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승 특검보(왼쪽)의 전격 사퇴는 김광준 검사(오른쪽) 등 검찰 파견인사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 ||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의 한 관계자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불쑥 던진 돌출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서둘러 “큰 문제 없다. 앞으로 잘 할 것”이라며 말문을 닫았지만 최근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완전히 감출 순 없는 모습이었다.
이우승 특검보의 갑작스런 사퇴로 파문이 일고 있는 김진흥 특검팀은 이미 여러 면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사퇴 후 이 특검보는 현재 완전히 잠적한 상태지만, 그가 남긴 폭로들은 향후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일부 수사관들의 수사 거부 행태, 검찰 보고 의혹 등이 특검팀 관계자들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 파트로 구성된 측근비리 특검에서 썬앤문 사건은 2팀 담당이다. 팀장은 이우승 특검보가 맡았다. 이 특검보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82년 사시 24회에 합격했다. 그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85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처음부터 지금껏 그는 자신의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줄곧 일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팀장격인 파견검사 자리는 김광준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가 맡게 됐다. 그는 서울 법대 출신으로 지난 99년 옷로비 특검 당시 파견검사로 차출된 적이 있다. 이 특검보의 사시 6년 후배가 된다. 여기에 금융 전문가인 우아무개 변호사와 김아무개 변호사 등이 수사관으로 배치됐다.
1월5일 특검사무실 현판식을 갖고 출범한 이날 다른 특검보들은 각각 자신의 입장과 각오를 비교적 소상하게 취재진에게 밝힌 것과는 달리 이 특검보는 극도로 말을 자제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사석에서 “사법연수원 직후 바로 변호사 생활을 한 입장에서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내가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김진흥 특검이 밝힌 대로 2팀 역시 약 열흘가량의 자료 검토 기간을 거쳤다. 당시의 상황에서 이 특검보는 다른 두 특검보보다 항상 늦게 퇴근하는 등 남다른 열의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3개의 독립된 사안을 각각 나눠서 맡다보니 어느 정도 경쟁이 있을 것은 짐작했지만, 특히 이 특검보는 검사 판사 출신인 다른 두 특검보에 비해 남다른 경쟁의식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특검팀의 수사 속도도 항상 2팀이 제일 빨랐다. 2팀은 1월12일 썬앤문 그룹 문병욱 회장 사무실을 가장 먼저 압수수색했다. 이어 13일에는 전 국정상황실장 이광재씨의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의 첫 소환대상자 역시 2팀에서 나왔다. 썬앤문 그룹 간부였던 이아무개씨였다. 취재진들의 눈길도 자연히 2팀에 주목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주 관심사는 김성래 부회장측의 녹취록에서 나온 95억원 유입설에 대한 실체였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는 달리 막상 95억원 유입에 대한 실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1월20일께부터 수사 방향은 급격히 농협 불법 대출 의혹으로 틀어졌고, 이때부터 이 특검보와 김 검사간의 갈등은 더욱 본격화됐다. 당시 이 특검보는 “농협 대출 관련 계좌추적이 쉽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특검보는 김 검사에게 “농협 임직원의 계좌추적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김 검사는 “이는 당초의 사안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직원들의 계좌추적을 일일이 다 하는 데에만 엄청난 수사력이 소요될 우려가 있다”는 반대 의견을 내놨다.
이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2팀은 문 회장과 김 부회장을 잇따라 소환했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이런 가운데 2월2일에는 농협에서 대출을 담당했던 정아무개 대리를 소환조사하는 과정에서 순간적인 울분으로 이 특검보가 그의 발을 두 차례 걷어 찼다. 결과적으로 이 특검보의 이 같은 행동은 내분을 촉진시켰다.
▲ 김진흥 특별검사 | ||
하지만 이 특검보는 수사관들이 의도적으로 수사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불신이 점점 깊어갔다. 그는 다음날 수사관에게 “관련자들의 거짓말에 끌려다니는 수사를 해서는 안된다. 뺨을 때리는 한이 있더라도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런 발언은 또다시 강압수사 지시로 받아들여지며 내분을 더욱 격화시켰다.
