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여성호르몬 팔아요” 2천원짜리가 5만원으로…
‘에스트라디올데포 판매해요. 한 팩에 5개 들어있어요. 구매하실 분은 문자주세요.’
에스트라디올데포는 트랜스젠더들이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여성호르몬 주사다. 다른 호르몬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한번 맞으면 호르몬 효과가 보통 14~15일 정도 유지되는 강력한 효과로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던 김 씨는 판매자를 접촉하게 된다. 시중가보다 높은 가격이지만 김 씨에게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같은 시각 연락을 받은 판매자는 A 씨(37)였다. 이미 A 씨는 트랜스젠더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유명 ‘호르몬 장사꾼’이었다. 그만큼 A 씨는 호르몬제를 구하기 어려운 트랜스젠더들의 심정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A 씨는 특히 트랜스젠더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 등을 적극 활용했다. 사회적으로 신분 노출을 꺼리는 트랜스젠더들에게 인터넷은 갖가지 고민들이 모이는 중요한 소통창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씨 혼자 호르몬제를 판매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처방전을 구해야 약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조력자’가 필요했던 것. A 씨는 호르몬제 판매를 결심한 순간부터 조력자를 해줄 의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누님, 사업 하나 같이 하실래요?” A 씨가 찾아간 곳은 부산 시내에 위치한 S 산부인과였다. 산부인과 원장인 B 씨(여·49)는 A 씨의 말을 듣고 한동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A 씨는 이내 B 씨와 손을 잡았다. 그만큼 A 씨와 B 씨는 절친한 사이였다. 지난 2004년,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만난 두 사람은 지난 10년 동안 든든한 정을 쌓아왔다.
두 사람이 만나자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A 씨는 2011년 7월부터 B 씨에게 처방전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처방전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 누나 등 온 가족의 명의가 도용됐다. 여성호르몬제와 졸피뎀 성분의 향정신성의약품, 트랜스젠더들이 가슴을 키우는 데 사용하는 주사 등 처방전에는 갖가지 의약품이 적혔다. B 씨는 별다른 진찰 없이 처방전을 무분별하게 찍어내기 시작했다.
유명 ‘호르몬 장사꾼’ A 씨는 트랜스젠더들을 상대로 의약품을 불법 판매, 20배가 넘는 폭리를 취했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증거품.
문제는 이 과정에서 A 씨가 호르몬제 등 의약품 가격을 상상 이상으로 부풀렸다는 점이다. 알약 형태로 된 여성호르몬제의 경우 1통(30알)이 약국에서는 2300원가량에 불과하지만, A 씨가 판매한 금액은 ‘5만 원’으로 부풀려졌다. 트랜스젠더들이 자주 사용하는 주사제 에스트로디올데포는 앰풀 5개를 1만 원 정도에 구입해서 최고 29만 원에 판매하는 등 ‘20배’가 넘는 가격에 판매했다.
가격이 비쌌지만 호르몬제를 구하지 못한 트랜스젠더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A 씨와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지난 3년여 동안 A 씨는 호르몬제 판매로만 ‘1억 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A 씨에게 호르몬제를 구입한 트랜스젠더는 전국 곳곳에 있었으며 그 수는 400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경찰 관계자는 “두 달 전부터 첩보를 입수해 A 씨를 추적해왔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트랜스젠더들에게 대규모로 호르몬제를 판매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 적발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A 씨를 적발하면서 이를 조력한 산부인과 의사 B 씨도 역시 덜미가 잡혔다. 그런데 특이했던 점은 A 씨와 B 씨의 관계였다. 처방전을 대량으로 발급한 B 씨는 A 씨의 핵심 조력자이면서도, 1억 원의 수익을 벌어들인 A 씨에게 금전적인 대가를 한 푼도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두 사람 간 금전적인 거래가 하나도 없기에 처음에는 내연관계에 초점을 두고 조사를 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친하지만 그런 관계는 아니더라.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트랜스젠더들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A 씨를 도와줬다’고 진술했다. 그래도 엄연히 불법 처방전을 발급했기에 불구속으로 입건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결국 약사법 및 의료법,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한편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트랜스젠더들에게 호르몬제를 판매하는 일들은 암암리에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트랜스젠더는 “처방전을 받는 게 일반적이지만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여성호르몬제뿐만 아니라 남성호르몬제도 거래를 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은밀한 판매 과정에서 의약품 자체가 불법인 경우도 많아 각종 부작용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트랜스젠더들이 병원에서 호르몬제를 처방 받기가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자신들을 보는 눈초리가 신경 쓰이고, 그러다 보니 트랜스젠더들은 신분을 감추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런 불법 호르몬제 거래들을 추적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