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그룹 경영관리본부가 지난 5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사진은 경영관리본부가 위치해 있는 롯데그룹 본사. | ||
그런데 검찰의 2차 압수수색이 나오기 바로 전 주에 롯데 내부에서는 ‘다음주에 (검찰이) 압수수색을 나올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핵심 자료를 모두 다른 곳으로 치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확한 일시를 알 수 없었지만 검찰의 전격 방문을 예상하고 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오점을 남기는 ‘의혹’도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이 지난 12월5일 롯데를 첫 번째 압수 수색할 때 사전에 롯데가 압수수색 ‘정보’를 입수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그것. 일부에서는 삼성 LG 등이 압수수색을 당했기 때문에 정황상 다음 ‘타자’가 롯데일 것이라며 충분히 대비를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 내부에서는 검찰의 ‘방문’ 날짜를 정확하게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검찰의 롯데 습격사건에 얽힌 뒷이야기를 따라가 봤다.
지난 12월22일 롯데 경영관리본부 등 핵심부서에 대한 검찰의 2차 압수수색이 있었다. 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 재점화의 서곡인 셈이다. 이날 검찰은 오전 9시께 소공동 롯데호텔 기획실과 국제팀(신동빈 부회장의 비서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알려지고 있음) 등에 수사관 9∼10명을 급파해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런데 롯데는 이날 수색을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롯데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 A씨는 이에 대해 “롯데 내부에서 2차 압수수색 며칠 전부터 ‘다음주에 압수수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돌아 그 전 주에 주요 자료를 모두 다른 곳으로 치웠다는 얘기를 롯데 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A씨는 “롯데가 검찰의 수색 일정을 미리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대비를 했기 때문에 핵심 자료를 모두 빼돌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검찰이 롯데 직원들을 모두 내보낸 뒤 샅샅이 수색을 실시했던 것으로 아는데 얼마나 소득을 올렸을지는 미지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검찰은 이번 수색에서 ‘롯데그룹이 주요 서류를 임직원 승용차 등에 보관하고 있다’는 등의 첩보를 입수하고 실제로 임직원들의 승용차까지 뒤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 ||
그러나 재계 한 관계자의 얘기는 다르다. “롯데의 경우 한나라당은 물론 노무현 캠프에도 거액의 불법 자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를 부담스러워한 검찰이 솜방망이를 휘두른다는 일각의 의혹이 있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 이번에 검찰이 두 번째 압수수색에 나선 것도 ‘롯데에 대해서만 봐주기를 한다’는 일부 지적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롯데 내부에선 지난 1차 압수수색에 대해서도 ‘검찰이 사전에 수색 일정을 흘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 A씨는 이에 대해 “롯데의 한 관계자가 ‘오늘 (검찰이) 나온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나오지 않아서 애가 탄다.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해주었다. 롯데그룹 핵심부서 직원들은 대충 언제 나올지 알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검찰에서 미리 알려주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11월 말 삼성전기, LG 홈쇼핑, 현대자동차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압수수색을 실시한 바 있다. 그리고 다음 ‘타자’가 롯데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세간에 나돌기도 했었다. 따라서 롯데가 압수수색에 대비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정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A씨는 이에 대해 “충분히 정황상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롯데 관계자와 접촉한 결과 이미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고 있던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직원들이 중요 서류를 이미 빼돌리고 검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압수수색은 아니었지만 지난 12월9일 검찰 직원 2명이 롯데를 ‘방문’했을 때도 검찰은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이날 롯데 핵심 관계자들이 사전에 이들의 방문을 감지하고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검찰 직원이 핵심관계자들을 만나지 못한 채 커피만 마시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롯데 관계자는 당시 검찰 직원이 찾아온 것과 관련해 “압수수색이 아니라 그냥 ‘현장방문조사’ 형식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씨는 “롯데 관계자가 ‘오늘도 온다는데 아직 안 오네요’라고 그날 아침에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 수사관 두 명이 방문해 차만 마시고 돌아갔다고 했다. 핵심간부들이 이들의 방문소식을 미리 알고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겨 ‘현장방문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셈이다”고 말했다.
A씨는 “다른 기업의 경우 간부들이 검찰 소환 요구에 응해 대검 청사에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롯데는 바쁘디 바쁜 수사관 두 명이 찾아와 아무도 만나지도 못하고 그냥 차만 마시고 갔겠느냐”고 말하면서 “재계 일각엔 대외적으로 롯데도 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검찰의 ‘액션’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의혹들에 대해 국민수 대검 공보관은 “압수수색 나갈 때 보안이 생명인데 사전에 이를 기업에 통보해주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롯데가 ‘언제쯤 올 것이다’라고 자체적으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들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나. 하지만 수사 기법상 사전 정보 누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롯데라고 봐줄 일은 없으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자연 의혹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롯데그룹 심장부에 대한 검찰의 두 차례 압수수색은 몇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며 “말 그대로 추가 물증 확보를 위한 수색일 수도 있고, 롯데측의 ‘고해성사’를 유도하기 위한 ‘압박용’일 수도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롯데그룹도 일각의 의혹에 대해 적극 부인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대와 삼성 등 다른 기업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했기 때문에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사전 통보는 있을 수 없는 얘기다. 그리고 우리는 정상적인 영수증 처리를 했기 때문에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혀 미리 온다는 얘기는 없었다. 기자들이 아침에 전화를 해서 압수수색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한편 한 대검 출입기자는 이와 관련, “검찰이 롯데의 혐의점을 포착했지만 발표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 같다. 기자들이 계속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이 시작되면 같이 하나씩 발표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검은 대선자금 수사의 경우 어떤 정치적 장벽에도 굴하지 않고 내년 총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빚어지는 세세한 의혹에 대해서도 신속하게 규명하는 것이 수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