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어물쩡” VS “계획대로 진행중”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동부그룹은 흡사 쓰러지기 전의 동양그룹의 모습이 연상된다. 사진은 동부그룹 본사. 일요신문DB
동부그룹은 지난 7일 최연희 전 의원을 건설·디벨로퍼·농업·바이오 분야 회장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최 전 의원은 4선에 한나라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이로써 동부그룹은 김준기 그룹 회장과 오명 전자부문 회장, 그리고 최 회장까지 3명의 회장이 경영을 이끄는 체제가 됐다.
최연희 회장
동부는 구조조정 속도가 더디다며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다. 일부에서는 동부의 구조조정 의지마저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 회장 영입은 득보다 실에 가깝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최 회장이 맡은 분야도 애매하다. 검사·정치인 출신의 최 회장이 건설·디벨로퍼·농업·바이오 분야를 얼마나 잘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 회장의 기업 CEO(최고경영자) 경험은 한 차례 있기는 했다. 지난해 3월 동양파워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던 것. 당시 삼척화력발전사업자로 선정된 동양파워는 “지역사회에 이해와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적임자”라며 최 회장의 영입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동양파워 내부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김준기 회장
아이러니한 점은 지난해 동양파워가 최 회장을 대표이사로 영입했을 때 동부 측도 “굳이 왜…”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최 회장은 동양보다 동부와 더 친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럼에도 동부 관계자는 당시 “크게 주목할 바는 못 된다”며 최 회장과 인연을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다. 그랬던 동부가 최 회장에게 동양보다 더 높은 자리를 맡긴 것이다.
흥미로우면서도 한편 불길한 점은 동부그룹이 날이 갈수록 1, 2년 전 동양그룹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최 전 의원을 영입한 점도 그렇지만 예전 동양과 마찬가지로 구조조정이 일정한 성과 없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을 비롯한 동부그룹 채권단이 동양그룹의 예를 들며 동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고강도 자구계획을 발표했다. 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발전당진, 동부익스프레스 등 자산·보유지분 등을 매각해 3조 원가량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자구계획에는 김준기 회장이 애지중지했던 동부하이텍까지 포함돼 있어 동부와 김 회장의 구조조정 의지를 명확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KTB사모펀드와 동부익스프레스 지분 50.1% 매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 전부다.
동양 역시 2012년 말, 2013년 6월까지 2조 원을 마련하겠다며 금융·시멘트·발전 사업을 제외하고 돈 되는 것은 다 매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미 동양은 이전부터 구조조정 속도가 느리고 성과가 없다는 질타를 받은 터여서 동양의 고강도 자구계획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동양은 자구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고 결국 그룹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동부 관계자는 “어떻게 자산과 계열사를 매각하는데 5개월 만에 끝낼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구조조정을 중단한 것도 아니고 매각을 철회한 것도 아니고 계속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만 몰아세우는 것은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동양 사태 피해자들의 시위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측은 “아직은 괜찮지만 (구조조정이) 여기서 더 늦어지면 큰일 난다”는 입장이다. 최악의 상황을 막고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동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 산업은행 관계자는 “구조조정 방향은 이미 다 설정해놓고 있으며 상반기 중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동부그룹을 압박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에 이어 지난 7일에도 동부그룹 고위 임원들을 불러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또 개별 행동을 자제하고 자산 매각 등을 위임한 주채권은행(산업은행)의 결정에 따를 것을 요구했다.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이 동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 것은 최근 산업은행이 동부제철 인천공장·동부발전당진 패키지를 포스코에 인수 제안한 것을 두고 동부가 반발했다는 이유에서다. 동부 관계자는 “패키지 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안 경쟁입찰을 해보지도 않고 수의계약 형태로 매각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산업은행은 조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실사가 진행 중이고 포스코에서도 관심이 있는 만큼 잘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동부 측은 동양의 사례에 빗대는 것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동부 관계자는 “자구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구조조정 작업도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