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노무담당…“힘겨루기 고되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사업주들로부터 단체교섭권을 위임받은 경총이 노조와의 협상에 애를 먹고 있다. 사진은 최근 숨진 염호석 분회장(34)의 유골함 운반 과정에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과 경찰이 마찰을 빚는 모습. 연합뉴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노조) 측은 삼성전자의 협력(하청)업체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경총이 고용보장과 임금협상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9개월 시간 끌기를 계속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직접 노사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성에 참여했던 염호석 양산 분회장이 지난 17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되자 노조의 분위기는 더 강경해졌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염 분회장의 사망 사건이 삼성과 경총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며 전면파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염 분회장의 시신을 놓고 유족과 노조 간에 탈취사건이 발생해 일부 조합원들이 구속되는 등 법적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당초 삼성전자서비스의 47개 협력사에 노조가 설립되자, 협력업체 사업주들이 경총에 단체교섭권을 일괄 위임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경총은 염 분회장 사망 사건과 관련해 “단체교섭과 무관하다”며 “전면파업은 명분 없는 투쟁”이라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원청’인 삼성전자가 ‘통큰’ 결단을 내려주지 않으면 임금인상이나 고용안정 문제를 놓고 노조를 달랠 묘책이 없는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입원해 있는 상황에서 조용히 협상을 마무리해줄 것을 경총 측에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경총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닐 것”이라고 귀띔했다. 경총으로선 가뜩이나 불편한 심기인 삼성그룹의 눈치를 봐야할 입장인 것이다.
이처럼 삼성의 골칫거리를 떠안고 있는 게 ‘외환’이라면, ‘내우’는 차기 회장을 모시는 일이다. 이희범 전 회장이 자리를 비운 지 3개월 가까이 지나가는데 누구도 나서는 인물이 없다. 재계 관계자는 “경총에서 기업 총수들을 더러 접촉했는데, 긍정적인 답변은 고사하고 아예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경총은 지난 2월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이장한 종근당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등을 후보로 압축해 의사를 타진했지만 모두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총수들이 경총 회장 자리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껄끄러운 노동계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총은 경제 5단체 가운데 하나로 사용자측을 대표하는 경영자 단체다. 노동조합 진영의 협상 맞상대로 주된 업무가 노사관계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대응해 사용자측 논리를 개진한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대형 노동 이슈가 잇따라 터져 나온 상황이다. 통상임금 산정 문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이후 더욱 기업들의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고, 근로시간 단축 문제도 사용자측 입장에선 노동계와 한판 힘겨루기를 해야 할 현안이다. 이들 문제를 놓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 마련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사정소위도 지난 4월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실패한 것만 봐도 험로가 눈에 선하다.
이처럼 노동현안으로 노사협상이 벌어질 때마다 경총 회장은 경영계를 대표해 ‘악역’을 도맡아야 한다. 정부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 물밑협상도 해야 한다. 대기업 오너들 사이엔 ‘맡아봐야 득 될 것이 없다’는 자리로 인식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40년 넘는 경총의 역사 속에서 회장직을 거쳐 간 인물이 5명뿐이다. 초대 김용주 전방 회장, 2대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 3대 김창성 전방 회장, 4대 이수영 동양화학 회장, 5대 이희범 STX중공업 회장이 이끌어 왔다.
더욱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를 둘러싼 노사갈등의 한 중간에 서야하는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 재계 1위 삼성의 문제를 떠안고 잡음 없이 해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의 정황만 보면 경총의 외환이 내우를 해결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경총의 회장 공백이 장기화될 공산이 더욱 커지고 있다.
박웅채 언론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사문제에서 사용자를 대표하는 단체다. 1970년 7월 15일 설립됐으며, 경영계 최초의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노사협상의 주체로 위상을 정립했다. 1991년 국제노동기구(ILO) 정회원이 됐고, 1998년 1월부터 노사정위원회에 사용자측 입장으로 참여해왔다. 노동관계법의 제·개정을 필두로 최저임금 산정, 임금교섭 등에 경영계의 의견을 낸다. 전국 각 시·도에 있는 13개 지방경영자협회, 25개 업종별 단체를 포함해 제조업, 건설업, 운송업, 금융증권업, 전산, 서비스 분야에 걸쳐 4000여 회원사가 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