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빈 검찰총장 내정자(왼쪽), 송광수 검찰총장 | ||
그러나 그동안 핵심 보직에 대해 파격적인 인사를 보여주었던 노 대통령의 스타일에 비쳐 볼 때 너무 무난한 인사여서 의외로 비쳐진다. 특히 현 송광수 총장의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와 탄핵반대 촛불집회, 공수처 설립 등 각종 사안에서 정부와 사사건건 부딪쳐 와 “검찰을 손좀 봐야한다”는 얘기들이 여권에서 공공연히 분출됐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인사는 더욱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인선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종빈호의 출범은 필연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집권 후반기에는 검찰과 다투고 앉아있을 여유가 없다는 청와대의 의중이 엿보이는 것이다. 청와대가 검찰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신임 총장 인선에 대한 전망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검찰과 청와대 주변에서 끊임없이 나돌았다. 현정부와 검찰의 불편한 관계를 감안하면 노대통령이 인사권을 통해 이번에 검찰을 확실히 다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그러다 보니 검찰 내 현 송 총장(사시 13회)의 바로 후배인 사시 15회(사시 14회는 현재 모두 옷을 벗은 상태)를 차기 총장으로 낙점하는 평범한 인선은 배제됐다는 전망도 많았다. ‘기수 파괴’를 통해 노대통령의 동기인 사시 17회를 새 검찰 총수로 임명, 검찰을 대대적으로 물갈이 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난 연말에는 노 대통령이 검찰 외부 인사를 총장으로 내세운다는 분석까지 제기돼 검찰에 한때 심각한 위기감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인선의 뚜껑이 열리자 파격은커녕 지나치게 평범한 모양새가 오히려 놀랍기만 하다.
이번 인선을 설명하는 가장 우세한 분석은 집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에 외부 인사를 총장에 앉히거나 지나치게 기수를 파괴하면 검찰 내 반발이 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다시 검찰과 티격태격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집권 후반기 경제문제에 ‘올인’하려는 현정부의 정책 운용 계획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검찰에서 불만을 토로할 여지도 없는 데다 부드러운 성품을 갖고 있는 사시 15회의 김종빈 고검장은 적당한 인물이 될 수 있다.
청와대와 검찰의 원만한 관계 복원은 검찰도 절실히 희망하는 것이다. 검찰은 새정부 들어 청와대와 유착한 정치검찰이라는 과거의 오명에서는 벗어났다. 이른바 검찰권 독립의 새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치러야할 대가도 컸다. 검찰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청와대와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끊어지다보니 각종 사안에서 오해가 빚어지고 이는 검찰이 오로지 개혁 대상으로만 인식돼 온갖 공격을 받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도 “검찰도 대통령이 수반인 행정부의 한 부처인데 정부의 각종 정책에서 소외되기만 해서는 나라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 없다”며 “유착이 아닌 협조 관계는 복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이정수 차장 | ||
이 같은 제반 사정 하에서 검찰 내 서열 대로 사시 15회가 신임 총장으로 내정됐지만 왜 하필 김종빈 고검장이냐에는 또다른 이유가 붙는다. 현재 검찰에 남아 있는 사시 15회는 김 고검장을 비롯, 이번에 김 고검장과 함께 후보에 오른 정진규 법무연수원장, 이정수 대검 차장 등 6명이나 된다.
사실 지난해 말까지는 김 고검장보다 이정수 차장이 차기 총장으로 더 유력하게 점쳐졌다. 김 고검장은 현 김승규 법무장관과 같은 호남출신이어서 15회가 된다면 충청 출신의 이 차장이 적당하다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인선이 공개되기 직전인 지난 1월 말 이후 갑자기 돌변해 김 고검장에게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이정수 차장 낙마의 가장 큰 이유로는 그의 보스기질 때문이라는 애기들이 검찰 안팎에서 나돈다. 카리스마가 있다보니 총장이 된다면 송광수 총장에 이어 또 다시 여권에 대들 가능성이 높다는 애기다. 실제 검찰내 후배들의 신망도 김 고검장보다는 이 차장이 더 높게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중견 검찰 간부는 “김 고검장과 이 차장 모두 인품이나 능력 면에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차기 총장으로는 이 차장을 선호하는 여론이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정수 차장이 총장후보 2명에도 끼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이 차장이 현정부 실세들로부터 심하게 찍힌 것이 아니냐는 얘기들이 무성했다. 심지어 이 차장이 지난해 모 회의석상에서 현정부의 ‘386’ 인사들을 비판하는 언급을 했고 이 얘기가 청와대에까지 들어갔다는 뒷말까지 나왔다. 이런 점을 볼 때 청와대로서는 이 차장보다는 김 고검장이 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김 고검장은 오히려 호남 출신(전남 여천 생, 여수고 졸)이라는 덕을 봤다는 분석도 유력하다. 궁극적으로 민주당과의 합당을 염두에 두고 있는 청와대와 여권으로서는 김 고검장이 호남 민심을 얻는 일석이조의 카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교육부총리 자리에 민주당 김효석 의원을 타진했던 것과 연결될 수 있다.
결국 김 고검장은 검찰 내 불만도 잠재우며 조용하게 검찰을 이끌고 정치적으로 부수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인사였다는 애기다.
그러나 이 같은 청와대의 의중에 김종빈 신임 총장이 과연 얼마나 부응해 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실제 호남 출신의 김 총장 내정자는 지난 DJ정부에서 대검 중수부장으로 파격적으로 발탁됐지만 당시 정권으로부터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중수부장 시절 여권의 강력한 태클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를 구속시켰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검찰과 김 고검장에 대한 러브콜이 ‘짝사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김 내정자의 정식 임명 이후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 중수부장 등 후속 인사에 더욱 신경을 써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