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성수대교 남단에서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이르는 약 4km 거리는 대낮부터 택시가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과 갤러리아백화점 부근에까지 이르는 한양아파트와 신·구 현대아파트 부근에 택시 행렬이 집중되고 있다. 일반 영업용 및 개인택시는 물론, 깨끗하게 차안 내부를 단장한 모범택시들까지 아파트 앞 길가에 진을 치거나 혹은 단지 내로 들어오고 나가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택시가 압구정동 아파트촌에 모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청계천 복원 공사 등으로 서울시내 교통난이 가중되고 ‘경기 불황’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서울 시민의 택시 선호도가 크게 떨어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
빈차로 상습 체증 구간을 돌아다니며 기름값을 허비할 바에야 차라리 특정한 곳에서 특정한 손님만을 노리자는 기사들이 늘어났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압구정동 아파트촌의 부유층 주민들이 집중 타깃으로 부각된 것.
게다가 불황으로 대부분 택시 타기를 꺼리는 마당에 그래도 택시를 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층은 압구정동 부촌 사람들일 것으로 택시업계는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꾸역꾸역 압구정동으로 택시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압구정동 영업 실적은 어떠할까. 기자가 만난 기사들 대다수가 서울 전역을 움직였을 때보다는 훨씬 벌이가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 갤러리아백화점 부근 한양아파트 정문에 차를 대고 있던 택시 기사 김아무개씨는 “크게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압구정동에 눌러 있기 전보다는 벌이가 괜찮다”고 말했다.
특히 압구정동 주민들이 강북으로나 혹은 서울 외곽 장거리를 다니지 않을 뿐더러 대부분 거스름돈을 받지 않아 기분 좋게 일을 한다는 기사들이 적지 않았다.
영업용 택시기사 정아무개씨는 “주로 인근 백화점이나 학교, 유흥가를 찾는 주부나 여대생, 일반 중·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이라며 “그중 절반 가까이가 기본 요금밖에 나오지 않는데도 1만원을 주고 수고했다며 그냥 내린다”고 귀띔했다. 정씨는 “약삭빠른 기사들은 이런 식으로 3∼4시간 만에 압구정동에서 입금액을 벌고 서울 전역 유흥가로 이동, 분당이나 일산 장거리 손님을 태워 용돈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미터 요금 외에 예상치 못한 부수입이 ‘짭짤하게’ 들어온다는 점도 기사들이 압구정동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이유. 특히 이곳 아파트에서 살며 주변 로데오 거리나 신사동, 청담동 등에 고급 유흥가를 찾는 대다수 여대생이나 주부 등은 아파트 단지 안까지 모셔다주는 택시 기사들에게 감사의 ‘팁’을 꼭 준다고. 팁의 액수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표현을 붙여도 무방하다고. 심지어 기본 요금이 나와도 잔돈이 없다며 수표를 준 뒤 그냥 내리는 손님도 꽤 있다는 기사들의 전언이다.
6년 동안 개인택시 영업을 해왔다는 안아무개씨는 “며칠 전에 압구정동 H아파트에 사는 여대생을 새벽에 태운 적이 있다. 술에 취한 여대생은 뒷자리에서 계속 코를 풀고 있었다. 그 학생이 내리고 뒷자리를 살펴보니 휴지가 아니라 수표로 코를 풀었던 것이다. 집에 와서 물로 씻어 말린 10만원짜리 수표가 15장이었다. 무려 20일치 수입이었다. 남의 콧물을 닦아내면서 그렇게 웃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택시가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택시들끼리의 경쟁도 치열하다. 현재까지는 모범택시의 완승이다. 동네가 동네인 만큼 택시에서도 고급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