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원 몰살 → GP 전소 그리고 휴가’
▲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GP 내무반. | ||
그간 김 일병 총기 난사 사고는 일반 부대가 아닌 보다 철저한 사병 기강 확립 및 군수품 통제가 요구되는 최전방 부대에서 벌어진 대형 참극이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이 모아졌다. 최근까지도 사고 직후 군에서 발표한 김 일병의 범행 동기 및 사고 당시의 정황 등에 관한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생존한 간부의 책임 공방 논란 역시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김 일병에 대한 수사 및 공소 제기 과정은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되어 왔다. 공소 제기까지 한 달여간 수사가 진행됐지만 사고 당시 이후 새로 진척된 추가 수사 내용은 전혀 외부로 알려진 바가 없다.
군 검찰이 김 일병을 기소한 후 보름이 넘은 시점이지만 담당 재판부인 3군사령부 군사법원 역시 아직 구체적인 재판 일정조차 논의하지 못한 상태다. 재판부로서는 무엇보다 재판 과정에서 김 일병이나 사망자 및 유가족들의 신원, 일부 병사들의 행적, 특히 보안이 유지되어야 하는 최전방 GP운영 등 민감한 사안의 노출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 수위 조절 부분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일병의 변호인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변호인측은 피의자 가족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들여 재판 전까지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겠다는 입장이다.
군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 역시 이 같은 ‘외부기류’의 영향 탓인지, 김 일병의 범행 동기 및 계획과 사건 당시 김 일병이 움직인 ‘동선’만이 간략하게 기술돼 있다.
▲ 지난 6월24일 피의자 김동민 일병이 헌병과 수사관에 의해 호송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공소장에 기록된 김 일병의 범행 동기와 당시 사고 상황은 기존에 알려진 내용과는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나 몇몇 대목은 사건의 진상 파악을 위해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단 군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총기 난사 사고가 우발적인 단순 범행이 아니라 언어폭력 등에 시달린 김 일병이 계획적으로 사고를 저지른 것으로 결론 내렸다.
공소장에 따르면, 지난 1월17일 소속대로 전입한 김 일병은 선임병들로부터 ‘목소리가 작다’, ‘관등성명을 잘 대지 않는다’, ‘표정관리를 잘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잦은 질책과 욕설을 당했으며, 5월11일 GOP에 투입된 후 점점 빈번해지는 선임병들의 질책,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부담감, GP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심리적 압박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결국 범행을 계획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일병이 GOP에 투입되기 전 4월3일부터 4월13일까지 정기 휴가를 다녀왔으며, 그 후 ‘휴가에 대한 동경’ 또한 범행 동기의 한 요소가 됐다는 점은 공소장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4월 정기 휴가 기간 동안의 심적 변화가 결정적인 범행 동기로 굳어졌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휴가 기간 당시 김 일병의 언행에 대한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증언도 재판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 군검찰의 공소기록. | ||
그러나 공소장 두 번째 페이지에서는 ‘김 일병은 범행 후 민간인 통제 구역을 통과한 뒤 후방에서 은둔 생활을 하기로…”라고 범행 후 계획을 기재하고 있다. 첫 페이지에서 밝힌 범행 동인과 사후 계획에 사뭇 거리가 있는 셈이다.
김 일병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부대 적응의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추상적 진술일 수도 있으나, 일단 검찰이 서류상으로 김 일병 진술의 일관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논란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밖에도 군 검찰의 공소장에서는 범행 계획과 사고 직전 상황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이 발견된다.
김 일병은, GP간부들이 주말만이라도 사병들의 휴식을 보장해주기 위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야간 근무시 ‘밀어내기식’ 근무 규정을 ‘고정식’ 근무형태로 변경 운영하는 점을 고려, 범행 계획 단계에서 ‘디데이’를 일요일 새벽으로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김 일병이 내무반과 상황실 인원 등을 살해하고 부대를 완전 장악했을 시 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군번줄을 내무반에 남기고, 다른 부대원들 중 한 명의 군번줄을 갖고 나올 계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범행 후 기름을 내무반에 뿌리고 GP를 전소시킨 뒤, 공용화기(K-4, 57mm무반동총)를 이용해 GP통문을 폭파시키고 후방으로 도주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편 김 일병은 초소 경계 근무 도중 내무반으로 진입, 범행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상당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일병은 내무반에서 정아무개 상병의 K-1소총을 들고 나와 내무반 옆 화장실에서 10분간 망설였으며, 그러다 수류탄 지환통의 봉인지를 뜯는 순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직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숨진 정 상병의 총을 범행에 사용한 것은 정 상병 자리가 내무반 출입구에서 가장 근거리에 위치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