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제1차 지자체 선거 때 김영삼 정부는 광역·기초 단체장은 정당공천을 하되 의원선거에 대해 정당공천을 배제하려다가 야당이 반발하자 광역의원 공천은 살리고, 기초의원만 배제했다. 이와 같은 공천 방법은 김대중 정부에서도 지속됐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기초의원 정당공천 배제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2006년 선거 때 처음 기초의원 선거의 정당공천이 시행돼 이명박 정부 때까지 지속됐다.
그것을 18대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기초선거(단체장·의원)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두 당 모두 공약으로 내세울 때 무공천이 위헌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오로지 국회의 기득권 포기, 지방정치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해 대통령 선거에 써먹은 것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는 ‘덩달이’ 선거공약이었다.
그래놓고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싸웠다. 무공천 공약을 파기한 새누리당은 일단 최경환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후보 난립, ‘깜깜이 선거’, 지방 토호세력의 발호 등 무공천의 부작용을 구실로 내세웠다. 거기에 ‘상향식 공천’이라는 무늬를 입혔다.
새누리당의 약속 파기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무공천의 부작용도 따지고 보면 유권자 얕잡아 보기에다 국회의원의 기득권 움켜쥐기 발상이다. 무공천으로 선거가 혼탁해질 가능성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현명한 유권자의 선택과 사직당국, 언론, 시민단체들의 감시 감독으로 막아 낼 수 있다고 봐야 옳다.
새정치연합은 안철수 대표의 국회 연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담제의, 대통령의 거절, 여론조사와 당원투표에 의한 공천 여부 결정 등의 소동을 거쳐 결국 무공천 방침을 철회했다.
무공천이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라면 새정치연합은 다수 국민들의 박수를 받아야 옳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반대여서, 새정치연합이 선거에서 참패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잇따랐고, 무공천이 그 주된 이유로 지목되면서 공천으로의 선회는 불가피했다.
그간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문제에서 진보는 찬성, 보수는 반대였던 것이 이번에 잠시 진보 보수 간에 찬반이 전도된 듯하다가 막판에 같아진 셈이다. 여야가 싸우다가도 기득권 챙길 때는 잽싸게 손을 잡는 습성이 여기서도 재연된 셈이다.
무공천 파동을 거치면서 확인된 것은 이 문제에 냉담한 민심이다. 민심은 무공천이 결코 국회의 기득권 포기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그런 공약을 내세운다 해도 더 이상 믿을 국민은 없겠지만. 무용론이 팽배한 기초·광역 의회를 합치고, 기초단체장의 임명권을 정부에 돌리는 정도는 돼야 기득권 포기로 여길 것이다. 결국 무공천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지킬 생각이 전혀 없는 공약으로 초래된 값싼 정치 쇼가 되고 말았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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