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근안 | ||
지난 88년 납북 어부 김성학씨를 불법 체포해, 약 70여일 동안 감금하면서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수배됐던 이근안 전 경감. 무려 10년 10개월 동안 도피 생활을 하다 지난 99년 자수한 그는 현재 여주교도소에 수용돼 있다. 이 전 경감은 지난 2000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된 뒤 영등포구치소에서 여주교도소로 이송됐었다.
구속 당시 “나는 애국하는 마음밖에 없었다”며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이 전 경감은 현재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2년여 남은 출소일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경감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2006년 11월이다.
특히 도피 생활 중 성경을 11번이나 읽었을 만큼 종교에 의지하던 이 전 경감은 옥중에서도 여전히 ‘믿음’을 잃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도소 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전 경감은 교도소 수용 이후 줄곧 소내 기독교 간증집회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전도 사업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이 전 경감은 지난 5월27일과 28일 방송된 극동방송 가정의 달 특집 다큐멘터리 ‘교도소에 갇힌 아버지들’ 프로에 주인공으로 선정, 최근 근황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 전 경감은 교도소를 방문한 제작진을 만나 자신의 신앙생활과 가족의 대한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경감은 극동방송 인터뷰에서 “출소 후 가족들은 물론, 외롭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못 다한 사랑을 베풀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수감 당시 당뇨와 치질 증세로 고생하던 이 전 경감의 건강 상태는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경감은 꾸준한 운동과 절제된 생활로 당뇨 수치 및 혈압도 거의 정상에 가깝게 회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 경감은 수감 중 둘째 아들이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한동안 정신적인 공황에 빠졌고,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아들 생각에 한동안 잠을 청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신창원 | ||
둘째 아들의 죽음에 한동안 ‘실의’에 빠졌던 이 전 경감은 최근 막내아들을 통해서 그 아픔을 달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전 경감이 최근 ‘아버지가 출소한 이후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막내아들의 ‘결심’을 전해들은 뒤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는 게 교도소 주변 관계자들의 말이다.
한편 이 전 경감의 부인 신영옥씨는 남편이 수감된 이후에도 이사를 가지 않고 현재까지 서울 용두 2동 자택에서 며느리와 거주하고 있다. 신씨는 남편의 도피기간 동안 생활방편이 됐던 낡은 미용실을 아직도 꾸려나가고 있다.
기자는 지난 6월9일 부인 신씨가 운영하는 용두동 Y미용실을 찾았다. 이 전 경감 구속 당시 기자들이 몰려들었던 Y미용실은 5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가 만난 신씨는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이 전 경감과는 달리, 여전히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지 못한 듯 보였다. 허름한 미용 기구는 물론, 그 기구함 모서리에 숨긴 듯 놓여진 영업허가증은 곧 신씨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10여년간의 도피와 구속, 둘째 아들의 죽음 등 거듭된 ‘악몽’으로 인해 매우 지친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 탓인지 심신도 상당히 쇠약해져 있었다. 기자가 미용실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네는 순간에도 신씨는 미용실 한켠의 침상에 몸져누운 채 인사를 받을 정도였다. 신씨는 기자가 침상 쪽으로 다가가자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침상에 있던 약 봉투를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신씨는 기자의 질문에 “할 말 없다. 왜 또 왔느냐”며 고개를 벽 방향으로 돌렸다. “면회를 자주 가느냐”, “남편 건강은 어떠냐”는 가벼운 질문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신씨는 남편 검거 당시의 앙금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듯했다. 신씨는 기자가 묻는 말에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과거’를 거론할 때마다 간헐적으로 가시 돋친 말을 쏟아냈다. 아직도 남편이 했던 일에 대해선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입장이 확고부동했다. 신씨는 그 말 외에는 “나라가 거꾸로 가는 상황에서 내가 입을 열어 뭐하냐”며 대답하기를 꺼렸다.
절도 혐의로 교도소에 복역 중 지난 98년 5월 탈옥해 무려 35개월간 신출귀몰 도주극을 펼친 신창원은 현재 청송 제2교도소에 수용돼 있다.
신창원은 체포 후 징역 22년 6월 형을 선고받은 뒤 한때 빙의 증상을 보이는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근래 들어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해에는, 매년 한 번씩 2주간 실시되는 수용자 정신 교육 대상에서 제외될 만큼 성실한 수용생활을 인정받고 있다.
▲ 박노항 | ||
공부도 열심이다. 특히 신창원은 지난 4월 치러진 고입검정고시에서 과목 전체 평균 95점 정도를 받으며 중학교 졸업 학력을 취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신창원은 합격 통지서를 받자마자 8월에 있을 대입 검정고시를 대비해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 관계자에 따르면 신창원은 범죄심리상담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며, 면회객이나 가족들에게는 독학사 시험에만 합격하면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자주 얘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신창원은 이와 같은 자신의 바람을 주변에 알리면서 자신에 대한 바깥 여론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극히 꺼리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최근 몇몇 기자들의 면회 신청에도 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모 여성지 기자와 얼마 전 면회를 하기도 했다. 신창원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한때 ‘전형’으로 삼았던 ‘대도’ 조세형씨의 근황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신창원은 지난해 말 우연한 기회에 최낙정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만나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다일복지재단’의 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최 전 장관은 지난 5월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 <단디 하겠심니더>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일반면회를 통해 신창원을 만났다는 최 전 장관은 “신창원은 비상한 재주를 가졌고, 머리가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정말 어릴 적부터 좋은 길로 인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었다”고 회상했다. 최 전 장관은 신창원이 지난 4·15 선거를 앞둔 자신에게 응원 편지까지 보낸 사실까지 공개했다.
신창원은 한때 결혼설이 나돌았던 애인과는 최근 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 여인은 대구지역 특수학교 교사였으며, 신창원과 결혼하기를 원했으나 신창원이 거절했다고 한다. 한편 도피 기간에도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했던 신창원에게 아직도 몇몇 여성들이 편지를 보내고 있으며, 신창원도 이들에게 꾸준히 답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5년 10월부터 98년 4월까지 무려 89차례에 걸쳐 병역면제 등 대가로 12억여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로 수배된 뒤 3년여 간의 도피 끝에 지난 2001년 4월25일 검거된 박노항 전 원사. 그는 지난 2002년 12월24일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육군에서 강제 제적 조치된 뒤 현재 홍성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박 전 원사의 근황에 대해서는 홍성교도소측이 철저히 함구하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박 전 원사가 비교적 건강한 상태에서 종교 생활을 통해 교도소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을 법한 교도소 내 종교 위원들에게도 아직까지 병역 비리 비화나 수감 생활의 고충에 대해서만큼은 일절 말이 없다고 한다.
박 전 원사가 수감된 이후 매달 한 번 꼴로 면회를 하던 박 전 원사의 친형은 거주하던 충남 서천을 떠나 최근 이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원사의 친형이 살던 서천군 마서면의 한 주민에 따르면 동네 주민들은 박 전 원사에 대해서는 아예 묻지도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