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절·광명성절 언급 줄고 헌법 통일 조항 삭제…‘김일성 판박이→홀로서기’ 내부 리스크 부각 관측
북한에서 가장 큰 기념일 중 하나는 ‘태양절’이다.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이다. 해마다 태양절이 다가오면 북한은 군사 퍼레이드를 통해 무력시위를 하기도 했다. 후대 지도자들은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을 방문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그런데 2024년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북한에서 태양절 무게가 상당히 가벼워졌다는 후문이다. 중국 소식통들에 따르면 현지 북한 관광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가 북한 측으로부터 ‘태양절 명칭 단계적 폐기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 북한 내부에서 전해지던 태양절이라는 기념일 무게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통일부도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4월 15일 관영매체 노동신문 제호 아래 ‘경축’ 배너에서 태양절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다. 4·15라는 명칭이 태양절을 대체했다.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을 기념하던 ‘광명성절’도 2월 이후 직접적으로 거론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선대’ 우상화 흔적을 지우는 형국이다. 이를 두고 김정은이 홀로서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근 북한이 김정은과 관련된 음악을 만들어 뮤직비디오를 상영한다든지, ‘김정은 장군님’이라는 칭호를 내세운다든지 하는 행보들은 전부 김정은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라면서 “김정은이 사실상 유일 영도 체제로 돌입하려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했다.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은의 홀로서기를 둘러싼 의구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이 북한 정권을 잡고 있는 정통성 자체가 ‘선대 수령’으로부터 나오는 까닭이다. 한 탈북민은 “김정은이 선대 지우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선대의 후손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김정은이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징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는 김일성 손자, 김정일 아들이 아니라 김정은 자체를 부각시키며 선대에 자신이 뒤처지지 않는다는 부분을 인민들에게 강조하려는 행보”라면서 “엘리트층에서 이런 홀로서기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 홀로서기가 최근 ‘통일 필요성’을 부정하는 행보와도 연관이 깊을 것으로 봤다. 북한은 ‘삼천리’라는 단어가 포함된 국가를 개사했고, 헌법에 명시된 통일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조치까지 했다. 여기다 김정은과 김여정 등 핵심 인물이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며 서로 다른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는 거리두기 행보를 보여왔다.
다만 김일성 사상과 김정일 사상 등 북한 지도체계 주요 뿌리가 되는 통치 이념에 조국통일과 민족해방 등 북한이 지향하는 통일 체계가 명시돼 있어 이마저도 손을 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1월 일요신문과 만난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김정은과 김여정 등 이른바 ‘백두혈통’ 핵심들이 연이어 통일 필요성을 부정했던 행보와 관련해 “일종의 위장 전술일 수 있다”면서 의구심을 숨기지 않았었다.
당시 이 관계자는 “통일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강조해 온 조국해방 통일전선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주체사상이나 김일성 정신, 김정일 정신 등 북한에서 통치자를 우상화하는 과정엔 반드시 통일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모조리 삭제하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본격적으로 선대 지우기에 나서며 ‘통일 불가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태양절과 광명성절에 대한 언급이 줄면 선대 우상화 및 선대가 강조한 사상 등을 전반적으로 희석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일요신문과 다시 통화한 앞서의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통일 필요성을 부정할 때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었는데, 결국엔 김정은이 북한 내 장악력을 가져오기 위해 통일과 선대라는 부분을 모두 벗어던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그동안 화전양면 전술로 대표되는 북한의 통일전선이 강대강 대치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른 대북 소식통은 “최근 공작원들에 대한 지원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들었다”면서 “김정은이 남북 통일 노선에서 독자 노선을 구축하며 새 판을 짜려는 행보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통일 필요성을 부정하면서 기존 통일 전략은 버리되 새로운 생존전략을 구축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결국엔 북한 내부 장악력을 확실하게 쥐고 외부에 적을 만들어야 김정은 입지가 단단해진다”고 했다.
김정은은 등장 초기부터 ‘김일성 판박이’ 이미지를 내세우며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했다. ‘선대 지우기’에 나서는 김정은의 행보 자체가 북한 주민들에겐 모순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내부에선 이런 상황이 향후 ‘김정은 리스크’로 발현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김정은은 최근 현장 지도 등 외부 일정 행보에 나설 때 근접 경호 인력 10여 명을 대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정보 당국 관계자는 “신변보호가 강화됐다는 점은 신변에 위협을 느낄 만한 요소가 늘었다는 부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면서 “그만큼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이 자각하고 있는 불안요소가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고 했다.
은퇴 앞둔 ‘가황’ 나훈아, 김정은 향해 “돼지” 직격
최근 은퇴를 선언한 가수 나훈아가 은퇴를 앞두고 열린 콘서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격하는 발언을 해 화제다. 나훈아는 인천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콘서트 도중 대표곡 중 하나인 ‘공’을 부르고 난 뒤 “이 얘기는 꼭 하고 그만둬야겠다”면서 김정은을 직격했다.
나훈아는 “북쪽 김정은이라는 돼지는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 살이 쪘다”면서 “저거(북한)는 나라가 아니라 이상한 집단이다. 다 혼자 결정한다”고 했다. 나훈아는 “실컷 얘기하고 조약을 맺어도 혼자 싫다 하면 끝”이라면서 “(북한이 우리나라를) 치고 싶어도 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힘이 있어야 평화도 있다”고 말했다.
나훈아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방북 공연에 불참한 바 있다. 당시 북한 측에서도 ‘나훈아는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물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탈북 박사’ 박충권 국민의힘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인은 4월 30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대한민국엔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소신 발언이나 현상에 관련한 얘기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틀린 얘기가 아니”라고 했다.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북쪽은 이상한 집단이지 나라가 아니’라는 발언에 뭐 틀린 말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에 김정은을 지지하는 댓글이 무려 900개나 달렸다”면서 “종북주의자들이 작심하고 지령 따라 댓글을 단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