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다이어트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올레캠퍼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황창규 회장은 최근 KT의 개혁에 대해 “아직 드라이브를 걸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며 속도를 조절할 것임을 알렸다. 황 회장이 새삼 개혁의 속도조절을 피력한 까닭은 KT에 아직 공기업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취임 후 황 회장은 KT 내부에 바꿔야 할 문화가 적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 회장의 개혁 속도 조절은 삼성전자 사장 출신으로 삼성에서 가능한 일들이 KT에서는 시기상조라고 본 것이다. 황 회장은 “삼성의 경우 아침 7시에도 출근하도록 할 수 있겠지만, KT에서 내가 그렇게 하면 임직원들이 힘들어 할 것”이라며 직접 예를 들었다. 자칫 무리하게 일을 벌였다가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황 회장은 또 “삼성이라면 내가 직접 세게 드라이브를 걸 수도 있었겠지만 (KT는) 아직 공기업 성격이 강하다”며 줄곧 삼성과 KT를 빗댔다.
비록 황 회장은 아니라고 하지만 외부에서는 이미 황 회장의 개혁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황 회장은 지난 1월 취임하자마자 “현재 위기에 처한 1차적인 책임은 임원에 있다”며 전체 임원의 수를 25%가량 줄였다. 이석채 전 회장 시절 영입된 임원들의 옷을 벗겼고 대신 KT를 떠났던 인물들을 불러들였다.
삼성 출신 임원들도 불러들여 KT 요직에 앉혔다. 지난 2월 초 김인회 전 삼성전자 상무를 재무실장(전무)으로 영입하더니 최일성 전 삼성물산 상무를 KT에스테이트 대표에, 서준희 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을 BC카드 대표에, 최성식 전 삼성생명 상무를 경영진단센터장에 각각 앉혔다. 재계 고위 인사는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고 KT 조직 문화에 변화를 주기 위해 삼성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이 자리 잡고 체제가 갖춰지면 개혁 드라이브가 본격 가동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창규 KT 회장. 황 회장발 구조조정 바람이 KT를 매섭게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KT의 인건비는 이 전 회장 시절부터 지적돼온 부분이다. 5992명이 명예퇴직을 했음에도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 경쟁사 대비 연간 약 1조 5000억 원의 인건비가 더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종인 연구원 평가대로 연간 7072억 원의 인건비가 감소한다면 경쟁사 대비 인건비 차이를 8000억 원가량으로 좁힐 수 있다. 관건이었던 ‘인건비 격차 1조 원’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명예퇴직은 한편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KT새노조 측은 “KT가 명예퇴직 목표량을 세우고, 이를 채우기 위해 직원들에게 퇴직을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KT 내부에서는 잔류할 경우 비연고지로 가야 한다는 둥, 업무가 없어진다는 둥 소문도 돌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KT의 대규모 명예퇴직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정책위의장)은 지난 24일 “3만 2000명 규모의 회사에서 1만여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면 광범위한 강제퇴직 압박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질타했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황 회장은 개혁에 대해서 아직 ‘워밍업’ 수준임을 시사했다. KT의 ‘황창규 체제’가 마무리된 후 전개될 개혁과 구조조정이 얼마나 셀지 벌써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으로 KT의 사업구조 개편은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인력들이 이탈할 수도 있다. 황 회장은 곳곳에 삼성 출신 인사들로 채움으로써 KT의 체질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24일 황 회장은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명예퇴직을 마무리하는 심경을 밝힌 후 “1등 KT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며 “적당히 대충 살아남자는 타성은 과감히 깨뜨리고 독한 마음으로 제대로 일해보자”고 강조했다. 내심 공기업적 성격을 버릴 것을 주문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세계 1위에 올려본 경험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KB경영연구소 한 연구원은 “삼성전자에서의 경험과 성과 등이 KT에서 빛을 발할 것 같다”고도 했다. 이러한 기대는 지난 <일요신문> 창간 22주년 전문가집단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황 회장이 ‘기대되는 전문경영인’ 1위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KT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지난 24일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올 3월 말 기준 통신 3사의 이동통신시장 점유율에서 KT의 점유율이 29.86%로 나타나 2002년 통신 3사 경쟁체제가 구축된 이후 처음으로 점유율이 30% 아래로 내려갔다. 통신 본연의 경쟁력을 강조하고 1등 KT를 외치는 황 회장으로서는 당장 점유율 30%를 회복하는 일이 급하게 됐다. 이 때문에라도 더 혹독한 개혁과 경영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일고 있다.
황 회장의 본격적인 개혁 드라이브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하고 있다. 박원석 의원은 “삼성식 노무관리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