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호텔 다 팔고 한국과 인연 끊기
▲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귀국이 가까워짐에 따라 김 전 회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씨(사진)에게 다시 눈이 쏠리고 있다. | ||
재미교포 사업가인 조씨는 지난 DJ정권 당시 대통령의 ‘감춰진 최측근’으로 세간에 알려졌던 인물. 그는 경기고 2년 선배인 김 전 회장과도 매우 ‘특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같은 ‘인적 배경’을 지닌 조씨가 대우 사태 당시 알짜 계열사들의 인수에 나섰던 내막 등을 두고 다시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조씨가 당시 맡았던 ‘배역’이 김 전 회장의 해외 재산 관리인 역할인지, DJ 정권에 대한 로비스트 역할인지 등을 확인하는 것부터가 의혹 규명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최근 조씨는 미국 LA의 교포사회에서 “한국은 이제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죽어서 이곳 로즈힐 묘지에 묻힐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자신 소유의 호텔까지 얼마 전 매각하고 대외 활동을 극도로 삼가고 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의 귀국과 조씨의 칩거 사이에는 과연 어떤 함수 관계가 있을까.
조풍언씨가 국내 매스컴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것은 지난 1999년 7월 DJ의 일산집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조씨와 DJ의 남다른 인연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에겐 ‘얼굴 없는 실세’라는 별칭이 붙어다녔다. 당시 야권에서 제기한 ‘DJ의 3남 홍걸씨 지원설’에서부터 최근의 ‘DJ의 숨겨진 딸’ 의혹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동안 DJ 일가의 후견인 내지는 대리인 역할을 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조씨가 김우중 전 회장과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2000년 2월 당시 야당에서 ‘조씨의 아도니스 골프장 매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아도니스’는 김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골프장. 이때부터 ‘DJ-김우중’ 사이에 조씨가 존재한다는 이른바 ‘삼각 커넥션’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실제 대우그룹 몰락 과정에 재미교포 사업가 조씨의 이름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도대체 당시 조씨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와 김 전 회장은 어떤 관계였을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나돈다. 김 전 회장이 조씨를 이용했다는 얘기도 있고, 반대로 조씨에 의해 김 전 회장이 이용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대체적으로 조씨의 역할은 두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하나는 김 전 회장과 DJ 사이에 그가 ‘메신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시각. 또 다른 하나는 해외 사업가인 그를 통해 김 전 회장의 재산이 관리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어느 경우든 두 사람 사이가 매우 돈독하지 않으면 형성될 수 없는 관계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 ||
김 전 회장이 조씨에 대해 직접 언급한 대목은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최측근으로 대우그룹의 마지막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낸 김우일 전 상무가 전하는 얘기는 김 전 회장 또한 조씨를 각별히 챙겼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 전 상무는 지난 2001년 10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1999년 5월 힐튼호텔에서 김 회장으로부터 직접 조씨를 소개받았다. 회장은 ‘아도니스 골프장 매각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골프장은 정희자 여사의 특별 관심사항인데도 당시 김 회장은 ‘관계없다. (아내) 설득은 내가 한다’고 했다. 당시 내가 최고 1천억원에서 최저 1백30억원까지 네 가지 방안의 매각대금 안을 써서 회장에게 주었더니 김 회장은 그 중에서 최저 1백30억 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경기고 동문인 점을 제외하고는 딱히 교차점이 없는 두 사람이지만 이들의 관계는 의외로 꽤 오래 전부터 두터웠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조씨와 마찬가지로 무기중개 등에 관여했던 한 해외 인사는 “조씨는 무기중개상으로 성공하기 위해 김 회장에게 ‘경기고 2년 후배’라는 인연을 철저히 이용한 채 접근했다. 당시 대우정밀이 국방장비 생산과 무기거래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조씨는 김 회장의 배려로 노하우와 정보를 얻은 것이다. 실질적으로 조씨를 무기중개상으로 자리잡게 해준 이는 김 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두 사람의 관계는 DJ 정권 출범을 전후로 해서 극명하게 뒤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출범 이전이 조씨가 김 전 회장에게 “선배님”, “회장님” 하며 떠받들던 시기였다면, 그 이후부터는 오히려 김 전 회장이 조씨에게 ‘읍소’를 하는 위치로 바뀌었다는 것.
