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투항이냐 아들 지키기냐
김준기 동부 회장은 아들 지분 담보제공 문제로 채권단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일요신문 DB
포스코의 인수 포기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산업은행이다. 동부의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산업은행은 일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포스코에 동부패키지 인수를 제안했다. 특히 포스코가 재무구조 악화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무리하게 떠안기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산업은행 측은 최근까지도 “(포스코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포스코의 동부패키지 인수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만큼 파격적·매력적인 조건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믿었던 포스코가 역시 ‘재무적 부담’을 이유로 인수 제안을 거부했다.
당초 계획이 틀어지자 산업은행은 곧바로 동부 측에 동부제철의 채권단 자율협약을 제안했다. 동부 측은 채권단 요구대로 자율협약을 신청할 예정이다. 자율협약을 신청한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채권단이 100% 동의해야 가능하다. 물론 산업은행이 채권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은행, 수출입은행, 농협은행 등도 채권단에 포함돼 있다. 이들에게도 전부 동의를 얻어야 한다. 7월 첫째 주가 지나야 채권단 동의 여부가 결정 날 전망이다.
자율협약 신청을 받아들이는 데 ‘조건’도 달았다. 김준기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이 갖고 있는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제공할 것과 김 회장이 약속한 사재출연을 동부제철에 하라는 것. 만약 둘 중 하나라도 거부한다면 자율협약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일부에서 자율협약이 아닌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다. 하지만 동부에서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면 회사채 피해가 상당할 것이 빤하기 때문에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자칫 동양그룹 사태가 재연될지 모른다.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
여기에는 산업은행과 동부가 각자 생각하는 바가 따로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동부제철을 매각하든, 자율협약으로 가든,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며 “채권단은 압박 카드로, 동부는 금융 계열사만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동부제철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은 동부건설·동부메탈·동부하이텍 등의 법정관리 혹은 워크아웃을 점치고 있다. 또 동부그룹의 비금융 계열사의 지주회사 격인 동부CNI에 대해서도 동부가 채권단에 ‘처분’을 맡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동부제철의 경우 채권단 자율협약이 받아들여진다면 오는 5일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700억 원의 상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동부건설·동부메탈 등의 회사채 만기도래를 해결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부CNI의 경우 7월 5일 200억 원, 12일 300억 원을 잇달아 상환해야 하는 터여서 동부로서는 채권단의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이 대목에서 불거지는 사안이 앞서 언급한 김준기 회장 장남 김남호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 담보 문제다. 채권단은 그룹을 살리고 싶으면 김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잡힐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김 회장 쪽은 ‘절대불가’로 맞서고 있다.
동부화재는 동부증권·동부생명·동부자산운용·동부저축은행 등 동부그룹의 금융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비금융 계열사에 동부CNI가 있듯 금융 계열사에는 동부화재가 금융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동부화재의 최대주주가 바로 13.29%를 보유하고 있는 김 부장이다. 김준기 회장 6.93%, 김 회장의 장녀 주원 씨 4.07%,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을 합해 김 회장 일가가 동부화재를 통해 금융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
만일 김 부장의 지분을 담보로 제공해 잘못될 경우 김 회장 일가는 금융 계열사마저 잃을 수 있다. 채권단은 김 회장이 금융 계열사들을 지키기 위해 비금융 계열사들에 대한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고 생각할 만하다.
동부가 비금융 계열사를 포기할 것이라는 얘기에 대해 동부 관계자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