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부평시 산곡동 산20번지 일대 임야대장. 오른쪽은 <대한매일신보> 1908년 12월2일자. | ||
1908년 조선통감부 재판소. 명성황후의 조카로 을사조약(1905년) 체결에 항의해 자결한 순국지사 민영환 선생의 유족과 친일파 거두 송병준이 토지(현 부평 산곡동 지역) 소유권을 놓고 법정에서 맞붙었다.
민영환의 유족 : 민씨가의 식객이던 송병준이 ‘일본 왕실이 목양회사 땅(현 부평)을 뺏으려고 하니 땅을 내 명의로 옮겨놓으면 그런 피해는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민영환 선생의 노모를 속였다. 그때 받은 허위 매각 증서를 근거로 목양사 토지를 빼앗았으니 이는 무효다.
송병준 : 아니다. 민영환의 생모가 민영환의 장례비용 빚을 갚기 위해 땅을 팔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해 ‘일진회’(친일 단체)로 하여금 사들이게 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 1908년 12월2일자에 따르면 이 재판은 당시의 ‘실세’ 송병준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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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31일 서울중앙지법(민사합의 23부). 국가에 반환될 예정인 부평 미군부대 부지를 놓고 송병준의 증손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민영환 선생의 후손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송병준의 증손 : 부평 미군부대 땅은 증조부 송병준의 땅이었으나 해방 후 미군정이 강제로 국가에 귀속한 것이다. 다시 돌려달라.
민영환의 손자 : 부평 땅은 원래 민영환 선생의 땅이었다. 송병준이 민 선생의 노모를 기망하여 간사하게 빼앗은 것이니 원래의 주인인 우리에게 돌려달라.
약 1세기 전 양가의 선조가 송사를 벌였던 바로 그 땅을 두고 순국지사와 친일파 후손 간에 다시 법정 싸움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를테면 ‘1백여년 만의 리턴매치’인 셈이다.
그러나 이 재판은 법원이 민 선생 후손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야만 성립될 수 있다. 만약 재판이 이뤄진다면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민씨가와 송씨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숙명적 송사의 어제와 오늘을 따라가봤다.
다툼의 대상이 되는 땅은 경기도 부평시 산곡동 산 20번지 일대의 13만3천여 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이 자리잡고 있는 이 땅은 애초 2008년 국가에 반환될 예정이었다. 부동산등기부상의 현 소유주가 국가이고, 그동안 정부가 이 땅을 미군기지에 빌려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병준의 증손자 등이 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송병준의 증손자 등이 부평 땅에 대한 소유권 이전 소송을 처음 제기한 것은 지난 94년. 하지만 별다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패소했고, 이후 97년에도 비슷한 송사를 벌였으나 이 역시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002년 송병준의 증손자 송아무개씨(58)가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며 부평 땅 중 3천여 평에 대해 다시 소유권 등기 말소 소송에 나서면서 재판 양상도 바뀌게 됐다. 새 증거란 다름 아닌 송병준 소유로 기록돼 있는 부평 땅의 옛 등기부등본. 땅의 옛 주인이 송병준으로 밝혀졌으므로 현재 정부의 소유로 돼 있는 소유권 등기는 말소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민영환 선생의 후손 14명이 지난 5월31일 이 소송과 관련해 ‘독립당사자 참가’ 신청을 내면서 양가의 오래된 토지 분쟁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민사소송에서 ‘독립당사자 참가’란 진행중인 소송의 결과에 따라 자신의 이해나 권리가 침해당할 경우 원고, 피고 중 한쪽의 공동당사자 혹은 제3의 별도당사자로 소송에 참가하는 것을 말한다. 민 선생의 후손들은 ‘부평 땅은 송병준이 민 선생의 유족들을 속여 취득한 토지이므로 소유권은 민 선생의 후손들에게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만약 법원이 민 선생 후손의 ‘참가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순국지사 후손과 친일파 후손이 땅 소유권을 놓고 법정에서 다투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두 집안의 ‘리턴매치’가 성사되려면 필히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
현재 부평 땅 소유권 소송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반환될 부평 땅이 국가의 소유인지 원고측인 송병준 개인의 소유인지를 가리는 것이 우선. 만약 개인의 땅이라면 과연 송병준 후손의 땅인지 민영환 선생 후손의 땅인지를 따지는 것이 그 다음 수순이다. 물론 법원이 민영환 후손의 독립당사자 참가 신청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 경우다.
과연 부평 땅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먼저 땅의 내력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이 땅의 옛 임야대장에는 대정(大正) 5년(1916년) 11월28일 사정(査定) 취득자로 송병준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그후 이 땅은 두 사람을 더 거쳐 1923년 조선총독부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일제는 이 곳을 일종의 군수기지인 조병창기지 등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11일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천 부평구청 송무관계자는 “송씨측이 부평 일대의 땅이 송병준의 소유로 기록된 옛 등기부등본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말 그런 옛 등기부등본이 존재한다면 국가의 소유권은 무효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만약 부평 땅이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개인의 소유로 인정된다면 과연 송씨가의 땅인가, 민씨가의 땅인가.
송씨측 변호인은 “토지대장으로는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고 등기부를 봐야 한다. 송병준에서 국가의 소유로 넘어간 부분이 석연치 않다”며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라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송씨측 주장은 송병준이 국가로부터 합법적으로 받은 땅을 해방 후 미군정이 강제로 국가에 귀속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영환 선생의 손자 민아무개씨(76)는 “애초 송병준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된 1908년 재판 자체가 무효다. 당시 일제의 하수기관인 조선통감부에서 재판을 했고 주임판사가 일본인이었다. 당연히 친일파 송병준에게 유리한 판결을 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씨측은 증거가 될 만한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민씨는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줄 모든 자료를 모으고 있다. 현재로서는 불리하지만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이 떳떳하게 토지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