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하게 모시고 편하게 찾아봬요”
위에서부터 인천가족공원의 수목장과 잔디장,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화장터 ‘서울시립 승화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2004년 9월 고 김장수 고려대 명예교수의 장례식은 그의 생전 유지에 따라 수목장으로 진행됐다. 평생을 나무와 함께 지냈던 김 교수는 흔한 조화나 묘비 하나 없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갔다. 당시만 해도 수목장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았을 때라 김 교수의 장례는 자연장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이나 화초, 잔디, 정원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는 자연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절대 매장’을 고집하던 고령자들도 화장 후 자연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도시에 거주하는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의 35.4%는 ‘화장 후 봉안’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화장 후 자연장(28.5%)’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실제 자연장으로 장례를 진행하는 이들도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이다. 2009년 3329건에 그쳤던 자연장은 2010년 5269건, 2011년엔 6440건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로 현재는 연간 1만 건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연장은 ‘자연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친환경적인 장례절차라는 점에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자연장을 권장한다. 나무 등 친환경적인 용기에 골분을 담아 땅에 묻는 자연장은 토양오염이나 수질오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며 별도로 주변에 인위적인 장식을 하지 않아 자연경관을 해칠 염려도 없다.
비용도 매장이나 납골당 안치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사례별로 차이는 있으나 매장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경우 평균 2000만 원, 화장은 1400만~1500만 원 정도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자연장을 이용할 경우 화장의 절반 가격 정도면 충분히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수목장 기준 국립은 15년 기준 70만~235만 원, 사립은 200만~700만 원 정도의 사용비가 발생한다. 사후관리도 편하다. 자그마한 땅이나 나무를 돌보는 게 전부이기에 매년 벌초 등의 별도 관리가 필요 없다.
어머니를 수목장으로 모신 이 아무개 씨(36)는 “요즘엔 1~2명의 자식을 낳기에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묘지나 납골당을 관리하기가 어렵다. 졸지에 무연고자가 되느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 수목장을 택했다. 300만 원 비용이면 4~5명도 함께 묻힐 수 있으니 부담도 크지 않다. 처음에는 불이 나면 어떡하나, 나무가 병에 걸려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남은 가족이나 환경에게나 자연장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자연장을 활성화하면 장례용으로 사용되는 국토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전국의 묘지면적은 국토의 1%인 10만㏊(헥타르·1000㎢)나 된다. 서울시 면적(605.3㎢)의 1.65배에 달하는 크기로 매년 여의도 면적(8.4㎢)보다 큰 국토(900㏊)가 묘지 등 장례용으로 잠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자연장의 경우 납골당처럼 대규모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매장보다 훨씬 적은 면적을 필요로 하기에 훨씬 효율적이다.
하지만 자연장을 원한다고 해도 까다로운 절차와 규제 때문에 실천에 옮기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난해 정영철 정보기술융합센터장이 발표한 ‘우리나라 장사문화 현황’에 따르면 2012년 자연장 방식을 사용한 경우는 전체 수도권 화장시설 이용자의 14%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납골당 같은 봉안시설(31%)보다 자연장(39.3%)을 선호하는 비율이 더 높았으나 자연장지 면적 규제 등의 까다로운 여건으로 실제 이를 이용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지난해 초 여동생을 떠나보낸 김 아무개 씨(여·34)는 “동생이 생전 수목장을 바랐지만 서울 근교에는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이용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2017년까지 공설자연장지 17곳을 더 확충하는 계획을 세우는 한편 지난해 6월부터는 개인적으로도 자연장지를 마련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건축물과 공작물을 짓지 않는 조건 아래 개인 또는 가족 자연장지를 주거·상업·공업지역에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경우 앞마당에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아래 유골을 모실 수도 있으며 아파트에서도 커다란 화분 아래 돌아가신 가족을 묻어 늘 함께 지낼 수도 있게 됐다. 이럴 경우 별도의 장지를 마련하지 않아 비용절감은 물론이고 보다 효율적인 국토면적 사용도 가능하다.
