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철씨 | ||
정태수 전 회장은 지난 99년 경제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당시 한보의 부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핵심 최측근 등 ‘신민주세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그가 제기한 의혹에는 ‘신민주세력이 정권 재창출용 자금의 조달을 목적으로 한보를 제3자에게 인수시키려고 부도처리를 한 것으로 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의 의혹 제기에 대해 정 전 회장은 “지나간 일을 가슴속에 둬봐야 병만 생긴다”며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억울하다는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보의 한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우리 회사의 재기가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다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놓지는 않았지만 정 전 회장측은 여전히 한보철강의 부도가 당시 정치권 실세의 입김 때문이라고 확신하는 눈치다. 그러나 정 전 회장측의 시각과는 달리 당시 YS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한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는 것이 전직 검찰 간부의 전언이다.
차남 현철씨가 한보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던 YS가 당시 강골 검사로 소문난 심재륜 검사장을 대검 중수부장으로 전격 발탁하면서까지 한보와 현철씨의 무관성을 파헤칠 것을 지시했다는 것. 그러나 오히려 이 과정에서 현철씨의 다른 비리가 드러나면서 결국 현철씨는 추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보 수사가 당시 정권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던 현철씨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은 지난 2월 홍인길 전 수석이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3천억원 대출을 안해줘서, 5조원을 날리는 건 내가 생각해도 상식에 어긋난다. 3천억원만 추가 대출하면 되는데, 이석채 당시 경제수석이 그대로 부도를 내버린 것이다. 나는 강력히 말렸다. 이 수석에게 ‘현철이가 결백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한보를 죽일 필요까지야 있느냐’고 했다. 그 결과 나라를 풍비박산으로 몰고 간 것이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의 이 같은 음모론 제기에 대해 “자신의 사업 재개를 위한 명분용”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YS정부 당시 한 고위관료는 “한보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철강왕’을 꿈꾸던 정태수 회장의 무리한 욕심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의 ‘재기 선언’으로 다시 도마 위에 오른 한보 부도 미스터리. 이미 7년여가 흘렀지만 ‘진상’은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 있다.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