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밥그릇 움켜쥐고 서로 큰 목소리
▲ 대한변호사협회가 자리하고 있는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 ||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는 이달부터 구체적인 로스쿨 도입안을 확정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공’들이 저마다의 방향으로 노를 젓고 있어 자칫 로스쿨이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로스쿨 설립이 최종 결정될 내년 말은 2007년 대선가도의 출발시점이다. 자칫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면서 혼란이 더욱 가중될 가능성도 높다.
로스쿨 도입안은 지난해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에서 이미 어느 정도 윤곽이 결정된 상태다. 3년 과정의 대학원으로 총 정원은 현 사법시험 합격자 수와 비슷한 1천2백명 수준으로 한다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전임교수 20인 이상’ 등 구체적인 인가 기준까지 확정된 상태다.
그러나 법조계와 학계 등은 사개위 합의 사항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자기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대학은 물론 지역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로스쿨 설립은 정치적 고려가 따를 수밖에 없고 결국 ‘목소리’ 큰 쪽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 같은 중구난방식 주장의 스타트는 보수적인 집행부가 새로 구성된 대한변협(변협)이 끊었다. 대한변협은 지난 2월 천기흥 신임 회장 선출을 신호로 ‘로스쿨 도입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들이 대량생산되는 것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밥그릇 줄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개위는 지난해 변협의 반발을 감안해 대학과 시민단체의 집요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의 정원을 현 사시 합격자(1천명) 수준으로 동결한 바 있다. 사개위 안대로 로스쿨이 도입된다 해도 변호사 배출 숫자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애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협이 로스쿨 반대에 목청을 높이는 이유는 정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1차 목표는 로스쿨 도입 저지지만 이것이 무산되면 최소한 정원이라도 사시 합격자 수준으로 묶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변협은 로스쿨 대책 특별위원회까지 발족하고 사개추위 논의 과정은 물론 이후 국회 입법과정에도 압력을 가하겠다는 방침이다.
로스쿨 도입을 찬성했던 대학들은 명문대와 비명문대, 지방 국립대 등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선 명문대학들은 로스쿨 도입에 적극 찬성하면서 정원을 더 늘리자는 입장이다. 이들 대학의 법학교수들은 지난달 15일 ‘법학교육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합’을 결성하고 “로스쿨 정원을 소수로 한정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사개추위와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들은 로스쿨이 설립될 가능성이 높은 서울·고려·연세대 등과 정원이 늘어나면 설립 가능성이 생기는 중위권 사립대들이다.
반면 로스쿨이 도입돼도 설립될 가능성이 적은 지방대와 소규모 사립대들은 로스쿨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경찰대, 단국대, 부산외국어대 등 전국 78개 법대교수들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달 22일 ‘법학교육 정상화 추진 교수협의회’라는 조직을 출범시켰다. 이들은 “현재 논의중인 미국식 로스쿨이 법학교육의 파행을 이끌고 국가경쟁력을 저해한다”는 논리로 로스쿨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역시 ‘밥그릇’ 문제가 깔려 있다. 로스쿨 제도가 시행된다 해도 전국에 10여 개 대학밖에는 설립될 수 없고 로스쿨이 없는 대학의 법학과가 위축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주요 지방 국립대는 로스쿨이 서울 명문대로 몰리는 것을 저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북대, 전남대 등 9개 지방 국립대 총장협의회는 최근 “로스쿨이 국가 균형발전과 국민통합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며 ‘1도(道) 1개 법학대학원 설치’를 요구했다. 1도 1개 로스쿨이라면 지방에서는 국립대가 가장 유력하기 때문이다.
법조계와 학계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검찰도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로스쿨 도입을 주창해온 참여연대는 사개위가 정한 정원 1천2백명이 너무 적다며 최소 2∼3배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는 특히 로스쿨 도입을 반대하는 변협이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며 맹비난하고 있다.
검찰은 정부 조직이라는 특성상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로스쿨 도입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이다. 개개인이 국가기관인 ‘검사’를 민간 대학에서 키우게 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민간 로스쿨은 우리보다 먼저 도입한 일본에서 이미 부작용이 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굳이 로스쿨을 도입하려면 국립로스쿨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민간 로스쿨이 막대한 교육비용이 들어 저소득층의 접근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국립로스쿨 도입안을 주장하는 논리 중 하나다.
그러나 국립로스쿨 안은 민간 변호사를 나라 돈으로 양성한다는 모순이 있어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검찰은 현재 사개추위에 상당한 인력이 참여하고 있어 로스쿨 논의 과정에 국립로스쿨 안을 새롭게 제시해 밀어붙일지 주목되고 있다.
이처럼 로스쿨 도입을 놓고 다양한 주장들이 분출됨에 따라 결국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법조계에서는 유력하다. 특히 지방분권을 어느 정권보다 강조하고 있는 참여정부로서는 로스쿨을 지방에 골고루 나눠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사개위에서 결정된 정원 1천2백명을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로스쿨은 10개 정도밖에 설립될 수 없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영남·호남·충청·중부권 등 지방에 분산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서울대와 고대, 연대를 제외한 서울의 중견 사립대들에게 돌아갈 몫이 적어져 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또 지방이라 해도 로스쿨을 어느 대학에 설치하는가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실제 영남지역만 봐도 국립대인 부산대와 경북대가 쌍벽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사립대 중 영남대도 최근 로스쿨을 전제로 법대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로스쿨에서 탈락하는 대학과 그 대학이 위치한 지역은 강력히 반발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로스쿨은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선을 앞둔 정부와 여권으로서는 로스쿨의 정원을 대폭 늘려 서울과 지방에 불만이 없게 나눠주거나 아예 도입 결정을 2007년 대선 이후로 미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로스쿨이 산으로 갈 가능성이 더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