한 관계자는 “아무리 수사 경험이 없는 변호사 출신이라고 해도 그렇지 자신의 의욕과 공명심만으로 그런 수사 지시를 할 수 있는가. 뭔가 큰일을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사실상 2팀의 수사는 마비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내부에서는 “이 특검보가 폭력수사의 책임으로 구속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수사가 계속 답보 상태에 빠진 가운데 이 특검보는 김 검사가 형식적인 수사 계획서를 제출하는데 격분, 지난 2월9일 김 특검에게 “김 검사가 수사 의지가 전혀 없으니 파견을 취소시켜 줄 것”을 정식으로 건의했다.
이틀 뒤 김 특검은 이 특검보를 불러 김 검사가 제출한 복귀요청서를 보여주며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네가 양보하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13일에는 이 특검보와 김 검사를 모두 불러서 화해를 주선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이 특검보는 “내가 사임하겠다”고 밝히자 김 특검이 “그렇게 되면 폭행 수사가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너도 죽고 특검도 죽는 것이니 그냥 있어라”고 설득했다. 김 특검으로선 사태의 외부 유출을 막기에만 급급했다.
그리고 그날 2팀의 두 수사관인 우 변호사와 김 변호사를 각각 1, 3팀에 배치하는 것으로 사실상 2팀은 업무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이 특검보는 주말 동안 사퇴 결심을 굳히고 16일 출근하자마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의 변을 읽어 나갔다.
여기에서 이 특검보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폭로했다. 우선 파견검사 등 수사 관련자들이 교묘하게 수사를 방해하거나 수사 지시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또한 김 검사가 특검의 수사 상황을 대검에 보고했다는 점 등이다.
특검의 한 관계자는 “지금 일련의 모든 분위기가 이 특검보 한 사람을 바보 만드는 분위기”라며 “검찰 출신과 변호사간의 갈등은 예전에도 죽 있어왔던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보의 수사 지시를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 한 검찰 파견 인사는 “수사관이 수사 지시를 거부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수사 거부는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이 특검보와 김 검사 두 사람의 갈등을 마치 전체 수사관들이 수사에 태만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항변했다.
특검 수사 상황의 대검 보고에 대한 의혹 역시 매우 예민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자들의 집중 질문에 김 특검은 “확인 결과 대검 보고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현직 특검 관계자들은 대체적으로 검찰 파견 관계자들이 친정격인 대검과 서로 연락을 하는 사례는 존재하고 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 99년 옷로비 특검 당시 수사관이었던 한 관계자는 “당시에도 검찰 출신들이 대검에 항상 연락을 취하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그는 “당시는 첫 특검이었고, 또 워낙 분위기가 검찰 출신 변호사와 검사들이 수사를 완전 독점하던 상태여서 이를 문제삼을 분위기조차 안됐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못된 것 같다. 향후 특검에는 파견검사 제도를 없애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대검의 한 관계자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 때 파견나간 검찰 출신들이 정보를 잘 전해주지 않아 우리가 당시 정보 수집에 한창 애를 먹은 적이 있다”는 얘기도 했다.
이번 특검팀의 한 관계자 역시 “서면보고와 같은 공식적인 보고는 모르겠지만, 전화 통화 정도는 서로 가끔 하는 것 같았다. 어느 선까지를 보고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통화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전했다.
한편 지난 16일 사퇴로 파문을 일으켰던 이 특검보는 18일부터 돌연 잠적, 현재 모든 전화를 끊어놓고 있는 상태다. 국회 청문회에서도 당초 20일 이 특검보를 증인으로 부를 계획이었다가 연락이 끊겨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특검보의 부인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여행중이다. 본인이 너무 힘들어 하고 있어 머리를 식힐 겸 여행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는 “남편은 이달 25일께 돌아올 것”이라고 근황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