을 얻은 우리금융은 민영화를 앞두고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다. 우리금융 계열사 중에는 이미 새로운 주인을 찾아 이름을 바꾼 곳도 있다.
금융당국이나 우리금융 관계자들은 우리금융 민영화 ‘연내 마무리’를 거듭 확신하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 28일 우리은행 매각에 대해 “6월 말까지 방안을 마련하고 올해 말까지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분할매각 방침에 따라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은 현재 상당히 진척됐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생각이다. 경남은행은 BS금융지주, 광주은행은 JB금융지주로 각각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면서 민영화의 1단계 작업이었던 지방은행계열 매각이 마무리돼가고 있고, 2단계였던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매각도 우선협상대상자가 농협금융지주로 선정되면서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KB캐피탈(옛 우리파이낸셜)처럼 사명이 변경된 곳도 있다는 점이 우리금융 민영화를 순탄하게 바라보는 근거다.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이 연내 민영화 완료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뜻대로 될지 의문이다. 가장 덩치 큰 우리은행 매각을 장담할 수 없어서다. 연합뉴스
실제로 지방은행 매각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우리금융 민영화의 출발은 깔끔하지 못했다. 경남·광주은행 매각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 국회 처리가 몇 차례 연기된 것이 결정타였다. 지방은행들을 분할매각하면 우리금융은 6500억 원의 법인세를 내야 하는데, 우리금융 이사회는 거액의 세금을 내면서까지 지방은행을 분할매각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조특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지방은행 매각이 성사될 수 있다는 것. 신제윤 위원장이 지난 3월 28일 “국회에서 조세특례법이 조속히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NH농협금융지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매각도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신 위원장은 “가격결정 때문에 다소 늦어지는 것일 뿐”이라며 ‘매각 지연’이라는 의견에 반박하기도 했다.
진짜 문제는 우리은행 매각이다. 민영화 1, 2단계 일정이 늦춰진 것이 큰 이유지만 매각 공고는커녕 여태 매각 방안마저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문제로 지적된다. 올 초 예정돼 있던 우리은행과 우리금융의 합병, 우리금융의 상장폐지 일정도 정확한 날짜를 잡지 못한 채 늦춰졌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앞의 문제부터 해결돼야 그 다음 일정도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는데, 지방은행 매각 문제가 늦어지는 바람에 이후 일정도 미뤄지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우리은행 매각 방안으로는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수량과 가격에 따라 입찰자들에게 지분을 분산 매각하는 것으로, 참여 주주는 최소 0.5% 이상 취득해야 하며 10%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이 방식이 채택된다면 우리은행은 하나의 주주가 독자 경영을 할 수 없다. 여러 주주가 지분을 나눠 갖는 ‘과점주주’ 형태를 띤다. 우리은행 덩치가 워낙 커 인수 후보자를 찾기 힘들다는 점, 세계 주요 은행들의 지배구조가 비슷한 형태를 띤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 방안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는데 M&A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그것이 없는 지분 인수는 단순히 투자 개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 후보자를 유인하기 위해 정부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의결권을 위임한다든가, 배정받은 지분에서 추가로 그 절반가량을 언제든 같은 가격에 살 수 있는 ‘특별콜옵션’을 준다든가 하는 다양한 인센티브가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특별콜옵션이란 간단히 말하면 주당 1만 원에 10% 지분을 매입한 주주는 언제든 같은 가격에 5% 지분을 더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나중에 주가가 2만 원이 돼도, 혹은 5만 원으로 껑충 뛰어도 특별콜옵션을 갖고 있는 주주는 1만 원에 지분을 살 수 있다는 것.
재계 고위 인사는 “어느 정도 파격적인 혜택을 줄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경영권이 없다면 무의미하다”고 잘라 말했다. 당장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인 교보생명이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이 확정되면 인수 참여를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예보의 지분 중 독자경영이 가능한 30% 지분을 한쪽에 매각하고 나머지 지분을 ‘희망수량 경쟁입찰’로 쪼개 파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30% 지분을 인수하는 데도 3조~4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인수자를 찾을 수 있을지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이 방안으로 확정, 자칫 인수자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금융 민영화는 또 다시 실패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금융 민영화의 ‘대세’는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가 아니라 ‘조속한 민영화’로 굳어져가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3월 26일 정책토론회에서도 이 점이 강조됐다. 이날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1인 대주주를 찾아 회수자금을 극대화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데 대해 합의가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도 “민영화 3대 원칙을 포기할 때가 됐다”고 했다. 그러나 이 경우 훗날 ‘헐값매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는 존재한다.
신제윤 위원장은 올 상반기 중 우리은행에 대한 매각공고를 내겠다고 했다. 3개월이 채 남지 않았지만 매각 방안마저 아직 오리무중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교보생명마저 등 돌리나 ‘경영권 없으면 구미 안당겨’ 신창재 회장 하지만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나선 곳이 있다. 교보생명이다. 당초 KB금융지주가 우리금융 혹은 우리은행 인수에 뜻이 없음을 밝힐 때만 해도 우리금융 민영화가 또 다시 무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교보생명이 급부상했다. 사실 교보생명은 이전에도 우리금융 인수의 잠재적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됐지만 교보생명 측은 그때마다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다 갑자기 태도를 바꿔 “관심 있는 것이 사실이고 검토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우리금융을 통째로 매각하겠다던 지난 세 차례와 달리 이번에는 우리은행을 떼어 팔겠다고 한 후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신성장동력을 은행업으로 삼고 업계 진출을 노려왔다. 신 회장은 오래전부터 은행업 진출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은행업은 해보지 않았지만 보험과 증권을 보유하고 있는 교보생명이 은행을 손에 넣는다면 종합금융사로 크게 도약할 수 있으며 금융지주사로 꾸릴 수도 있다. KB금융이 인수 포기를 선언했고, NH농협금융은 이미 우리투자증권 패키지를 인수한 터여서 업계에서는 교보생명을 우리은행 인수의 유일한 후보로 보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M&A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신 회장도 은행업 진출과 우리은행 인수 문제만큼은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 연초 “우리은행 매각에 대해 인수를 검토할 계획”이라며 인수 참여를 선언했다. 또 지난 1일에는 “은행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관심이 있다”면서도 “우리은행 가격이 비싸면 인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은행 매각 방안 중 하나로 경영권이 없는 ‘희망수량 경쟁입찰’이 거론되자 교보생명이 참여를 포기할 것이라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신 회장과 교보생명의 바람은 은행업 진출이지, 은행 지분 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아직 문제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답을 내기는 곤란하다”면서 “구체적인 매각 방안이 나온 후에야 입장이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