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10일 불법대선자금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성래씨. 그는 계몽사를 인수한 후 사기혐의로 구속됐었다. 이종현 기자 | ||
읽기에도 섬뜩한 글이다. 이 글은 최근 계몽사 인수에 나선 정준호씨(‘부키의동화나라’ 대표)에게 온 김성래 계몽사 대표이사의 편지다.
인터넷 동화 동영상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인 ‘동화나라’를 경영중인 정씨는 지난해 4월 계몽사가 부도나자 출판물 콘텐츠 확보를 위해 계몽사 인수작업에 착수, 현재 전체 지분의 20%가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정씨가 계몽사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임시주총을 열어야 하고, 이에 앞서 주총 개최에 대해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김성래씨 등 경영진에게 통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정씨는 썬앤문그룹 사기대출혐의로 영등포구치소에 구속수감중인 김씨에게 지난 1월 주총개최에 대한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나 정씨에게 보내온 김성래씨의 답변서 내용은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2004년 1월27일자로 정씨에게 우송된 김씨의 답변서 내용은 ‘계몽사 인수를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피의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게 골자였다.
김씨가 피의 보복 운운하며 계몽사의 새로운 인수희망자에게 반협박조의 답변서를 보내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이 사건은 국내 출판업계의 선두기업인 계몽사가 IMF 사태 이후 자금난에 봉착하면서 막이 올랐다. 지난 76년 설립된 이후 아동도서 전문기업으로 각광받던 계몽사는 출판시장이 침몰하면서 설립 20년 만인 지난 98년 1월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가는 비운을 맞았다.
이때 계몽사의 구세주를 자임하며 등장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홍승표라는 인물이었다. 1963년생인 홍씨는 미국 채프만칼리지에서 MBA를 마치고 귀국해 콩코드캐피탈이란 회사를 설립해 운영중이었다. 홍씨는 이 회사를 앞세워 지난 2001년 7월 계몽사를 인수합병(M&A)했다.
그러나 홍씨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이 회사를 수렁에 빠트리는 출발점이 되고 말았다. M&A 전문가로 알려진 홍씨는 회사를 인수한 지 1년반 만인 지난 2003년 1월 김성래씨(당시 김씨의 대외직함은 보나뱅크 회장)에게 지분 및 경영권을 넘겼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김씨가 인수한 지 3개월 만에 계몽사는 5백억원대의 부채가 드러났고, 결국 지난해 4월 부도가 나고 만 것이다. 신임 대표이사인 김씨는 84억원의 사기혐의로 구속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 계몽사는 서울 회기동의 기업은행 건물 4층에 위치해 있다. | ||
지난해 4월 부도날 당시 김성래씨가 갖고 있던 계몽사 지분은 8.74%(4백93만 주)였다. 그러나 회사가 부도나자 채권자인 텔슨상호저축은행은 당시 담보로 잡고 있던 김씨 소유 주식 4백80만 주를 장내매도해 버렸다. 이 결과 김씨는 13만여 주밖에 갖지 않은 소액주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계몽사는 부도 이후 증권시장에서 퇴출됐고, 회사는 지난 98년에 이어 5년 만에 다시 정리절차를 밟아야 할 운명을 맞고 말았다.
이처럼 회사가 청산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동화나라 정준호 대표측이 계몽사 인수에 나서게 됐다. 이즈음 홍씨가 부인 오상지씨(탤런트 오현경)를 앞세워 계몽사를 재인수하겠다며 나서기도 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나는 등 복잡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회사 인수에 나선 정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장외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해 2004년 2월 현재 20% 정도의 지분을 확보했다. 조만간 소액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추가로 주식을 매입해 이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겠다는 게 정씨측의 복안이다.
그러나 정씨가 계몽사의 인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주주총회를 열어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특히 김성래씨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비록 지분이 없는 김씨이지만 현재 이 회사의 대표이사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씨의 의도에 김씨는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 계몽사를 인수해 80억원대의 사기극에 휘말린 김씨의 입장에서 보면 회사 경영권이 넘어갈 경우 그야말로 한푼도 건지지 못할 것이 뻔하다. 때문에 김씨의 입장에서 보면 일단 정씨의 인수 기도를 저지한 뒤 상황변화에 따라 재기를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
김씨가 이처럼 회사인수를 막고 나서자 정씨측은 임시주총 개최를 위해 대표이사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법정투쟁에 나섰다. 일단 지난 2월20일 열린 1심에서 법원은 정씨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씨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3월중으로 임시주총을 열어 인수작업을 마무리지을 생각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씨가 계몽사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새로운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이사 및 경영진이 인정하지 않은 임시주총이라는 점을 앞세워 김씨측이 정씨측을 상대로 소송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