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예능=흥행보증수표’ 중국서 돈질
중국판 <나는 가수다>(왼쪽)와 <아빠 어디가> 포스터. MBC는 두 프로그램을 수출해 각각 30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역시 MBC 예능프로그램을 차용한 중국판 <아빠 어디가>가 중국 후난위성TV에서 지난해 10월부터 방송되고 있다. 1회 시청률 1.4%로 출발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던 <아빠 어디가>는 최고시청률 5.7%를 기록했다. 두 프로그램은 중국 예능프로그램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을 휩쓴 경연 방식 예능과 관찰형 예능의 대표 주자가 중국 대륙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중국에 정통한 한 연예 관계자는 “중국은 원래 흥이 많고 노래를 즐기는 나라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는 최고의 가수들이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넘어 자웅을 겨룬다는 측면이 부각되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또한 <아빠 어디가>는 ‘아빠는 밖에서 일하고, 엄마는 집안일을 한다’는 중국의 오랜 고정관념을 비틀고 아빠가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콘셉트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고 평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중국판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등장인물만 바뀌었을 뿐 한국 오리지널 프로그램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포맷 수출’을 통해 오리지널 프로그램이 현지화됐기 때문이다.
두 프로그램을 포함해 지금까지 포맷이 수출된 예능프로그램은 10여 개다. 2003년 베트남에 판매된 KBS <도전 골든벨>이 시작이었다. 이후 MBC <우리 결혼했어요>는 터키와 미국 등에 팔렸고 SBS <진실게임>, JTBC <히든 싱어>, Mnet <슈퍼스타K>, KBS <불후의 명곡> 등이 중국에 수출됐다.
특히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가>는 중국 내 한류 훈풍을 타고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오리지널 프로그램의 묘를 살리는 동시에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나는 가수다>의 산파 역할을 한 김영희 PD는 중국판 <나는 가수다>가 방송되는 동안 상당 기간 중국에서 체류했다. 현지에서 그의 역할은 플라잉 디렉터(Flying Director). 프로그램 자문인 동시에 연출법도 직접 지도했다. 단순한 포맷 수출에 그치지 않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인력 제공 및 원천 기술을 전달하며 한국과 중국 방송사 간 신뢰도 쌓았다.
물론 중국판 <나는 가수다>가 후난위성TV에 가져다 준 막대한 수익을 감안하면 포맷 수출 가격은 그리 높지 않다. 현지에서 이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없었고 적정선의 시장가가 없는 상황이라 무조건 높은 가격을 부를 순 없었다. 하지만 후난위성TV 역시 적지 않은 금액을 베팅했고 이로 인해 MBC는 약 30억 원을 벌어들였다. 양쪽 모두 크게 웃은 윈윈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판 <나는 가수다>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후 수출되는 국내 예능 프로그램 포맷은 몸값이 크게 상승했다. 역시 M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아빠 어디가>는 후난위성TV에 수출되며 <나는 가수다>의 판매가를 웃도는 금액에 거래되기도 했다.
MBC 측은 “<나는 가수다>의 성패는 향후 한국 예능프로그램 수출 여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김영희 PD가 현지에 파견돼 제작을 진두지휘한 것이다. 향후 한류를 책임질 K 예능의 교두보가 된 셈이다”고 평했다.
MBC <아빠 어디가>와 SBS <런닝맨>.
K 예능이 각광을 받으며 국내 예능프로그램의 포맷을 구입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곤 한다. 중국 절강위성TV는 지난달 20일 현지 광고주 및 언론 관계자 300명을 대상으로 2014년 라인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절강위성과 대업, SBS 3사가 공동으로 중국판 <런닝맨>을 제작해 2014년 4분기 편성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SBS를 사칭한 중국 SNS 웨이보(weibo) 계정에서 “중국판 <런닝맨>이 절강위성에서 방송될 것이다”고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SBS는 즉각 “우리는 그런 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SBS는 “절강위성 및 대업과 협의하는 과정이었을 뿐 공동제작과 관련해 어떠한 정식 계약도 체결하지 않았다. 중국판 <런닝맨> 공동제작 및 편성 관련 발표는 절강위성의 일방적인 계획일 뿐 당사와 전혀 논의된 바가 없으며 현재 중국에 퍼지고 있는 ‘한국 SBS 웨이보’는 당사를 사칭한 가짜 계정이다”고 일축했다.
<런닝맨>은 아시아 로케이션을 넘어 호주 등에서 촬영을 진행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때문에 SBS는 지난해 가을부터 포맷 수출 제안을 받고 고민 중이다. 현재 중국 3개 방송사가 포맷 등 판권을 사들이기 위해 경합을 벌이는 상황에서 마음 급한 절강위성이 우를 범한 것이다.
SBS 예능국 관계자는 “K 예능을 바라보는 외국의 눈이 달라졌다. 포맷을 구입해 자국의 연예인들을 포진시키면 크게 흥행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다. 이제는 배우와 아이돌 가수를 넘어 국내 예능인들도 한류스타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낼 필요가 있다.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가량 방송되는 드라마와 달리 예능프로그램은 일단 자리 잡으면 수년 동안 생명력을 이어가며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 시즌 제 역시 예능프로그램이 롱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결국 포맷 판매로 단발성 금액을 챙기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MBC 관계자는 “향후 포맷 판매와 매출 공유를 묶어서 거래하는 방법도 강구 중이다. 매출의 일정 부분을 꾸준히 원작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현재 K-예능의 인기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하다”며 “이를 성사시킨다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