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끈’ 살아있나…몸 낮추고 재점검
서울 내곡동의 국정원 건물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유우성 씨.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최근 수차례에 걸쳐 <일요신문>과 통화한 베테랑 대북 정보원 A 씨는 탈북자 출신이다. 현재 중국 현지, 특히 북-중 접경지역에선 A 씨와 같은 탈북자 출신 민간 대북 정보원들이 북한 내부 정보를 취급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활동이 구체적으로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지만, 합법적 방법은 물론 경우에 따라 비합법적 방법도 통용된다.
이들은 중국 현지에서 기본적으로 북한 현지 소식에 밝은 ‘도강증’ 소지 조선족들과 접촉한다. 도강증이란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무역을 할 수 있는 일종의 통행증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 유심 칩을 심은 휴대전화를 북한에 들여보내 직접 통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선 중국 현지에 나와 있는 북한 당 일꾼들과 비공식적 접촉을 하며 정보활동을 꾀한다. 물론 이러한 활동 상당수는 합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행위들이다.
이렇게 수집한 정보들은 한국 내 대북단체, 국내외 언론(해외의 경우 상당수는 고가로 정보를 매입하는 일본 언론), 국내 사정기관들에 흘러들어간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정기관에는 국정원이 포함된다. A 씨는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도 유우성 사건 여파로 현지 분위기(중국)가 뒤숭숭하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아무래도 우리가 하는 활동들이 위험부담이 많지 않나. 정보활동이라는 게 비합법적인 부분이 걸려 있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러워졌다. 우리도 유 씨처럼 언제 어떻게 활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이 때문에 우리 활동 자체가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우리들 중 상당수는 만에 하나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내곡동(국정원을 지칭) 사람들과 ‘끈’을 두고 있다. 아마도 유 씨의 경우는 이 확실한 ‘끈’이 없었던 탓도 있다. 그래서 요즘 우리들 사이에선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끈’을 확실히 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은 북한 인사와의 직접 접촉도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우리가 간첩행위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어차피 우리 활동으로 인해 취합된 정보는 남한 측으로 넘어 간다”라며 “특히 3세 세습과정과 북한 내 권력구도 급변 시기 때 쏟아진 상당수 정보들은 우리의 역할이 컸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결국 우리(남한)만 손해”라고 지적했다.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A 씨가 말하는 정보활동 위축 현상은 실제 남한 내 탈북사회에서도 파생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 내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대북송금’이다. 현재 유우성 씨 역시 지난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불법 대북송금 대행업(일명 프로돈 사업)을 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현재 유 씨는 자신은 직접 해당 사업에 나서지 않았고 단지 계좌만 빌려줬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한국 내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들 상당수는 북한 현지에 친인척들을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들이 북한 현지에 생활 자금, 도강 자금 등 합법적으로 돈을 북으로 송금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상당수 탈북자들은 친인척들에게 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비합법적인 대북송금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비합법적 대북송금 과정은 한국 내 모집책과 중국 현지 브로커를 거친다. 여기서 말하는 모집책은 조선족 집단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들을 말하며 현지 브로커는 이들이 연결한 중국 현지 조선족들이다. 브로커가 만든 중국 현지 계좌에 남한 내 탈북자들이 송금할 돈을 입금하면 현지 브로커는 도강증을 소지한 또 다른 브로커에게 돈을 전달한다. 그리고 도강증을 제시하고 북에 들어간 브로커는 직접 친인척들에 위안화(중국돈) 혹은 달러화를 전달하는 형식이다.
이렇게 두세 다리를 거치기에 수수료는 원금의 20~30%로 무척이나 높은 수준이다. 어차피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거래기 때문에 중간에 배달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최근 유우성 사건 여파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남한 거주 14년차인 탈북자 홍 아무개 씨는 “비싼 수수료에 위험부담도 크지만, 그럼에도 대북송금은 우리에겐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그런데 최근 이러한 송금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가 오랫동안 선을 댔던 브로커가 한국의 최근 분위기 탓인지 어렵다고 하더라. 현재 다른 라인을 알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내부와의 전화 접촉도 최근 분위기 속에서 뜸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북-중 접경지역에 고향을 둔 탈북자들 일부는 앞서의 브로커를 통해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 내부에 들여보낸 뒤 직접 통화를 해오기도 했다.
접경지역의 경우 북한에서도 중국의 휴대전화가 사용 가능하다. 이 역시 막대한 수수료가 소요되지만, 탈북자들 사회에선 암묵적으로 북한 내부와 접촉할 수 있는 통로였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통화 접촉 자체도 자제되고 있다는 것이 앞서 홍 씨의 설명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