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아역 보호 “아기 걸음마 수준”
2000년생인 김새론의 올해 나이는 14세. 아직 15세 관람가 영화조차 볼 수 없는 나이임에도 그의 출연작에는 줄줄이 ‘19금’ 딱지가 붙었다. 개봉을 앞두고 영화 제작발표회와 시사회, 인터뷰 등에 나서지만 정작 김새론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볼 수 없다.
그는 <도희야>의 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고생해서 찍으면 완성작이 나왔을 때 설레는 기분이 있는데 볼 수 없어서 아쉽다. 때문에 성인이 돼서 봐야 할 영화가 밀려 있는 것 같다”고 재치 있는 말했지만 여전히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은 존재한다.
배우 여진구도 상황이 비슷하다. 그 동안 <예의없는 것들>과 <쌍화점> 등 19금 영화에 출연했던 여진구는 지난해에는 <화이>의 주인공을 맡아 잔인한 킬러의 손에 의해 살수로 길러지는 아이를 연기했다. 여진구 역시 자신의 주연작인 <화이>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관람 등급의 의거해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지 못하게 한다고 마무리될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출연을 결정하기 전 대본을 읽고 자신이 어떤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지 잘 알고 있다. ‘19금’에 해당되는 장면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상처를 입기도 한다.
2011년 개봉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영화 <도가니>는 흥행에 성공하고 사회적 의미를 담았다는 것과는 별개로 이 영화에 출연한 아역 배우들이 아동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질타를 받았다.
<도가니>에는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다수 포함됐다. 제작사는 개봉 당시 이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며 아역 배우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도가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였다. 배우로서 이름이 알려져야 하는 아역 배우들의 이름을 굳이 감추는 것은 허울만 좋을 뿐 실효성이 없었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서 <도가니>를 검색하면 출연진의 이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성폭행 장면을 연기한 어린 배우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동보호법 17조 중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와 ‘공중의 오락 또는 흥행을 목적으로 아동의 건강 또는 안전에 유해한 곡예를 시키는 행위’를 위반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도가니> 이후 아역 배우를 대하는 자세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개봉돼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까지 수상한 <소원>은 아동 성폭행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이준익 감독은 연기 경험이 부족한 고작 8세 여자아이에게 성폭행당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여기에 감정을 실어 표현하라는 것을 어찌 디렉팅할지 고민이 많았다.
아동성폭행을 다룬 <도가니>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아역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가 없었다는 질타를 받았다. 왼쪽은 <공정사회> <소원> <도희야>에 출연한 아역배우들.
때문에 제작진은 촬영이 시작되기 전 이레가 아동정신과 의사들과 수차례 만나 상담받도록 조치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소원이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해바라기아동센터의 상담의가 실제로 소원이를 연기한 배우 이레의 곁을 지켰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와 함께 아역배우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배역 후유증 예방 및 치유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이레뿐만 아니라 <소원>에 출연한 모든 아역 배우들의 사후 관리까지 책임졌다.
역시 지난해 개봉된 영화 <공정사회> 역시 아동 성폭행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아역 이재희는 연기 경험이 없는 신인이었다. 때문에 이지승 감독은 이재희의 부모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를 보호하려 노력했다.
“나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고 표정을 지어봐”라고 막연한 요청만 했을 뿐 정확한 상황 설명은 하지 않았다. 또한 극중 범인으로 출연한 배우와는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배려했다. 어쩔 수 없이 두 배우가 같은 공간에 있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이재희에게 안대를 씌웠다. 아직 사리분별이 밝지 않은 아역배우가 촬영 중 간접적으로나마 상처받을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국내의 아역 보호 실태는 걸음마 수준이다. 할리우드에는 18세 미만인 아역 배우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있다. 그 시초가 된 건 일명 ‘쿠건법’이다. 찰리 채플린과 함께 촬영한 영화 <키드>로 유명해진 재키 쿠건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당시 법에 따라 모두 부모에게 귀속됐고 성인이 돼서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1939년 아역 배우들의 권익 보호 등에 관한 규정을 담은 ‘쿠건법’이 탄생했다.
할리우드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유아의 경우 하루 20분 이상 조명에 노출되면 안 된다. 성장 발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촬영시간은 6세가 되면 6시간, 7세가 되면 최대 8시간으로 늘어난다. 이 이상 촬영을 강행하면 아동 학대에 해당돼 처벌받는다.
지난 2010년 할리우드 영화 <워리어스 웨이>에 출연하며 생후 10개월 된 아기와 연기 호흡을 맞춘 배우 장동건은 촬영 전 2개월가량 전문 육아 교육을 받았다. 당시 장동건은 “아이 안는 법과 기저귀 가는 법 등을 배웠다”고 밝혔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제작비가 부족하고 주연급 스타 위주로 돌아가는 충무로 제작 시스템 안에서 할리우드와 같은 아역 배우 보호 대책을 요구하긴 사실상 어렵다”며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아역 배우를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