대우 워크아웃 당시 정부 관계자로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당시 사업이 어려울 때 조씨와 상의했고 미국에 드나들 때면 조씨를 자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조씨와 한때 사업을 함께했다는 한 관계자도 역시 “김 전 회장이 종종 조씨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고 어려운 문제를 놓고 자주 상담도 한 것으로 안다”며 “당시 조씨가 김 전 회장에 대해 ‘안타깝다’ ‘참 안됐다’며 연민의 정을 표현한 것으로 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지난 2001년 4월 조풍언씨(가운데)가 부인 이덕희씨의 테니스 대회 후원을 축하하러 온 김홍일 의원(왼쪽)과 얘기하고 있다. | ||
두 사람의 관계는 대우가 몰락하고 김 전 회장이 해외 유랑생활을 전전하던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 재미 경기고 동문회의 한 관계자는 “조씨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작년까지만 해도 김 회장과 조씨가 홍콩이나 방콕을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최근 동문회를 주도하는 우리들의 기수와 김 회장과 조씨는 10~20년 이상 차이 나는 대선배 기수여서 동문회와는 조금 거리가 멀고 또 실제 LA에 거주하는 조씨 역시 거의 얼굴을 비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동문회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한인타운 내에서 가끔씩 얼굴도 봤으나 자신의 호텔을 매각한 이후부터는 (조씨가) 전혀 안 보이더라”면서 “동문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지도 2년이 넘은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김 전 회장이 최근 들어서 조씨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토로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며 “김 전 회장은 결국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고 말했다.
LA 현지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조씨는 현재 골프장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가 지난해 7월 샌디에고 소재 이글 크레스트 골프장과 LA 인근의 캘리포니아 컨츄리 클럽 등을 인수해서 현재 세 개의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거기에 그치지 않고 2~3개의 추가 골프장 매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는 조씨가 골프장 10개 정도를 소유하는 골프 재벌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조씨는 자신의 오랜 사업처이자 한국 사회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한인타운 내 가든 스위트 호텔을 지난해 3월 한 재미교포에게 매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교민 사회의 한 관계자는 “이 호텔은 조씨와 DJ의 인연을 만들어주기도 하는 등 각별한 상징성이 있었는데, 팔아버린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한국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LA의 한인교포 사회와도 거의 인연을 끊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치 서서히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조씨는 최근 실질적으로 자신의 소유 회사로 알려진 K사가 보유하고 있는 대우정보통신 주식도 계속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씨는 최근 들어 주변 지인들에게 “절대 한국엔 안 들어간다. 나는 미국 시민이며 여기에서 뼈를 묻을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DJ의 숨겨진 딸, 김 전 회장 귀국 등으로 인해 국내 언론이 여러 차례 인터뷰를 위해 현지를 방문했으나 결국 조씨를 만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기자 역시 지난해까지 가든 스위트 호텔의 관계자를 통해 조씨의 입장을 물었으나, 이 호텔 매각 후에는 그나마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주변 관계자조차 없어진 셈이었다. 비교적 자신의 저택과 가까운 캘리포니아 컨츄리 클럽에 자주 나간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지만 클럽 관계자는 철저히 조씨를 만나고자 하는 외부 방문객을 차단한다고 했다.
한 교포사회 관계자는 “조씨는 주변에 여전히 ‘신문에 어떻게 나든 난 상관없어. 무서운 일도 없고, 잘못한 일도 없으니까’라고 말하고 있지만, 심기만은 편치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