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변호 ‘꼬리표’ 찜찜하네
하지만 이 대법원장 지명자에 대한 ‘딴지’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법률 대리인단에 참여한 경력을 두고 일부 야당 인사들은 ‘보은인사’, ‘코드인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한나라당 등은 국회 인준 과정에서 이 점을 집중 부각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관을 퇴직한 이후 5년간 24억원이라는 큰돈을 벌었고, 지난해에는 공직자윤리위원장에까지 임명된 이 지명자가 다시 4년 임기의 대법원장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법조인들도 없지 않다.
게다가 사법 관료 조직의 틀에서 줄곧 엘리트 코스만을 걸어온 이 지명자가 과연 법원 안팎에서 요구하고 있는 사법 개혁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 역시 제법 크다.
특히 이 지명자의 임명에 비판적인 일부 법조인이나 시민단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점은 이 지명자가 삼성 에버랜드 사건의 변호인으로 대법원장 지명 직전까지 활동한 경력이다.
이 지명자는 세간의 관심을 끌어온 삼성 에버랜드 CB(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의 변호를 지난해 1월부터 1년 7개월여간 맡아왔으며, 지난 8월19일 대법원장 후보에 지명되자 그날로 변호인 사임계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삼성측 변호인으로 지명 전까지 에버랜드 사건 변론을 맡은 이 지명자가 대법원장직을 수행할 경우, 아직 1심이 끝나지도 않은 에버랜드 사건은 물론 여타 삼성 관련 사건의 향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우려의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삼성측 변호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이 지명자와 삼성과의 관계가 우호적이라고 단언키는 어렵다. 변호사 시절의 수임 사건으로 향후 공직 활동을 예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 이종왕 삼성 법무실장 | ||
이 지명자는 지난 2003년 12월1일 허태학 당시 에버랜드 사장, 박노빈 에버랜드 상무가 검찰로부터 불구속기소된 뒤 김종훈 변호사와 함께 삼성측 변호인으로 선임됐다. 이들 두 사람은 지난 96년 주당 최소 8만5천원에 거래되던 에버랜드 CB를 발행하면서, 제일제당 등이 실권한 96억원어치를 이사회 결의를 통해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재용씨 남매에게 주당 7천7백원에 배정, 회사에 9백70억 상당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지명자가 삼성측 변호인으로 선임된 데에는 당시 이 사건을 맡고 있던 이종왕 변호사와의 특별한 인연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 변호사와 이 지명자는 지난 2001년 언론사 세무 비리 사건 파문 당시 <동아일보> 변호인으로 선임된 이후 매우 돈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지명자와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던 김종훈 변호사도 당시 변호단에 합류했다.
삼성측이 이 지명자를 변호인으로 선임하기까지는 이 변호사와의 관계, 대법관이라는 경력 외에 이 지명자의 두터운 인맥도 어느 정도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당시 사건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 25부 이현승 부장판사와 이 지명자는 몇 가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 지명자는 이 부장판사의 광주제일고-서울대 법대 8년 선배이자, 97년과 98년에는 대법관과 재판연구관으로 대법원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번 대법원장 인선과 관련해 ‘노무현-이종왕-이용훈’ 세 사람의 관계에 새삼 눈길을 돌리고 있다. 노 대통령, 노 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이자 8인회 멤버로 삼성측의 법적 대리인인 이 변호사, 그리고 노 대통령 탄핵사건과 삼성 에버랜드 사건을 변호한 이 지명자의 각별한 인연이 향후 어떤 영향력으로 나타날지 주목되기 때문이다.
물론 재야 시절의 수임 전력으로 법조인의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성향을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법조계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지명자측 관계자도 삼성 사건 수임과 이 지명자의 향후 공직 행보를 결부시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지명자의 대법원장 취임 이후 10월 초로 예정된 에버랜드 사건의 1심 결과 등 굵직한 삼성 관련 사건의 향배에 벌써부터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과의 ‘수임 인연’이 이 지명자로서는 한번은 넘어야 할 산으로 다가온 셈이다.