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금실 장관(왼쪽)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번 17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강하게 밝혔고 결국 불출마를 관철시켰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 12월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차관급 인사와의 송년 만찬에서 악수하고 있는 노 대통령과 강 장관. 청와대사진 | ||
담판의 내용은 ‘여권에서 다시 한 번 17대 총선에 출마하라고 하면 장관직 집어던지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강 장관이 노 대통령에게 한 발언은 생각 이상으로 옹골찼다.
“참여정부에 몸담아 지금까지 난 법무장관으로서 검찰 개혁과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몸 바치겠다는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다. 선거라면 초등학교 때 반장 선거에 나가 본 일 외엔 아무런 경험도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여권에서 제의가 누차에 걸쳐 들어왔지만, 완강하게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난 이 정부 최장수 장관이 되고 싶다….”
이 같은 강 장관의 발언은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지만, 경우에 따라 ‘협박’으로 들렸을 법하다. 노 대통령이 웃으면서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죠”라며 농을 던졌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이어 “정말로 결심이 섰느냐”고 물으니까, “장관 그만두고 집에서 놀았으면 놀았지 총선엔 안 나간다”고 밝혔다.
강 장관의 결심이 굳었음을 확인한 뒤 노 대통령은 이렇게 화답했다.
“나 역시 강 장관이 꼭 나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당은 여당대로 내각은 내각대로 할 일이 있다. 나도 강 장관과 같은 유능한 사람과 함께 오랫동안 국정을 운영하고 싶다. 총선에 나가느냐 안 나가느냐 하는 것은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괘념치 말고 소신대로 하라. 나는 강 장관의 의견을 존중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정일씨에 따르면 강 장관은 ‘무의식적 인간’이며 ‘연애형 인간’이다. 격식과 관행을 깨며 관가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강 장관의 심리와 됨됨이를 일컬은 것이다.
내면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소중히 여기고 자유롭게 표현하며 즉흥적인 행동을 즐긴다는 의미다. 강 장관이 특정한 지점, 특정한 시기에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것은 이런 인간형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당대 최고 권력, 노 대통령에게까지 강 장관은 거침없이 말했고, 이는 결국 받아들여졌다.
노 대통령과의 담판 이후 여권 내에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강 장관에게 총선 불출마 의사에 대한 재확인 절차를 밟았다. 특히 정동영 열린우리당(우리당) 의장이 상당한 아쉬움을 표했다고 한다.
정 의장은 “강 장관은 어디서든지 1등이다. 전국의 어디에 내놔도, 심지어는 서울 강남갑에 출마해도 확실히 당선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와 있다. 우리당은 총선 승리와 제1당 만들기를 위해 강 장관 같은 분이 꼭 필요하다”며 간곡히 번의를 요청했지만, 강 장관의 답변은 똑같았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 ||
강 장관 스스로가 총선 불출마 및 장관직 유지를 결심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강 장관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최측근인 한 간부를 검사장급 보직으로 승진시키는 등 강력한 인사권을 행사함으로써 검찰개혁 의지를 과시하며 총선 출마설을 불식시켰다.
또한 강 장관은 최근 전국 경찰 지휘관 워크숍에서 “(총선에) 안 나간다고 했는데도 묻는 건 사오정, 형광등”이라며 “선거 주무장관으로서 총선관리를 잘 하겠다”고 말했다. 자꾸 (총선에) 나가라는 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농담도 던졌다.
강 장관이 노 대통령과 총선 불출마를 놓고 담판을 벌인 것은 이 같은 의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초 총선 ‘올인론’에 젖어 있던 노 대통령이 강 장관의 공세적 요구를 받아들인 건 최근 정국의 흐름이나 여권 기류와도 무관치 않은 점이 있다. 일각의 조사에서 30%를 돌파한 우리당 지지도의 가파른 상승세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강 장관의 담판은 여권 내 올인전략의 후퇴와 맞물려 그 흐름을 탄 것으로 해석된다.
무엇보다 ‘정동영 효과’로 인해 1위의 희열을 톡톡히 맛보고 있는 우리당은 여유가 생겼다. 청와대와 내각 주요 인사들에 대한 당의 흡인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이를 말해준다. ‘여권 총동원령’에 목말라 하던 우리당쪽에서 최근 들어 그 목소리가 많이 작아진 게 사실이다.
김부겸 의원은 “자력으로 총선에 이길 수 있다면 굳이 내각에 필요한 사람들을 데려올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강금실 징발론’을 아예 반대하고 나왔다. 그동안 출마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던 문재인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 박주현 참여혁신수석 등이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이나, 우리당으로부터 충남 논산 출마를 권유받아온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노 대통령과 독대해 총선 불출마를 확인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왕특보’로 불리며 외부인사 영입작업을 진두지휘해온 이강철 열린우리당 영입추진단장이 단장직을 포기하고 고향인 대구 동구 출마를 위해 낙향한 것 역시 비슷한 사안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우리당이 정당지지율 1등에 등극함에 따라 노 대통령이 우리당의 입당 자체를 유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조차 하다. 이런 상황에서 강 장관과 노 대통령이 담판을 벌인 것은 시의적절한 상황에서의 시의적절한 대응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총선 불출마를 결심하고 노 대통령과의 담판에서 이를 관철시킨 강금실 장관의 거취는 정치권의 총선 지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게 확실하다. 당장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동선에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최병렬 대표가 기를 쓰고 서울 강남갑에서 출마해야 할 논거가 약해졌다. 강 장관이 나올 경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신이 나와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겠지만, 강 장관이 아예 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데는 출마 논리가 궁색해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강남갑구 공천 신청을 한 최 대표에 대해 당내에서는 ‘총선 불출마’라는 특단을 통해 대대적 물갈이를 이루어내고 그 여세를 몰아 총선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당내에서는 “최 대표가 불출마한 뒤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난 뒤 나중에 발생할 재·보궐선거에 나서면 된다”는 말들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