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한국측은 강제 징용자의 피해보상금까지 포함해서 7억불을 요구했다. 이에 일본측은 “청구권 명목으로 나가는 돈은 그 출처가 분명해야 하는 만큼 대장성에서 확인한 것은 1천5백만불밖에 안된다는 입장이다. 한국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므로 외무성에서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붙여서 7천만불로 하기로 했다”고 제시했다. 한국측 요구와 무려 10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때부터 줄다리기는 시작됐다. 2차 협상에서 한국은 6억불을 제시했고, 이에 일본은 1억5천만불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다소 격앙된 감정 대립으로 가기도 했다. 회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 당초 양측 제시액에서 일본은 8천만불을 올렸지만, 한국은 1억불을 내렸다. 일본이 좀더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는가.
일: 그것(7억불)은 한국측이 이(승만) 박사 때부터 (터무니없는) 방대한 액수를 내왔던 것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한일간에는 역사상 특이한 관계가 있지 않느냐.
일: 새로 독립한 인도 버마 등과 어디가 다른가. 인도 버마는 독립할 때 청구권을 받아낸 일이 없다.
한: 인도가 독립한 경위와 한국이 독립한 경위가 같은가.
일: 한국측이 제시한 액수가 밖으로 나가면 내 생각으로는 여당(자민당) 내에서도 회담을 당장 중지하라는 말이 나올 것 같다.
이후 계속 재개된 회담 역시 외교 협상으로 볼 수 없을 만큼 가히 장바닥 흥정 수준이다. 우리 민족의 뼈아픈 과거와 자존심이 마치 물건 근수를 달듯 저울질당하는 것 같아 서글프기까지 한 대목이기도 하다.
한: 우리가 이번에 6억에서 다시 5억으로 내렸으니 일본은 2억으로 올려라. 마지노선이다.
일: 2천 올려서 1억7천으로 할 수밖에 없다.
한: 그러면 우리는 5억5천으로 내릴 수밖에 없다.
일: 한국이 5억5천이라면 우리는 1억5천5백이다.
한: 일본이 1억5천5백이면 우리는 5억9천으로 다시 올릴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뼈있는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일본측 대표가 “그 정도로 하자. 한국측이 피곤해지면 다른 제의를 해 오기 바란다”고 하자, 이에 한국측은 “한국에서는 지금 군인들이 일하고 있으니 체력이 강해 일본측이 먼저 고단해질 것”이라고 맞받아치는 모습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