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9월1일 전두환 대통령이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80년 보도사진연감] | ||
<일요신문>은 정 전 의장측의 양해를 얻어 검증위원들과 함께 관련 자료를 면밀히 검토했다. 그 중 당시 약 2백50명에 이르는 정부 주요 고위 관계자 및 군 관계자들의 구체적 증언이 담긴 진술서 내용 가운데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몇 가지 비화들을 공개한다.
79년 말, 신군부에 의해 불거진 12·12 쿠데타의 성공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실질적 권력과 함께 상당한 자신감을 안겨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이미 그의 머릿속에 대권이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보안사 정보과장이었던 한용원씨는 “80년 초에 전 사령관과 함께 윤보선 전 대통령 집을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때 전 사령관이 ‘윤보선씨가 대통령 시켜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대통령은 하늘의 뜻인데…’라고 얼버무린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전 사령관이 집권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신현확씨 또한 “3월경 전 사령관이 내게 ‘최규하 대통령이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장시간 동안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사하였다’고 말했다”며 현직 대통령까지 조사할 정도의 무소불위의 위세를 떨치던 전씨에 대해 ‘공포심’을 표현했다. 그는 “이후 전 사령관이 이 같은 사실을 빌미로 최 대통령을 협박하여 하야시켰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검찰에 밝혔다.
보안사령관이던 전씨가 80년 4월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하고 5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으며 실질적인 정권 실세로 부각되는 과정 역시 사전 시나리오대로 치밀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증언들이 잇따라 나왔다.
한씨는 진술서에서 “80년 4월14일 전 사령관이 중정부장 서리를 겸직하는 것으로 임명되었는데, 사실은 그 전인 4월 초순경 이미 나에게 자신의 중정부장 취임 기자회견을 대비하기 위한 예상 질의 답변사항을 정리하여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신 전 총리는 “전 사령관이 내게 자신이 중정부장을 맡고 싶다는 뜻을 전하길래 ‘국가의 주요 정보를 한 사람이 독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는 또한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주지시켰다. 그럼에도 차후 전 사령관이 직접 최 대통령에게 자신을 중정부장으로 임명토록 한 것 같다”고 증언했다.
국보위 설치 과정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도 상당한 역할을 한 흔적이 드러난다.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박동진씨는 “80년 5월22일경 박충훈 총리서리가 내게 ‘저 사람들이 자꾸 국보위라는 기구를 설치하자고 한다’고 말하길래 내가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로부터 2~3일 후에 주영복 국방장관이 ‘전 사령관이 만나자고 한다’고 하길래 보안사령관실로 갔더니 노태우 수경사령관이 나타나 ‘지금 상황으로 보아 일을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하는데 국보위 설치가 꼭 필요하다’며 강조했다. 내가 다시 한번 외무장관 입장에서는 반대한다고 했더니 노 사령관이 ‘이미 대통령 재가도 난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 재가까지 났다면 일개 장관이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지 않느냐. 그만 둡시다’라고 말하고 나온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 “그래도 당시 나는 장관인데 일개 소장이 나를 불러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무척 기분이 나빴고, 말하자면 협박일 것”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국보위 첫 회의석상에서도 노 사령관은 ‘○○ 육사동창생 회장’ 자격으로 사실상 신군부를 대표해서 연설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당시 각료들의 진술서 등 관련 기록에 따르면 당초 대통령 자문기구의 성격으로 설립됐던 국보위가 사실상 행정내각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하는 전횡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동자부 장관을 지낸 유양수씨는 전씨가 국보위 상임위원장 시절부터 이미 유공의 민영화를 추진했다는 보다 구체적인 증언을 하기도 했다.
유씨는 “80년 6월경 전씨가 나를 보안사로 불러 유공을 민영화하라고 지시하기에 나는 우리나라 경제 실정으로 보아 유공을 민영화한다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는 원칙론적 입장을 표명했다”면서 “그후 7월경 국보위 상공위원장 금진호 명의로 유공 민영화를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가 공문으로 내려왔고, 우리 부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의 보고를 하였더니 금씨가 최동규 차관 등 3명을 국보위로 불러서 매우 심한 질책을 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전씨가 유공의 민영화를 서둘렀던 배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하는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 80년 6월5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 전두환 상임위원장(왼쪽)과 박충훈 국무총리서리가 현판을 달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80년 보도사진연감] | ||
유씨는 ‘공무원 숙청’에 대해서도 “당시 국보위에서 숙청대상자 명단까지 미리 지정하여 통보하여 왔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신군부의 위세에 역부족이었고 당시 김용휴 총무처 장관도 국보위에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잘라 말하더라”고 진술했다.
