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길 닿는 모든 것들이 잿빛이 드리워 진 것 같다. 아내가 안색이 안 좋다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 봤지만 말하지 못했다. 너무나 너무나도 미안해 알릴 수가 없다. 아이들은 어째서 자고 있을 때 더 예뻐 보일까 ! 무한 책임을 진 아빠로서 더 이상 저 아이들을 책임질 수가 없다니….
1995. 3. (수술 받던 날)
제발 수술만이라도 할 수 있기를…. 혹 수술을 못하는 말기 상태라면 내게 1년만 시간이 주어졌으면 싶다. (중략) 몽롱한 상태에서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전신 마취가 풀리면서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머니!
1995. 4. (수술 한달 후)
암3기 수술, 임파선에 전이된 상태, 5년 생존율 20%. 이것이 내 몸의 의학적 통계 현상이다. 아니다. “제로 아니면 100%” 그것이 나의 상태다. 생존율 90%인 초기라도 죽으면 제로고, 말기 환자라도 살면 100% 아닌가. 나에게도 100%의 희망이 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전의를 가다듬고, 희망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고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자.
1995. 6. (수술 3개월 후)
나는 아내와 네 살, 여섯 살 두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다. 희망이 없는 내게서 그들을 구해내고 싶다.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했다. 아내가 ‘당신이라면, 내가 암에 걸린 상태에서 이혼하자면 할 수 있겠냐’고 따진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1995. 9. (수술 6개월 후)
“生死不二.”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인다. 죽음이 두려운 생각이 들 때마다…. 남아 있는 삶이 1년이든 2년이든 세상에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혹 살아난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나의 마음, 나의 몸, 내가 혹시 돈을 벌게 된다면 나의 소득 등 아무튼 내가 소유하는 모든 것의 일부는 반드시 세상과 나누는 삶을 살리라. 그것이 내 인생이 되리라
1997. 5 (수술 2년 후)
‘충분한 부’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여유가 없을 때 기부활동과 봉사활동을 시작하자. 이것이 나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고, 덤으로 사는 내 인생의 부채를 갚는 길이다.
1998. 4. (3년 후)
수술한 지 3년이 되었다. 가치있게 살라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고 내게 주어진 덤의 삶이다. IMF 한파로 학원 경영이 어렵다.
사람인가? 비즈니스인가? 사람들이 어려울 때는 사람을 취하자. 사람들의 경제적 환경이 여유가 있을 때 비즈니스를 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