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내 안방~아무리 쫓아내봐, 내가 나가나!
‘서울대 망치’ 이 아무개 씨(42)가 강도 상해, 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됐을 때 일부 서울대 학생들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전에도 이 씨는 서울대에서 상습 절도 혐의로 네 차례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씨의 최근 복역기간은 1년 6개월로 2011년 5월 만기 출소했다. 이후에도 이 씨는 서울대에 다시 나타나 절도 행위를 이어나갔다. 2013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21회에 걸쳐 서울대 행정실, 사무실, 주차된 차량 등을 망치로 깨고 현금 211만 원과 식권 95장을 탈취했다. 지난해 7월 새벽 3시경 서울대 미대 사무실에 침입해 교직원의 현금 20만 원을 훔치는 등 이 씨는 주로 심야시간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러 왔다.
전과 4범의 이 씨지만, 학생한테 상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1월 12일 새벽 2시경 이 씨는 물건을 훔칠 목적으로 서울대 음악대 행정실 유리창을 망치로 깨고 침입했다.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던 박 아무개 씨(22)는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복도로 나왔고 이 씨를 붙잡았다. 당황한 이 씨는 손에 들고 있던 망치로 박 씨의 머리를 때리고 도망쳤다.
범행 장소는 이 씨가 평소 자주 들락거리던 곳인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건물 4층, 출입문에 자동 잠금장치가 구비되지 않은 몇 개의 건물 중 하나였다. 게다가 교수, 연구원, 작곡과 학생 등이 늦게까지 공부하는 건물로 24시간 개방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에서 10년 넘게 상주하다시피 한 이 씨는 교내 보안시스템을 훤히 꿰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한 경비원은 “이 씨가 주로 생활과학대학 7층 옥상으로 가는 계단과 인문대 근처에서 어슬렁댄다. 이곳은 경비원이 건물 안쪽에서 문을 잠가야 한다. 보통 자정쯤 1층 출입문을 모두 잠그는데 밤늦게 귀가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문을 열고 나가면 또 입구가 개방된다. 이 씨는 잠깐 사이에 침입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망치로 얻어맞은 박 씨는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다. 머리에 13바늘 꿰매는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은 박 씨는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같은 과 친구들은 전했다.
경찰은 이 씨가 범행 현장에 떨어뜨린 안경과 모자에서 DNA를 채취해 신원을 확인하고, CCTV 분석을 통해 이 씨의 행적을 추적했다. 또 이 씨가 나타날 만한 곳을 지정해 서울대 캠퍼스 교직원뿐 아니라 신림동, 낙성대 인근 주민들에게도 이 씨의 얼굴을 알려주고 연락망을 구축했다.
범행 후 3개월이 지난 4월 16일 경찰은 서울대 교직원으로부터 이 씨를 학교에서 봤다는 제보를 받고 즉시 출동했고, 학교 본관 옆 벤치에 앉아있던 이 씨를 검거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 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생계형 범죄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는 그동안 일정한 주거지도 없이 서울대 빈 강의실에서 잠을 자고, 훔친 식권 등으로 학생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또 신림동 고시촌 인근 PC방과 만화방을 전전하며 생활해왔다.
이 씨는 전문대학교를 졸업한 후 구직활동 없이 20대부터 15년간 쭉 서울대에서 노숙자 생활을 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 씨는 ‘가진 자’와 ‘배운 자’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생들에게 이 정도 피해는 아무렇지 않다”고 진술하는 등 이 씨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의 폭행 사건이 서울대 학생들에겐 교내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계기가 됐다. 재학생들끼리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 외부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총학생회에선 교육환경개선협의회를 열어 허술한 경비 시스템을 보완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다. 서울대 총학생회 부회장 김예나 씨는 “각 단과대학 도서관, 강의실 등에서 도난 사건이 워낙 빈번했었다”며 “지금까지는 도난 사건이나 외부인 출입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도 교내 안전에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에서도 경비원의 순찰 횟수를 늘리고, 밤 9시가 넘으면 대다수의 건물 출입문을 폐쇄해 일부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밤늦게 귀가하는 교수 및 학생들에게 길을 돌아서 가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지정된 출입문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시연 인턴기자
서울대생-노숙자 캠퍼스 동거 뒷얘기 양복 쫙 빼입고 음악에 취해…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타학교 학생들과는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노숙자들과 함께 캠퍼스 라이프를 해야 한다는 것. 수년째, 많게는 수십 년째 서울대에 출근도장을 찍는 노숙자들이 꽤 된다. 학교 부지가 넓어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경비원들이 일일이 이들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대 노숙자들은 40대~60대 중장년 남성으로 매일 똑같은 옷차림을 입고 교내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선 이들이 캐릭터로 희화화돼 괴담처럼 전해지고 있다. # 산책형=얼굴에 화상자국이 있는 그는 교내를 산책하거나 한 자리에 멈춰서 먼 산을 보고 있다. 학생들을 놀라게 하는 등 위협적인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 사회불만형=학생회관으로 들어가는 계단 근처 공중전화 박스가 그의 중심 구역이다. 그는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의 말을 화난 듯한 어투로 떠들고 있다. 가끔은 옆을 지나가는 학생들을 상대로 말을 걸어 학생들이 기겁을 하기도 한다. # 터줏대감형=아침부터 저녁까지 인문대 전산실 앞에만 출몰한다는 그는 ‘인문대 교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 곳에 서서 일장 연설을 한다고 알려진다. 연설 내용은 사회불만형과 마찬가지로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한다. # 엘리트형=남루한 옷차림의 다른 노숙자들과 달리 양복을 말끔하게 입고 다니는 그는 음악에 취해 있다. 지휘 손동작을 하며 거리를 활보하기 때문이다. # 생계유지형=학교에서 먹고 자고 하는 그는 오토바이에 이불과 컵라면을 싣고 다닌다. 교내 정수기 앞에서 컵라면을 끓이고 있다가 경비원에 들켜 쫓겨나기도 했다. 제발 오지 말아달라는 경비원의 부탁에 아랑곳 하지 않고 “또 올게요”라는 대답을 하는 뻔뻔함도 보인다. 이들의 신분에 대해선 두 가지 설이 회자되고 있다. 하나는 서울대 교수였다가 노숙자 신분으로 전락했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서울대 출신의 고시생이었으나 오랜 고시 준비로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설이다. 서울대 한 재학생은 “교내 노숙자 출몰은 익숙한 일이다. 이들과 관련해 교수설, 학생설은 있으나 아쉽게도 교직원설은 없다”며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