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에 대한 결정문을 발표하고 있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이날 ‘기각’ 결정이 내려지면서 어느 재판관이 ‘소수의견’을 냈는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지난 13일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한 이후 시중에는 과연 몇대몇으로 탄핵이 기각됐는지를 두고 많은 궁금증이 일고 있다. 헌재는 탄핵안 기각 결정 과정, 그리고 소수의견에 대한 일체의 사항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기각 결정이 내려지기 12일 전인 지난 5월2일, 주선회 주심 재판관은 “재판관별로 어느 정도 입장 정리가 이뤄졌기 때문에 이번 주 중에는 잠정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주 재판관의 말을 빌려 헌재 주변에서는 “결론은 이미 기각쪽으로 가닥 잡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인용(탄핵) 결정을 한 소수 의견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점일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탄핵이 기각으로 결정나더라도 인용 의견을 낸 숫자만큼 향후 정국이 요동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적잖은 관심사였다.
이 같은 모든 상황을 감안한 헌재는 애초부터 숫자는 밝히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다만 막판 소수의견을 결정문에 반영하는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각 결정이 나오기 전날까지도 헌재 주변의 취재진과 법조계 주변에서는 탄핵 찬성 재판관 수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 전망이 오갔다. 물론 세 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정국 분석도 함께 곁들여졌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탄핵 찬성이 한 명도 없거나 한 명일 경우. 이런 결과가 나오면 청와대와 여당측은 집권 2기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지만, 반대로 야당은 탄핵 정국 책임론에 휘말리게 될 것으로 보았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탄핵 찬성이 2∼3명. 가장 가능성 높은 예상치로 거론됐다. 또한 여권은 여권대로, 야권은 야권대로 나름대로의 명분을 세울 수도 있고 정국 안정화도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했다. 이 경우 ‘탄핵 찬성이라는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이 과연 누구일까’가 대단한 관심사로 등장할 것으로 봤다.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헌재 선고 직후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기각 대 인용의 비율이 6대3이라는 주장이 한때 정설처럼 나돌았다. CBS가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에서는 ‘각하 1명을 포함, 기각이 6명이며, 인용이 3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라며 정치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특히 이 보도에는 ‘각하는 전효숙 재판관이며, 인용은 김영일 권성 이상경 재판관’이라고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명시하고 있어 설득력을 높여주기도 했다.
과연 이 내용은 얼마나 사실일까. 구체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명시되기까지 했지만 헌재 재판관들은 미리 사전에 단단히 약속한 듯 언론에 단 한마디의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이 내용이 실제와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의 한 원로 변호사는 “기각 의견이 애초 4∼6명을 오가는 상황에서 4월30일 최종 변론 이후 사실상 결론은 어느 정도 정해졌을 것으로 예상됐다. 당시까지도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재판관도 1∼2명 있었을 것이고,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 재판관도 2∼3명 정도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인터넷에 언급된 세 명의 재판관도 결국은 평소의 성향과 이번 재판에 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입장으로 볼 때 가장 인용쪽의 입장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측되는 분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권성 재판관은 한나라당 추천 케이스로 헌재 법복을 입었고, 이회창 전 총재와도 친분이 두텁다는 평으로 인해 당초부터 대통령 변호인단측을 긴장시켰던 재판관이다.
이번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권 재판관은 증인 신문에서 가장 강경한 톤으로 안희정씨를 몰아붙였다는 후문이다.
권 재판관은 안씨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불법자금을 노 대통령이 사실상 보고받은 것 아니냐”, “대선 이후 불법 자금을 받은 적이 없느냐”며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추궁했다는 것.
특히 심판 과정에서 소추위원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해 대통령 변호인단측의 강한 항의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일 재판관 역시 증인 신문에서 대통령 측근들을 직접 추궁했다. 김 재판관은 안씨에게 “대선 당시 대통령 정무팀장인 증인이 선거자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의문을 제기했고, “노 대통령이 몰랐다면 왜 검찰의 측근비리 수사 소식에 눈앞이 캄캄해졌겠는가”라며 안씨를 궁지에 몰기도 했다.
또한 여택수씨에게도 “청와대 공무원인 증인이 왜 정당의 정치자금에 관여하느냐. 사실상 열린우리당을 지원하려는 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이뤄진 일 아니냐”고 매섭게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효숙 재판관, 송인준 재판관, 김영일 재판관, 김효종 재판관, 이상경 재판관, 김경일 재판관, 주선회 재판관, 권성 재판관 | ||
반면 전효숙 재판관은 유일하게 각하 결정을 내렸을 것이란 예상이었다. 당초 재판관 9인의 성향을 점쳤던 지난 3월, 여권에서 가장 확실한 우군으로 전 재판관을 꼽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재판관들 가운데 비교적 개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평의가 한창 진행중이던 5월초 헌재 주변에서는 “탄핵 직후부터 각하 사유라는 개인 소신을 강력히 피력한 재판관이 한 명 있다더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그 주인공으로 전 재판관이 유력하게 회자되기도 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으며 기자와의 접촉이 잦았던 윤영철 소장과 주선회 재판관은 기각이라는 틀 속에 평의를 이끌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의견이 많다.
특히 검사 시절 노 대통령과 한때 대립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전력 때문에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던 주 재판관은 취재진의 집요한 질문을 두루뭉실한 답변과 웃음으로 피해갔지만 5월 이후부터 부쩍 ‘기각’쪽의 뉘앙스를 풍겼다는 것이 한 출입기자의 전언이다.
나머지 4인의 재판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난무하고 있다.
지난 노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발언에 대한 헌재의 결정에서 당시 김효종 재판관이 윤영철 주선회 전효숙 재판관과 함께 대통령측 입장에 섰고, 김경일 송인준 재판관이 권성 김영일 재판관과 함께 그 반대편 의견을 개진했던 전력에 비춰볼때 김효종 재판관을 기각쪽에, 김경일 송인준 재판관을 인용쪽에 분류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5월14일 선고 당일 김경일 재판관이 유일하게 취재진에게 “결정문에 대체로 만족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어 기각의견을 냈을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가장 뒤늦게 헌법 재판관에 임명된 이상경 재판관은 열린우리당이 떨어져 나간 뒤의 조순형 총재 체재의 민주당 추천을 받았고, 또 이에 대해 당시 열린우리당이 반대를 했던 전력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통령 탄핵 찬성 입장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기각 성향 3인과 인용 성향 2인을 제외한 상태에서 결국 나머지 4인의 재판관이 어느쪽으로 쏠릴지가 향배였는데, 대체적으로 기각이라는 국민 여론을 감안한 쪽으로 흐른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