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누 된다고? 난 조용히 살고 있다”
기자가 공화당 창당을 결심한 계기를 묻자 그는 재킷 속에서 창준위 명함을 불쑥 내밀었다. 명함에는 공화당 로고와 함께 이름 대신 동그라미 여섯 개가 새겨져 있다. 동그라미 안에 직접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건네는 식이다. 그러더니 대뜸 정치인 안철수가 보여주지 못한 ‘새정치’가 여기에 있단다.
“안철수 의원이 보여준 것은 새(新)정치가 아니라 싸이의 노래처럼 ‘새(鳥)정치’였어요. 제게 새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것(공화당 명함)이라고 대답합니다. 보통 창당 과정에서 창준위 명함은 대표나 사무총장이라도 10% 정도만 쓰고 나머지는 대부분 폐기됩니다. 엄청난 낭비이자 경제누수현상이죠. 새정치는 쌀 한 톨, 고무신 한 켤레조차 아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동그라미 여섯 개가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공화당은 그 이름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신을 강조한다. 특히 5·16을 군사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명기하고 계승할 방침이다. 동시에 그러한 정신을 놓치고 이름까지 버린 새누리당이 못마땅한 눈치다.
“지금 새누리당은 5·16을 혁명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당리당략, 인기영합주의에 따라 행동합니다. 선거에서 좀 불리하다고 역사를 부정하고 뿌리를 부정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정당명만 해도 그렇습니다. 미국은 160년간 공화당과 민주당이 이름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은 60년 전통의 당명을 안철수 대표에 의해 잃어버렸고 보수진영 역시 공화당 뿌리를 이어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입지가 달라지니 민주정의당으로, 한나라당으로, 새누리당으로, 계속 이름을 바꿔 왔습니다. 새누리당은 공화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것이 비정상의 정상화입니다.”
사실 신동욱 대표의 창당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한국미래당 창당을 위해 발기인 대회까지 마쳤지만 이틀 뒤 인터넷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허위비방한 혐의로 구속됐다. 정치 입문은 그보다 앞선 2002년 대통령선거였다.
“제가 국민통합21 발기인 중 한 명입니다. 2002년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공조 유세를 했을 당시 정몽준 후보 측 유세 일정을 담당했었죠. 그리고 2005년 한나라당 디지털정당위원장 선거에 출마합니다. 그때 20여 가지 서류를 준비했는데 단 한 군데, 추천인란만큼은 채우지 못하겠더라고요. 당시 한나라당에 아는 정치인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죠.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백지는 절대 안 된다. 하다못해 유행가 가사라도 적어내라’던 게 저였으니까요.”
4월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지하 선술집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전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동석한 사람들은 공화당 창당준비위원회 관계자. 이종현 기자
결국 그는 추천인에 본인 이름을 써넣었다. 그런데 서류가 통과돼 최종 후보가 됐다. 기호는 4번. 함께 맞붙었던 이는 강용석·김명주 전 의원 등으로, 모두 엘리트들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구나 싶었어요. 정치인들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서도 정작 상위 1%와만 어울리는구나. 선거 과정에서 일단 양심고백부터 했습니다. ‘저는 원래 정몽준 의원이 만든 국민통합21 소속입니다. 2002년 한나라당 대선 패배의 원인이 바로 저입니다.’ 그 뒤부터는 오히려 쉬웠습니다. ‘한나라당에는 북쪽의 서울대 출신이 많으신데 저는 남쪽의 서울대(남서울대) 출신입니다. 고로 여러분과 저는 동문입니다.’ 그 선거를 통해 한나라당 전국위원이 됐죠.”
현재 그가 만들고 있는 공화당의 시·도당위원장 가운데는 고졸도 있고 전문대 출신도 있다. 창준위 핵심 간부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사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로열패밀리의 일원이지만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우리당은 203040세대가 중심인 벤처정당입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공화당원이었던 후손들이 다시금 젊은 공화당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지요. 203040세대는 대한민국의 허리이자 중추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기수가 되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이 대한민국에 있습니까.”
정치권, 특히 여권에서 그를 보는 시선은 편하지 않다. 현직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인척 중 한 명인 그가 정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그러나 그는 “제가 대한민국이 인정한 대통령 친인척이 맞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사람들이 왜 제가 대통령을 괴롭힌다고 이야기한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자가용도 없이 전철을 타고 낙원상가 생활을 7년째 하고 있습니다. 2006년 염창동 한나라당 시절 당 대표와 전국위원으로 인사를 나눈 이후 박 대통령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1년 6개월 만기 출소 이후 이곳에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왜 누가 된다는 것인지 거꾸로 묻고 싶네요. 제부가 자기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겠다는데 이를 막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요?”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