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불광동 북한산 아래 자리 잡은 작은 찻집 ‘마운틴’. 그곳에는 너무 가난해서 행복한 데니와 젬마 부부가 살고 있다. 한 달 생활하는데 30만원이면 족하니, 하루에 커피 5잔만 팔아도 삶은 더없이 풍요롭다.
집 없는 자유 데니와 젬마는 처음부터 집 없이 살려고 작정한 부부다. 집이 없으면 살림살이들이 모조리 소용없어진다. 덩달아 돈 쓸 일도 없어진다. 돈 쓸 일이 없으니 돈 벌려고 아우성할 까닭도 없어진다. 늘어나는 건 시간이다. 아무 것도 안해도 되는 자유,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는 자유, 경쟁과 승부에서 해방되는 자유가 집을 포기하는 순간 절로 얻어진다.
하늘 가득 눈부신 새벽별 볕 곱고 바람 좋은 날 그들은 산에 간다. 손을 꼭 잡고 간다. 노래를 부르며 간다. 나란히 바위 위에 눕는다. 나무와 꽃과 풀과 새를 본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빛과 바람결을 온몸으로 느낀다. 밤이 되어도 부부는 하계로 내려오지 않는다. 맑은 밤이면 하늘 가득 눈부시게 별들이 깔리기 때문이다. 암만 거듭 봐도 좋기만 한 풍경, 눈만 빼꼼 내놓고 둘은 몸을 꼭 붙여 침낭 속에서 밤새도록 별을 본다. 새벽빛과 아침볕이 그들에게 맨 처음 닿는다.
살림살이는 큰 배낭 두 개에 꾸려 각자 어깨에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지닌다. 언제든 가볍게 툭툭 털고 떠날 수 있게! 아이도 포기했다. 아이에게 자신들의 방식을 강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음 깊이 고이는 평화 한 번은 데니 부부에게 누가 안 쓰는 전기장판을 갖다 줬다. 바닥이 따뜻해지자 늘 꼭 껴안고 자던 그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잠들게 됐다. 서로의 체온을 성가시게 만드는 전기장판, 데니와 젬마는 결국 그걸 돌려주기로 결정한다. 또 텔레비전을 하나 주워왔더니 그 앞에만 앉았느라 둘 사이의 얘기시간도, 바둑 두는 시간도 사라지는 것이었다. 연이은 광고 탓에 소유욕도 슬슬 생겨났다. 부부는 결국 그놈을 퇴출시켰다. 그러면서 배웠다. 소유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걸.
느긋하게 걷는 하루 데니와 젬마도 최소한의 먹을 건 벌어들여야 했다. 북한산 자락에 버려져있던 네 평짜리 공간에 ‘마운틴’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하루 여덟 잔이면 집세 내고 살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두 잔도 팔리고 열 잔도 팔렸다. 불광동 1번지의 마운틴은 재개발로 헐리고 데니와 젬마는 최근 길 건너 녹번동 1번지로 이사를 했다. 컨테이너 박스와 비닐. 친구들이 힘 모아 지어준 새 찻집은 적은 비용에 만족하는 삶의 제안으로 지금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 출품중이다. 공간이 일곱 평으로 늘어났다. “넓어져서 좋겠네요?” 내 말에 젬마는 “청소할 게 많아서 바빠졌어요”라고 한다. 이들에게 바쁜 건 악덕이다.
느긋하게 손잡고 오늘도 데니와 젬마는 노래하며 산에 간다. 동네사람이 다 그들을 보고 웃는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온라인 기사 ( 2024.07.06 1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