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도서출판 다람’
[일요신문] 2002년 월드컵. 온 국민은 붉은 악마가 돼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고 감동했다. 열정적인 응원을 하던 팬들은 대표팀의 승리에 감동해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이 경기가 조작됐다는 상상을 해 본 적 있는가?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기도 전에 이미 승자와 패자는 결정돼 있고, 대표팀은 단지 받아든 각본에 충실한 연기를 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상상만으로도 당신은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
<THE FIX 승부조작의 진실>은 아시아의 작은 축구리그에서부터 유럽 리그와 세계최고의 무대인 월드컵까지 광범위한 승부조작이 축구계에 이뤄지고 있음을 고발한다. 저자인 데클란 힐은 이라크와 코소보를 비롯한 다양한 국제 분쟁 지역을 취재해온 종군 기자이자 탐사보도 전문가다. 그는 스포츠 승부조작에 관한 연구로 영국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밝힌 승부조작의 사례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놀랍다. 월드컵은 축구선수라면 호날두나 메시 같은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까지 모두가 뛰기를 열망하는 ‘꿈의 무대’다. 하지만 월드컵조차 승부조작의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근거로 2006년 월드컵 당시 방콕의 한 승부조작꾼이 자신이 ‘조작’했다며 밝힌 본선 네 경기의 승패가 예상대로 적중했고, 세 경기는 점수 차이까지 맞혔다는 사실을 공개한다. 비중이 적은 경기, 주목하지 않는 승부는 물론이고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월드컵 무대조차 승부조작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스포츠 승부조작의 ‘청정국’이 아니다. 스포츠 승부조작은 우리나라에도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사건이다. 지난 2012년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해 LG구단 소속 박현준이 영구제명 됐다. K리그에서 는 지난 2011년 최성국이 상무 소속 시절 승부조작 사건에 가담한 혐의가 드러나 영구제명 됐다. 가장 유명한 승부조작 사건은 e스포츠 계에서 발생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최고 실력자였던 마재윤이 승부조작 사태에 연루돼 충격을 줬다. 이 사건으로 마재윤은 영구제명됐다.
이 책에는 국내 승부조작보다 더 큰 판에서 더 큰 조직으로 벌어지는 스포츠 승부조작을 고발한다. 국내 스포츠 승부조작이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면, 해외에서는 축구계가 승부조작꾼들의 주요 타깃이다. 조작꾼들은 아이슬란드, 핀란드, 벨기에, 중국 슈퍼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까지 세계 곳곳 가리지 않고 조작을 꾸미거나 실제로 조작에 성공하기도 했다. 대표팀 간의 경기에서 페널티 킥이 4개가 나오는가 하면, 아프리카 가나 리그에서는 승격을 노리는 두 팀이 후반에만 30점, 26점을 넣기도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승부조작꾼들의 돈에 의해 선수가 매수돼 짜 맞춰진다.
<THE FIX 승부조작의 진실>은 1부 아시아, 2부 유럽 그리고 3부 월드컵으로 구성됐다. 각 챕터에서 아시아, 유럽 그리고 전 세계에서 승부조작이 벌어지는 상황을 취재한 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저자는 때로 폭력조직과 연관된 승부조작꾼들에게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까지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보며 ‘수십억 달러규모의 불법 도박 시장’, ‘5억 명이 시청한 기자회견’, ‘수백 개의 경기가 조작됐다’ 등의 과장됐다고 생각하기 쉬운 사실들을 접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 서문에 각종 협박에 시달리는 저자가 변호사 두 명에게 자신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경우 자신이 조사한 모든 자료를 공개하라는 지시를 해두었다는 사실을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저자의 취재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이 책을 썼는지는 책 곳곳에 등장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스포츠 경기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려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THE FIX 승부조작의 진실>을 집필한 이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스포츠를 지키기 위해서는 승부조작이라는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THE FIX 승부조작의 진실>은 조작된 승부, 불법 베팅의 세계, 그리고 월드컵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해 축구판 ‘위키리크스’로 ‘사커리크스’라 부를 만하다. 데클란 힐 Declan Hill 지음. 이원채 옮김. 다람. 정가 1만 7000원.
김태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