전씨가 일개 보안사령관에서 대통령으로 오르기까지 당시 사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진술도 나왔다. 유씨는 “80년 7월 말경 기독교 실업인 주최로 신라호텔 2층 다이네스티홀에서 ‘국가지도자를 위한 조찬회’가 개최되었는데 엄연히 최규하 대통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총수, 각계각층 지도자 4백~5백명이 모여서 당시 전 장군을 국가지도자로 초청하여 조찬회를 개최한 바도 있다”면서 “당시에 장관들에게도 전부 초청장이 왔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당시 국보위 법제분과위원이었던 우병규씨는 “당시 위원들 중에는 국민 여론을 감안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는 분위기도 강했고, 또 대통령 임기는 5년에서 7년까지 의견이 분분했으나 다수가 6년제여서 법제분과위원에서 만든 헌법요강에는 6년으로 하였다”면서 “그런데 최 대통령 하야 직전인 80년 8월 중순경 전 사령관이 나와 박철언 법사분과위원을 불러서 ‘대통령 직선제를 할 경우 국론이 분열되고 비용도 많이 드니까 간선제가 좋을 것 같다. 통일주체국민회의와 다른 방식으로 연구해 보라. 프랑스는 7년 중임제로 하니까 우리는 7년으로 하되 단임제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지침을 주었고, 결국 전 사령관의 뜻대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그는 “전 사령관의 지시 내용을 허화평 당시 비서실장과 권 정보처장에게 이야기하였더니 허 실장은 ‘(전 사령관이)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임기에 관심이 있다’는 취지로 심한 불평을 하였고, 권 처장 역시 다소 불쾌해 했다”고 비화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김종환 전 내무장관은 “80년 8월의 11대 대통령 선거 며칠 전 당시 내무부의 김아무개 실장이 내게 ‘보안사측에서 사람이 왔는데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득표율이 최소한 85%는 되어야 하니 장관님께서 지방장관회의 때 이러한 사실을 강조해달라고 한다’고 하기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 식으로 해서 100%가 나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짜증을 낸 적이 있는데 실제 100%에 가까운 득표율이 나온 것으로 봐서 보안사에서 미리 공작을 한 것이 틀림없다”라고 진술했다.
이 같은 증언을 뒷받침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관계자들의 진술도 나왔다. 서울 서부 지역의 간사 대의원이었던 한 관계자는 “80년 8월 중순경 506보안부대장(서울지역 보안부대장)인 이상연 대령이 서울지역 각 지역회 회장 및 간사들을 퍼시픽호텔로 초청하여 나가보니 당시 서울의 대의원 부회장으로 활동하던 아무개씨가 ‘전두환 장군을 대통령후보로 추천한다는 추천서를 각 지역회 대의원들로부터 받아달라’고 하였다”면서 “이에 우리 간사들은 당시 전 장군이 이미 실권자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옆에는 서울지역 보안부대장 정보과장 등 군인들이 동석하였기 때문에 별 이의 없이 승낙한 후, 각 간사들이 주도하여 각 지역회 대의원들을 상대로 전 장군에 대한 추천서를 작성토록 하고 이를 취합하여 제출하였다”라고 밝혔다.
김종환 전 장관은 최 대통령의 하야에 대해서 “대통령 하야 발표 수일 전인 80년 8월 초순경 당시 3군사령관이었던 유학성 장군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롯데호텔에서 만났는데 그가 ‘최 대통령은 김정렬씨가 맡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곧 하야할 것이니 대통령선거를 위해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소집해달라. 전 장군을 대통령으로 추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최 대통령의 하야가 사실상 신군부의 ‘시나리오’에 의해 이뤄진 또 하나의 쿠데타라는 사실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