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 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 71
매듭이란 실을 짜고 꼬아 끈을 만든 후 이 끈을 엮어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조형예술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 각기 다른 형태의 매듭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일상생활에서 매듭을 많이 사용했고 그 형태가 아름다운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의복과 노리개부터 깃발과 악기, 가마 장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전통매듭은 민간과 궁중 곳곳에서 두루 쓰였다. 특히 고운 빛깔과 풍성한 술은 독창적인 우리 매듭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흔히 전통매듭을 ‘느림의 예술’이라 부른다. 사진은 끈목을 짜는 장인의 모습. 사진제공=동림매듭박물관
과연 우리 선조들은 언제부터 아름다운 매듭 문화를 일궈냈을까.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매듭문화가 일상에 뿌리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벽화를 보면 한복 저고리를 입은 한 인물의 허리에서 매듭을 발견할 수 있다. 신라시대 금동반가사유상의 허리띠 부근에서도 술을 단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뚜껑 윗부분에 있는 5인의 악사 형상에서도 매듭의 흔적이 엿보인다. 악기의 끝에 늘어진 장식이 바로 그것이다.
수백 년을 내려온 전통매듭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운 시기는 조선시대였다. 조선의 마지막 법전인 <대전회통> ‘공전’(工典)에는 궁중과 중앙조직에 소속되어 실을 뽑아 염색하고 끈을 만들어 매듭을 짓는 장인, 즉 ‘경공장’이 등장하는데 그 수효가 무려 90여 명에 달했다. 그만큼 공정이 복잡하고 수요도 많았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주로 명주실이 매듭의 재료로 사용되었으나 용도에 따라 모시실 닥나무실 털실 등이 활용되기도 했다.
흔히 전통매듭 하면 여성의 수공예를 떠올린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당시의 경공장은 모두 남성이었다. 굵은 끈은 힘이 많이 들어 여성이 다루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공장은 주로 대형 유소(깃발이나 가마에 매달던 매듭과 술)를 만들었고, 손재주를 지닌 궁중 상궁들이 소형 유소나 노리개, 주머니 끈 등을 만들어 섬세한 매듭문화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민간에서도 매듭이 널리 쓰였는데, 한양(서울)의 경우 수구문 일대가 실과 끈, 매듭의 산실로 유명했다. 방물장사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진 갓끈 주머니끈 염랑(허리에 차는 작은 주머니)끈 노리개술 등을 방방곡곡으로 팔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왼쪽부터 수향낭 벽걸이 매듭, 낙지발 대삼작. 사진제공=동림매듭박물관
전통매듭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연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기본 매듭의 종류가 38가지 정도 되는데, 그 대부분이 주변 사물이나 자연의 형상을 본떠 색을 배합하고 매듭을 지은 것들이다. 잠자리매듭 벌매듭 나비매듭 병아리매듭 딸기매듭 국화매듭 매화매듭 등이 그런 예. 운치와 맵시를 살릴 때 주로 쓰인 잠자리매듭의 경우 저고리 옷깃이나 고름에 많이 달고 다녔다. 딸기매듭은 벽걸이 발걸이 등에, 매화매듭은 아기 옷이나 향낭 등에 널리 쓰였다. 흔히 매듭에 술을 늘어뜨려 작품을 완성하는데, 술 또한 쓰임새에 따라 딸기술 봉술 방울술 등 다양한 형태를 띠었다.
흔히 전통매듭은 ‘느림의 예술’이라 불리기도 한다. 현대는 서울과 부산을 2시간 30여 분 만에 이어주는 초고속의 시대다. 하지만 매듭을 만드는 일은 마치 달팽이가 나무에 오르듯 천천히 조금씩 느린 걸음을 걷는 것과도 같다. 실을 뽑아 염색해 말리고, 이 실을 끈틀에 앉힌 뒤 엮어서 끈목(여러 올의 실로 짠 끈)을 만드는 일, 그리고 이 끈목을 엮고 조이고 맺어 매듭을 짓는 과정 자체가 지난한 작업이다. 익숙한 장인이라도 작품 구상을 마친 뒤 작은 노리개 매듭을 하나 만드는 데 2~3주가 걸린다고 한다. 4미터 길이의 매듭 술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반년 동안 땀을 쏟는 경우도 있다.
우리 선조들은 다양한 기본 매듭을 바탕으로 자연과 사물을 아름답게 접목시켜 독창적인 매듭문화의 전통을 만들고 이어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우리 문화가 많이 훼손되고, 이후 서양 문물이 물밀 듯 밀려오면서 실생활에서 매듭의 쓰임새가 많이 줄어들었다. 자칫 명맥이 끊길 뻔했던 전통매듭은 다행히 중요무형문화재인 ‘매듭장’ 등 몇몇 장인들의 인고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에도 계승되고 있다. 전통매듭을 세월을 뛰어넘는 훌륭한 생활예술품으로 되살리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혹시 ‘우연히’라도 우리 매듭과 마주치게 된다면 한번쯤은 걸음을 멈추기를, 그리고 매듭에 담긴 장구한 세월과 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의 전통장신구>/ 네이버 지식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