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은 수면제가 어떻게 혈액 속에…
마릴린 먼로의 사인이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공식 발표됐지만 타살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원안은 장례 행렬.
1962년 8월 5일 새벽, 마릴린 먼로의 가정부였던 유니스 머레이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고 먼로의 주치의 랠프 그린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린슨은 LA의 브렌트우드에 있는 먼로의 집으로 달려왔고, 먼로가 그렇게 죽은 채 발견된다. 사인은 수면제 과다 복용. 검시관은 토머스 노구치였으며 자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의 죽음은 1962년 8월 6일 타블로이드 <뉴욕데일리미러>가 가장 먼저 보도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의혹이 있었다. 특히 시간 관계가 불명확했다. 그녀가 8월 4일 늦은 밤에 죽은 것인지, 5일 새벽에 죽은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바탕으로 타임라인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8월 3일. 그녀는 주치의 중 하나인 하이먼 엥겔버그로부터 처방전을 받았다. 수면제로 쓰는 넴뷰탈 25알을 살 수 있는 처방전이었다. 그리고 8월 4일. 먼로의 주치의 랠프 그린슨은 브렌트우드에 있는 먼로의 집을 방문했다. 우울증 증세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고, 오후 5시에 그린슨은 그녀의 집을 나섰다. 오후 7시~7시 15분, 조 디마지오 주니어가 먼로에게 전화를 했다. 먼로의 전남편이자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강타자 조 디마지오의 아들이었다. 당시 해병대 복무 중이었던 디마지오 주니어는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이후 인터뷰에서 통화 당시 먼로의 목소리는 매우 밝았으며 약간 들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15분 후인 오후 7시 30분, 먼로에게 피터 로포드가 전화를 했다. 당대 인기 배우이자 엔터테이너이며 사교계 인사였던 로포드는 케네디 대통령의 매제였으며, 케네디에게 먼로를 소개시켜 준 인물. 그는 저녁 만찬에 오라며 먼로에게 전화를 했는데, 사실 먼로는 낮에 이미 갈 수 없다고 거절한 상황이었다. 로포드는 재차 전화를 했고, 이후 증언에서 당시 먼로의 말투가 불명확했으며 15분 정도 통화를 했는데 대화가 이어질수록 점점 알아듣기 힘들게 말했다고 했다. 먼로는 갑자기 “굿바이”라며 전화를 끊었고, 로포드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중이었다. 남아 있는 전화국 기록에 의하면 7시 30분에 로포드가 건 이 전화가 먼로의 8월 4일 마지막 통화였다.
8시에 피터 로포드는 먼로의 가정부인 유니스 머레이에게 전화를 걸어, 먼로의 상태가 어떠한지 체크를 했다. 유니스는 괜찮다고 했지만, 확신하지 못한 로포드는 그날 밤 계속 직접 먼로를 만나려고 노력했다. 로포드는 먼로의 변호사이자 자신의 친구인 미키 루딘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는데, 루딘은 로포드에게 되도록이면 먼로와의 접촉을 삼가라는 충고를 했다. 지나친 관심이 잘못하면 먼로의 정신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62년 마릴린 먼로의 사망 당시 모습(왼쪽)과 숨진 채 발견된 침실.
밤 10시가 되었을 때 가정부 머레이는 먼로의 방 앞을 지나갔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문을 열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머레이는 그냥 지나쳤다. 30분 후인 10시 30분, 먼로의 홍보 담당자였던 아서 제이콥스는 먼로의 변호사인 루딘에게 연락을 받는다. 현재 먼로가 약물 과용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여자친구와 머빈 르로이 감독 부부와 함께 콘서트를 즐기던 제이콥스는 자리를 빠져나갔다. 제이콥스의 연인이던 나탈리 트런디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자리를 뜬 후 제이콥스는 이틀 동안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는데,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이 먼로의 죽음에 대한 미디어 보도를 날조하는 데 있어 정부 관료들을 도왔다는 식의 암시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이콥스는 1973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시 상황에 대한 그 어떤 디테일도 말하지 않았다.
8월 4일에서 5일로 넘어가는 자정, 머레이는 다시 먼로의 방 앞을 지나갔고 여전히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발견한 후 노크를 했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한편 새벽 1시, 먼로의 변호사인 미키 루딘은,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피터 로포드에게 먼로의 죽음을 알렸다. 수면제 과용이 원인이라고 했다. 새벽 3시에 가정부 머레이는 주치의 랠프 그린슨에게 연락을 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 때문이었다. 주치의는 3시 40분에 도착했다. 방문이 잠겨 있어 발코니 창을 통해 들어갔다. 한 손에 전화 수화기를 잡고 있었고,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린슨은 또 한 명의 주치의인 하이먼 엥겔버그에게 연락했다. 경찰이 도착한 건 4시 30분. 그 전에 가정부는 침대 시트를 깨끗하게 갈았다. 수면제 과용이라고는 하지만 경찰은 방에서 물잔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중에 침대 밑에서 발견되었는데, 처음 방에 도착했을 땐 분명히 잔이 없었다고 한다. 5시 40분에 장의사 가이 호켓이 도착했다. 그리고 6시부터 가정부 머레이는 계속 말을 바꾸기 시작한다. 주치의와 장의사의 증언도 계속 바뀐다.
한편 검시관 토머스 노구치는 그녀의 위와 내장에서 그 어떤 캡슐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넴뷰탈에 의한 위장 탈색 현상도 없었다. 먼로는 입으로 약을 삼킨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혈중의 넴뷰탈 농도는 최소한 10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정도였다. 한편 먼로는 엎드린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산소 결핍으로 혈액이 검푸르게 변하는 ‘치아노제’ 증상이 없었다. 이것은 먼로의 죽음이 굉장히 빨리 진행되었다는 증거였다. 노구치는 독극물 전문가에게 먼로의 간, 신장, 위, 내장, 소변 등을 샅샅이 조사하라고 지시했지만 그는 자의적으로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고 하지 않았다. 수상한 구석이 많은 죽음이었지만, 철저한 조사 없이 증거물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