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과 검찰간 이상기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영장실질심사 도입이나 법조비리 수사과정에서 심각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번 갈등의 시발점도 과거와 비슷하다. 법조비리 수사과정에서 쌓인 감정의 골이 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최근 검찰이 의욕적으로 수사한 사건에 대해 잇따라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과 법원 사이의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검찰은 지난 4월 초 변호사 법조비리를 근절시키기 위해 앞으로 3개월 동안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단속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여러 법조비리 가운데 ‘변호사 수임비리’에 국한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판·검사 출신 변호사, 이른바 ‘전관들의 수임비리’를 타깃으로 삼는다는 것이 법조비리 수사의 주안점이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검찰이 혐의점이 있는 전관 출신 변호사의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하고 관련 계좌를 추적한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대표적인 법조타운인 서울 서초동 변호사업계는 바짝 긴장했다. 과거처럼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의 수사가 아니라 발본색원하겠다는 검찰의 의지가 읽혔기 때문이다.
서초동에 불어닥친 한파는 한달 가량 뒤인 5월 중순쯤 고검장급 출신 변호사인 K씨가 검찰에 수임비리로 적발됐다는 소문이 번졌을 때 절정을 이뤘다. 특히 검찰에 전해진 충격파는 실로 엄청났다. 얼마전까지 선배로 모셨던(?) 검찰 전직 간부의 비리를 검찰이 스스로 밝혀내면서 수사의 성역이 없음을 실감한 것이다.
이때부터 변호사들의 모든 관심은 법조비리 수사전담부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로 쏠렸다. 어느 변호사가 소환되는지, 어느 법무법인이 수사선상에 오르는지가 매일매일의 화제였던 것이다.
검찰 고위 간부가 적발되자 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당시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검찰 간부가 적발된 만큼 자연스럽게 검찰 수사의 타깃은 법원 출신 변호사들로 좁혀들 것이다. 수사발표때 검찰 출신 변호사들만 있을 경우 검찰이 얼마나 타격을 입겠나. 법관 출신 고위 간부의 법조비리도 섞여 있어야 법조계 전체에 만연된 법조비리로 희석되면서 검찰의 부담이 줄지 않겠나.”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 뒤 검찰은 부장판사 출신의 조아무개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한 법무법인의 수임비리에 대한 단서를 찾아냈다. 검찰은 해당 법무법인의 소속 사무장을 이미 수임비리 혐의로 구속했고, 대표 변호사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수사로 확대하는 단계였다.
그러나 문제는 K씨에 대한 처리가 지연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K씨는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고, 관련자들의 진술도 일부 번복됐다. 검찰은 K씨가 사무장에게 보수 외에 통장으로 입금한 사례비는 수임비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지만 사법처리 여부는 일단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법원은 조 변호사에 대해 청구된 사전구속영장을 영장실질심사 현장에게 기각했다. 당시 영장전담판사는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최근 법조비리 수사에 대한 검찰수사의 형평성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는 후문이다. 사전구속영장의 경우 영장전담판사가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기록검토를 거쳐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처럼 실질심사 현장에서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피의자를 풀어준 것은 이례적이다.
일각에서는 검찰 전직 간부들은 봐주면서 법원이나 연수원,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들만 강도높게 수사하는 검찰의 수사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법원은 또 검찰이 이번 수사과정에서 일부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알선료 제공 단서를 포착하고 혐의를 입증키 위해 청구한 계좌추적 압수수색 영장 2건을 ‘소명부족’ 등을 이유로 기각했다. 법조계 인사들은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것도 수사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에 검찰은 발끈하고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전담판사가 기록 검토 뒤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기각 사유를 밝히면 되지 굳이 현장에서 영장을 기각한 것은 감정적인 대응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고 말했다.
법원도 검찰에 불만이 쌓이기는 마찬가지다. 법조비리 수사가 편파적이라는 것이 이유다. 이번에 적발된 22명의 변호사 가운데 부장검사급 검찰 간부는 전혀 없다. 3명의 검찰 출신 변호사가 적발됐지만 검사 경력이 짧은 변호사였다. 수사 초기 검찰에 적발된 검찰 간부 출신 K씨도 입건되지 않았다. K씨가 사건을 소개받고 알선료를 지급한 사실은 드러났지만 알선료 총액이 검찰의 입건 기준인 1천만원에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입건하지 않은 이유였다. 다만 검찰은 K씨에 대한 비위사실을 대한변협에 통보했을 뿐이다.
반면 법원 간부 출신 변호사는 부장판사 출신인 조 변호사를 비롯해 지원장 출신의 또다른 변호사가 입건돼 형사처벌을 받았다. 법원측에서 볼 때 검찰 수사에 형평성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검찰과 법원간에는 법조비리를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마찰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들의 경우 본격적으로 사건화되기 전부터 ‘전관’을 무기로 사건을 수임하고 있다는 것이 법원 출신 변호사들이 검찰 출신 변호사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검찰이 수사는 했지만 결국에는 기소되지 않는 수많은 사건에서 비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반면 법원 출신 변호사들의 경우 특정 사건의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보고 있다.
여기에 법원이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사건, 범행교사 사건 등 간접증거 외에 직접증거를 찾기 어려운 사건에 대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한 것도 법원-검찰간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만 해도 법원은 3천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자민련 조희욱 전 의원, 현대비자금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광태 광주시장,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송두율 교수, 안기부 예산전용 사건인 ‘안풍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대부분 직접증거가 없는데다 증인의 진술도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이유다. 그러나 검찰은 1심 법원이 대부분 유죄로 인정한 사건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정치적인 고려가 작용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법원과 검찰간 이상기류는 현재진행형이다. 다른 촉매제만 생기면 법원-검찰간 갈등이 외부로 드러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관전평이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