또한 납골당이나 사설 자연장지를 이용하지 않음으로써 관행처럼 굳어진 ‘브로커 문화’ 개선 및 간소한 장례문화를 정착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상조회사들이 납골당이나 사설 자연장지를 소개시켜줄 경우 분양가의 최대 60%를 수수료로 떼 간다고 한다. 이는 장례비용을 가중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개인 자연장이 활성화되면 이러한 문제점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개정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주거·상업·공업지역에도 유골을 모실 수 있게 됐으나 다른 법(국토부 건설법 등과 같은)과의 충돌 여부도 미리 살펴봐야 한다. 때문에 화장하기 전에 미리 각 지자체에 문의를 해 문제가 되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자연장의 종류 살펴보니 수목장 커가는 나무 보며 고인을 추억한다 자연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화초·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 봉분의 역할을 하는 상징물을 어떤 것으로 할지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목장이다. 서울시립 묘지공원의 수목장. 고인이 어린 어린아이인 듯 나무 아래 장난감, 주전부리 등이 놓여있다. 일정 크기의 잔디를 조성한 뒤 그 곳에 유골을 묻는 형태로 조성되는 잔디장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표식도 자유롭다. 주변경관을 해치지 않게끔 작은 돌에 이름을 새기거나 아예 표식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잔디장은 땅만 있으면 선조부터 후손까지 한꺼번에 묻힐 수 있어 가족묘 형태로 사용하기 좋다. 잔디장에서 한 단계 고급스럽게 발전된 것이 정원장인데 일정 규모의 정원을 가꾼 뒤 그곳에 유골을 묻는 방식이다. 불법이니 환경오염이니 논란이 많았던 바다장도 2012년 국토해양부가 “유골을 뿌리는 것은 불법투기가 아니다”고 규정하며 자연장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바다장을 할 경우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우선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해역에서 장례를 치러야 하며 유골을 뿌릴 땐 바람에 날리지 않게 수면 가까이서 진행해야 한다. 선박의 항해를 방해해서도 안 되며 생화를 제외한 장례행사에 이용한 유품, 물품, 음식물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바다장 진행은 개인적으로 배를 구하거나 이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이용하면 되는데 비용은 40만~50만 원 선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넓은 바다를 장지로 삼을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해마다 바다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인천 앞바다에서만도 매년 1000건이 넘게 이뤄지고 있다. 명절이나 기일에 유골을 뿌린 정확한 장소를 찾아 방문을 하고 싶다면 바다장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해당 업체들은 유골을 뿌린 위치를 부표를 띄워 기록해두고 가족들이 방문을 원하면 일정 비용을 받고 데려다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2012년 당시 국토해양부에서는 바다장에 대해 불법이 아니라고 규정했으나 아직까지 장사법에는 명시되지 않은 부분이다.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기 위해선 사전에 각 지자체에 관련 조례를 문의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편 매장 형식에 자연장을 결합한 납골평장도 주목을 받고 있다. 납골평장은 화장 후 유골함을 친환경적인 것으로 만들어 땅에 묻고 봉분 없이 비석만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전통적인 매장에 비해 95% 가량 묘지 면적을 줄이는 효과가 있고 화장의 장점과 매장문화를 계승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박] |
아름답게 떠난 유명인들 법정 “화장 후 꽃밭에 뿌려라” # ‘무소유’ 법정 스님 평소 무소유를 강조했던 법정 스님(78)의 장례식은 검소 그 자체였다. 법정 스님은 생전 “장례식을 하지 마라. 관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화장 후 재는 평소 가꾸던 오두막 뜰의 꽃밭에다 뿌려라”고 유언을 남겼다. 장례식은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만 끼치는 행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법정 스님의 장례식은 유언 그대로였다. 법정 스님이 입던 옷 위에 가사(승려가 장삼 위에 입는 법의) 한 장 덮어 장례를 치렀다. 일체의 장례식은 물론 어떤 추모 행사도 없었다. 흔한 만장 하나 보이지 않았다. 화장 후엔 ‘꽃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법정 스님의 바람대로 자그마한 꽃밭에 안식처를 마련했다. # ‘나누는 삶’ 김수환 추기경 종교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김수환 추기경(87)의 장례식도 허례허식은 없었다.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는 일반 신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됐다. 검소한 장례식을 원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일체 조화도 받지 않았다. 수의도 생전 미사를 봉헌할 때 입던 제의를 사용해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았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은 고인의 뜻에 따라 일체 조화도 받지 않는 등 검소하게 치러졌다. 사진공동취재단 또한 김수환 추기경은 사후 각막기증을 결정했는데 이는 작은 기적을 낳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나누는 삶을 보여준 김수환 추기경의 뜻에 따라 그해만 평년의 3배가 넘는 18만여 명이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한 것이다. # ‘유쾌한 미용계의 대모’ 그레이스 리 “나 죽으면 갖고 있는 옷 중에 제일 예쁜 옷으로 입고 와야 해. 그리고 왜 장례식장에서는 흰 국화만 쓰는 거지? 난 핑크나 빨강처럼 예쁜 게 좋아. 그리고 절대 울고 짜고 하지 마. 음악은 아주 경쾌한 걸로 틀었으면 좋겠어.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니 장례식도 경쾌하게 치르면 좋지 않겠어.” 뽀글뽀글 파마머리가 최신 유행인 줄 알았던 1970년대 단발머리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한국 미용계의 대모’로 우뚝 선 그레이스 리(80.본명 이경자). 그는 대장암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가운데도 자신의 경쾌한 장례식을 그렸다. 유방암과 위암에 이어 세 번째 자신을 찾아온 암도, 눈앞에 닥친 죽음도 그에겐 하나의 잔치일 뿐이었다. 2011년 2월 실제 그레이스 리의 장례식은 생전의 유쾌한 그를 꼭 빼닮은 모습이었다. # ‘장례식도 작품처럼’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대가 백남준(74)이 떠나는 길은 그의 예술 세계처럼 자유분방하고도 파격적이었다. 2006년 2월 미국 뉴욕의 프랭크 캠벨 장례식장에서는 비밀리에 준비된 깜짝쇼가 벌어졌다. 백남준의 1958년 작품인 ‘피아노 습작’을 인용해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 것. 수백여 명의 조문객들은 나눠준 가위를 들고 옆 사람의 넥타이를 잘라 그 타이 자락들로 시신을 수북이 덮어 존경을 표했다. 그의 장례식은 장엄하면서도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